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길 식구들이 와서 하룻밤을 자고 난 다음 날. 감자가 깼을 땐 이모야들이랑 아가들은 벌써 집을 나섰어. 아침 일찍 새별오름엘 올랐다가, 또치 이모가 있는 제라진 그림책 갤러리로, 그리고 다시 한담 바닷가를 둘러보고 강정으로 가려는 거.

 

 

 

 감자야, 어젯밤 이모야들이랑 형아, 동생, 친구들이랑 만나 좋았지? 어쩔까, 감자네 식구도 오늘은 카페 문을 닫고 기차길 식구들이랑 함께 다닐까봐.

 

 

 

 그래서 감자네도 강정으로 가는 길에 기차길 식구를 따라 나서기로 했다. 새별오름이랑 제라진에 다녀오는 동안엔 카페 문을 열고 있다가, 기차길 식구들이 한담 바닷가로 올 즈음 감자네 식구도 그리로 내려가 함께 만나기로. 그러고는 강정마을로! 그리고 또 한 가지 계획은, 지금 가시리에서 한참 열리고 있는 제주평화축제에도 가보자는 거. 마침 오늘 밤에 있을 공연에 수니 언니도 나온다고 했거든. 큰이모도, 수연이모도 모두 삼십 년 넘어 장필순의 노래를 좋아해오고 있었으니.

 

 

 

 감자야, 우리도 오늘은 모처럼 가게를 일찍 닫고, 강정에도 가고 가시리에도 가고 그러자!

 

 

 

 새별과 제라진을 들러 기차길 식구가 애월에서 점심밥을 다 먹고 난 뒤에야 감자네 식구도 한담 바닷가에 내려가. 언덕 위에서 바닷가를 내려다 보니 저 아래로 공동체 식구들이 바닷가 산책 길을 걷고 있었네.

 

 

 

 감자네도 그 길을 따라나서자니 아무래도 아빠가 감자를 업는 게 좋겠어. 아, 그런데 감자를 업고 가려다 보니 물허벅을 등에 진 제주 아즈망 동상이 낮설지 않네. 평소에는 특별할 것 없이 지나치곤 했는데, 감자를 등에 업고 있는 그림자를 보다보니 물허벅을 등에 진 어멍 모습이랑 비슷하단 말이지 ^ ^ 그래서 저 앞에서 나란히 찰칵!

 

 

 

 

 제주에 지내면서도 강정엘 자주 찾지 못한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려. 이 섬에서 가장 아픈 곳.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어떤 미안함이나 부채감, 부끄러움들로 해서 발걸음이 더 멀어지고, 주저하게 되고, 마음 가벼이 선뜻 나서지를 못하게 되곤 해. (참 어리석게도!) 그래서 기차길 식구들이 찾아 나서는 길에라도 더 따라나서고 싶은.

 

 한 달 전 문을 연 강정평화센터 앞에 닿아. 신부님은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 나가 계시다 하였고, 신부님을 뵈러 그리 나갔다.

 

 

 

 신부님 몸이 많이 안 좋으시다는 얘기한 달 전 동훈 삼촌이 다녀가면서 이미 들려주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지난 봄에 뵈었을 때보다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아. 그런데도 신부님은 공사장 정문앞 노천 미사를 드리는 천막을 혼자 지키며 끌을 망치로 때려가며 나무를 깎고 있어. 모기가 그렇게나 많은 데도 굳이 그 천막을 고집하시며, 아니 천막이 아니라 해군기지 공사장 앞을 고집하시며.  

 

 

 

 감자야, 할아버지 생각나지? 봄에 왔을 때 할아버지가 안아주었잖아. 엄마랑 아빠가 결혼식을 올리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왔을 때도 맨 처음 찾아간 곳이 할아버지가 계시던 병원이었어. 그 다음엔 여기, 강정마을.

 

 감자는 자기도 궁금한지 현수막을 들춰 할아버지를 보네.

