밤 사이 비가 내려 섬이 젖어들었다. 강정의 딸, 이라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거나 넘치지 않는, 설문대할망의 막내 손녀 모습을 그대로 한 미량 언니, 네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룻밤. 강화에서 큰이모가 중학생 아이들 셋과 함께 제주에 내려왔고, 그 참으로 해서 어젯저녁 만장굴에서 강정으로 넘어갔다.
제주에 들어온지도 두 달, 이제 처음 강정을 찾아가는 길. 그렇다 하여 그 몇 해 사이에도 강정을 자주 찾거나 하지는 못했다. 딱 한 번 간 것이 두 해 전, 오늘. 그러니까 나는 마흔이 되도록 제주라는 섬엘 한 번도 들어오질 않았었고, 두 해 전 신혼여행 길이 이 섬에 첫 발을 들인 거였다. 그 신혼여행 길에서, 강정엘, 펜스에 가려진 구럼비엘, 저녁마다 이어지던 촛불문화제엘, 그리고 당시 방파제에서 떨어져 크게 다치셨던 신부님의 병실을 찾았다.
그랬으니 강정에 다시 가보는 것도 꼭 두 해가 지나서인 셈. 마을에 닿았을 때는 이미 어둠껌껌. 돌담이 이어지는 굽은 마을 길로 들어서니, 두 해 전 달래와 그 돌담길을 더듬어 평화센터를 찾아가던 기억이 떠올라. 멀리 강화에서 내려온 이모를 만나고, 한참 사춘기에 질풍노도 삼총사라는 아이들을 만났다. 제주 이웃인 또치 언니도 미리 내려와서 그곳에 함께 있어.
그렇게 하여 지난 밤을 <미량이네 집>에 마련된 그럴듯한 까페 테이블에서 보냈다. 큰이모와 또치 언니, 미량 언니, 그리고 그것에 벌써 세 해째 함께 하고 있는 지킴이 분들 두 분까지. 밤이 깊어갈수록 하나둘 돌아가고, 밤이 다하도록 모자랄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밤이 깊을수록 또렷한 사람, 사람이 보였고, 그곳에서 내가 본 것은 사람의 절실한 마음이었다.
강정, 미량 언니네 집에서 일어나 일터로 나가자니 어둔 새벽에 벌떡. 마을 곳곳에 세워둔 해군기지 반대의 깃발은 이미 바람에 뜯겨지지 않은 것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바람이었고, 세월이었다. 어쩌면 너덜너덜 지친 몸과 마음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찢겨나간 나머지 천조각들은 간절함의 다른 말.
그 괴물같은 전쟁기지는 이미 육십 퍼센트 가까이 세워지고 있다던가. 서둘러야 할 시간보다 조금을 더 바삐 준비하여, 해군기지의 공사 펜스 앞을, 날마다 이어지고 있는 미사 공간을 느리게 지났다. 비록 그곳에 공사가 완료되고, 기어이 그곳이 전쟁의 추악한 거점이 되고말지라도, 강정이 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절실한 사람의 마음을 끝끝내 지켜내고 있었어. 포크레인 삽날로도, 발파의 폭음으로도 덮어버리거나 깨뜨릴 수 없는, 사람의 절실한 마음, 그 눈물겨움이며, 곧고 정갈한 목숨의 기억.
제주에 내려온지 두 달만에야, 강정을 찾았다.
그곳을 다녀간지 두 해만에야, 비로소 다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