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퍼

냉이로그 2014. 5. 12. 22:49



 한라산 영실에 있는 암자 하나. 주차장에 내려서도 이십 분은 족히 걸어올라가야 그 조그만 암자에 닿는다. 아주아주 고요한 길. 그러나 이제 시작해야할 공사 생각을 하면 그 고요하고 아름다운 길이건만, 고요함이거나 아름다움 같은 걸 느낄 겨를이 없다. 오히려 차가 들어가지 못할 그 길이기에, 머리가 지끈지끈 골치가 아파와. 


 이 길을 오를 때마다 노루를 만난다. 그럴 때마다 그 아이를 방해한 것 같아 걸음이 멎게 되곤 하는. 한라산 영실, 조그만 암자에 오르는 고요하고 깨끗한 산길.



 기와고르기 공사를 준비 중이다. 대웅전을 제외하고 국성전과 요사채, 종무소와 종각 건물의 기와를 다시 놓아야 하는데, 문제는 암자까지 자재들을 어떻게 올려야 하나 하는 거. 못해도 진흙만 십오톤으로 한 차는 올려야 할 텐데, 암자까지는 차가 들어갈 수 없다. 좀 전에 말한 그 아주아주 고요한 산길만 나 있을 뿐. 하여 암자에서도 주차장까지는 모노레일을 놓아, 무슨 행사 물품을 올려야 하거나 필요한 집기나 부식 같은 것을 올리고 내리고 할 때는 그거에 의지하고 있어. 모노레일이 한 번 실을 수 있는 양이 최대 사백키로, 주차장에서 암자까지 한 번 왕복하는데 오십 분이 걸린다니, 아무리 바쁘게 모노레일을 돌려도 하루 일고여덟 번을 넘지 못한다. 죽을동 살동 돌려봐야 하루에 올릴 수 있는 양은 2톤 남짓. 그러나 암자에서는 모노레일 고장이 잦다고, 하루 두세 번만 쓸 수 있다고 해. 한 번 고장이 나면 수리할 사람을 서울에서 불러야 한다는데, 그렇게 불러 고치자면 보름은 걸리고, 비행기값에 경비까지 백만원이 넘게 든다니, 가급적이면 쓰지를 말라고.

 그러니 큰일이다. 진흙만 십오톤. 거기에 모래며 시멘트 생석회에 피티 아시바까지, 올려야할 자재가 산더미. 지게에 등짐을 지고 올려야 하나, 수레에 싣고 올릴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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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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