 

 

 

 할아버지, 품자도 함께 왔어요! 신부님은 그 옛날 달래와 냉이를 처음 만나던 울진 순례 기억을 떠올리시네. 사람들 안부를 묻는 신부님 목소리가 쓸쓸해.

 

 

 

 여긴 평화센터 일층 뒤편에 마렪해놓은 신부님의 서각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입을 쩍 벌어지게 하는 작품들. 언제 이렇게까지 작업을 해오셨을까. 용산 남일당을 지키다가 명동성당에 들어갈 즈음이 처음 시작했다 하셨으니 오륙년 남짓 되었을까. 강정으로 내려오고부터는 구럼비를 부둥켜 안은 채 서각 칼을 놓지 않으셨겠지.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나서도 신부님은 기도를 하는 마음으로 나무를 깎고 또 깎아.   

 

 신부님은 작업실에서 물파스를 찾아 하람이 발목에 발라. 아까 공사장 앞 천막 안에 초가을 모기가 극성이었어 ㅠㅠ

 

 

 

 말 카페라는 곳엘 갔네. 기차길 식구들과 함께, 신부님을 모시고. 아아, 여기가 말 카페구나! 큰이모에게 강정 소식을 전해들을 때면 종종 듣곤 했다. 말 언니라는 분, 그리고 말 카페. 승민선경이 강정에 다녀온다 할 때도 더러 말 카페 얘기를 듣곤 했어. 그렇게 말로만 듣던 말 카페라는 곳엘 가보게 되었네.  

 

 

 

 이야아, 멋지다. 카페를 하는 입장에서 ㅋㅋ 여기 말 카페에 견주면 우리 난장이공 카페는 정말 손바닥만하네. 카페만 해도 난장이공의 서너배는 되는 것 같고, 카페 말고도 게스트하우스에 말 언니가 사는 살림 공간까지. 규모도 규모지만 곳곳에 닿아있는 손길들이 얼마나 정성스러운지, 그리고 강정을 지키고파 하는 눈물겨운 마음까지.  

 

 

 

 아니나다를까, 카페에 들어갔더니 승민선경의 모습공방 도자기 인형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네 ^ ^

 

 

 

 기차길 식구들과 다 같이 들어가니, 우리가 카페의 반 이상을 다 차지해버렸어 ^ ^ 그 안에서도 아이들은 맘껏 다닐 수 있어 더 좋았어. 신부님을 모시고, 기차길 식구들과 함게 한 아주 특별한 외식.

 

 

 

 

 말 카페에서 나와서는 섬의 동남쪽 중산간에 있는 가시리로! 사실 그 시간에 가시리로 간다는 건 좀 무리가 되는 일정이었다. 게다가 이람이와 감자, 하준이, 예준이 같은 아가들까지 데리고 가기에는. 기차길 식구들은 이날 강정평화센터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으니 강정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고, 감자네는 소길리로 돌아가야 할 텐데, 가시리에서는 강정까지도, 소길리까지도 한 시간을 훨씬 넘겨야 하는 길. 게다가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공연을 다 보고 나오려면 밤 열한 시나 되어야 할 것 같았으니. 그러나 필순 언니에 대한 팬심으로 대동단결, 기차길 식구들과 감자네는 그 밤길을 달려 가시리까지 차를 몰아 ^ ^

 

 

 

 축제 장소에 닿았을 땐 저녁 여덟 시 쯤 되었을까. 차에서 내리자마자 찬 바람이 얼마나 스며드는지. 아가들은 아가들대로 꽁꽁 싸매고, 어른들도 한 꺼풀 덮을 수 있는대로 덮은 뒤에 축제를 벌이는 마당을로. 그나마 다행은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있어 그 한쪽에 옹기종기 둘러 앉았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분위기. 마치 육팔의 다음 해 뉴욕에서 열렸다는 우드스탁에 모였을 법한 히피 스타일의 사람들. 무대 위에서는 노래가 흘렀고, 그 아래에서는 타인의 시선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 흥에 겨운 몸사위들이 자유분방으로 넘실거려.  

