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신부님

냉이로그 2012. 4. 23. 08:40



 정말 하늘이 도왔다고, 어떻게 마침 신부님이 떨어진 그 아래로 장판이 깔려 있었는지. 처음 신부님 소식을 들은 건 이모 메일을 확인하면서였다. 그러고 나서야 속보로 올라오는 기사들을 검색하는데, 눈앞이 깜깜하기만. 칠미터 높이 삼발이 아래로 신부님이 떨어지셨다고. 그 뒤로도 한참, 자세한 소식은 알지 못한 채, 부디 크게 다치지만 않았기를 마음 졸일 뿐이었는데, 그러고도 한 주일이나 더 지나서야 그나마 아주 크게 다치시지는 않았다고, 그 무슨 하늘의 조화였을지, 그 전날 생명평화 기도를 하던 분들이 쓰던 장판 하나가 바람에 날렸는데, 신부님이 떨어진 바로 그 자리에 그게 깔려 있었다고.하늘의 보살핌이라고밖엔 달리 설명할 수 없는고맙고도, 고마운 조화였다. 그러나 막상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기까지는 용기가 필요했다. 어떻게 이 할아버지 얼굴을마주 뵐 수 있을까. 이라크 전쟁으로 함께 다닌 순례길, 그리고 평택, 용산, 강정. 신부님은 계속 그 길을 걷고 계셨고, 어느덧 나는 그 길에서는 많이도 빗겨 서 있어. 크게 숨을 들이쉬고 문을 열어 들어서니, 누워계시던 신부님이 몸을 일으켜. 이미 이모가 얘기를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며, 환하게 맞아주신다. 식을 올리고 오는 길이라고, 신부님께서도 한 말씀 해주셔야 한다니까, 달래 쪽을 쓰윽 보시며, 깝깝하겄다, 하신다. 어쩜 그리도 다들 똑같은 말로 달래만을 위로하는지. ㅎㅎ 신부님 환한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집회 현장이나 회의 자리하고는 달리 푸근하고, 따뜻하고, 다정스런 할아버지의 이야기들. 병원에만 보름 가까이였으니 많이도 답답하시겠다, 밍밍한 병원 밥도 질리시겠다, 싶어 신부님께 내일 모레 다시 들를 때는 맵고짠 거, 얼큰한 거, 지글지글 끓는 거, 그런 거 몰래 사들여오겠다 약속을 드렸는데, 그 새를 참지 못하시고 그 다음 날 퇴원을 하셨다고 해. 마을에 남은 지킴이들은 아직 안 된다고, 걱정들이지만 당신 고집을 또 누가 막을 수가 있어.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 피다  (0) 2012.04.25
축시  (2) 2012.04.23
제주, 강정  (0) 2012.04.23
제주, 집  (0) 2012.04.23
제주, 여행  (0) 2012.04.23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