 

 

 

 밤은 깊어 갔고, 바람은 더욱 차가워져. 그래도 좋았던 건 아가들이랑 함께, 이모들이랑 함께였기에.  

 

 

 

 참 신기하지. 아마 공부방 아이들은 아무리 조그만 아이들이라 해도 이미 형아가 되어 동생을 보아줄 줄을 안다는 거. 물론 그건 첫날 밤부터 느껴오고 있었어. 기차길 아이들은 정말 좋겠구나. 서로가 서로에게 형아가 되고, 언니가 되고, 나보다 어린 아가에게는 또 내가 다시 언니가 된다는 거.

 

 

 

 가시리에서의 밤도 그랬네. 밤의 축제장에서 한 시간 남짓 지날 무렵, 감자는 졸리웁기도 하고 춥기도 하여 찡찡대기를 살짝 시작하려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때 하람이 형아, 한빈이 형아, 래원이 형아가 지슬이에게 뽀뽀를 하며 놀아주고 싶어하는 거라. 그러니까 가뜩이나 짜증이 나있던 감자는 정말로 그게 싫어서 형아들을 밀쳐내었거든. 아! 그런데 형아들은 감자가 밀쳐낼 때마다 오버리액션을 하면서 으아아아~~~!! 하고 뒤로 튕겨나가는 시늉을 하는 거라. 그러더니 갑자기 그게 놀이가 되어 버렸어. 하람, 한빈, 래원이는 계속 줄을 서가며 감자에게 다가가 뽀뽀하려는 시늉을 했고, 이제 감자는 그게 재미있어서 형아들을 밀어내. 그러면 형아들은 다시 과장된 리액션으로 튕겨나가는 놀이 ^ ^

 

 기차길옆작은학교 공동체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그래. 이모 삼촌들에게 받은 것들을, 언니와 형아들에게 받은 것들을 나보다 어린 동생들에게 그대로, 그 어린 동생들도 또 그보다 어린 아가들에게. 그렇게 이어지는 사랑의 물림.

 

 

 

 드디어 무대에 수니 언니가 올랐어. 이모들은 아가들을 안은 채 무대 가까이로 나가 섰고, 나도 감자를 포대기에 업고 그 앞으로!  목이 좋질 않아 따뜻한 거를 마시며 목을 만지면서도 수니 언니의 목소리는 그 어둔 밤에 고요하고 평화롭게 젖어들었다. 중간중간 얘기를 할 때는 저 목으로 어떻게 노래를 하나 싶다가도, 다음 곡이 시작하면 그 어둔 하늘 가득 펼쳐지는 노랫소리.

 

 모두 여섯 곡, 첫 소절이 시작할 때마다 내 바로 앞에 선 수연이모는, 무너지듯 어깨에 힘이 빠지며 탄성을 흘리곤 해. 이모들은 삼십 년 전부터 그렇게 좋아했다지. 앨범이 나오기를 기다리다 새 앨범이 나오면 바로 사서는 어디에서나 귀에 꽂아 듣고 다니며 버스 안에서도 눈물을 흘리곤 했다면서. 

 

 수니 언니의 공연을 다시 볼 수 있어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이모들이 아주 좋아했기 때문이야. 그토록 오랜 팬이었지만 라이브로 듣기로는 처음이라는 이모들. 특히 지난 두 해 가까이를 투병으로 많이 힘겨웠을 수연이모에게 힘이 되는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기뻤어.

 

 수니 언니의 공연이 마치자마자 강정으로, 소길로 돌아오기에 바빴다. 포대기에 싸여 아빠 등에 업혀 있던 감자는 공연 중에 잠이 들었고, 기차길 형아들도 반은 이미 잠에 들어.

 

 기차길옆 식구들과 함께 한 둘쨋날은 그렇게 강정으로, 가시리로 함께 하였다. 평화를 찾아, 평화로움에 젖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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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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