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만

감자로그 2015. 9. 22. 13:47

 

 

 밤에 엄마가 약속이 생겼어. 늦은 시간에 나갔다 올 거라기에, 그럼, 나는 감자랑 둘이서 나갔다 와야지! 하고는 저녁을 챙겨먹곤 우리 둘이서만 ^ ^ 그동안 달래랑 감자 둘이서만은 한라대학교에서 하는 문화센터에 다녀오고 그랬지만, 아빠랑 둘이서만 차를 타고 어딜 나가기는 처음.

 

 어디를 나갈까, 해안길로 나가 밤바다를 볼까, 좀 더 멀리 곽지나 금능 해변으로 갈까. 감자야, 아빠랑 막걸리 집엘 갈래, 아님 어디 예쁘고 아늑해보이는 찻집 같은 데를 찾아갈래. 아빠랑 둘이서만 첫 마실, 감자는 모가몬지 모르는 얼굴 ㅋ 아빠 혼자 들떴네. 일단 해안도로 쪽으로 출발.  

 

 

 빨간 신호등에 걸렸을 때 찰칵. (감자, 너~ 아빠 운전 서툴다고 긴장하고 있는 거야? ㅜㅜ)

 

 

 어딜 갈까, 어디까지 가볼까 하다가 해안도로에 들어섰는데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바다 풍경이 너무 좋아. 감자야, 우리 그냥 저기 저 위에 편의점에 가자 ㅎㅎ 바다를 내다보기에 좋은 탁자도 있고, 유모차 밀기 좋은 데크도 있고, 풀밭도 있고, 저기가 딱이네, 딱.   

 

 

 감자 유모차에 기저귀 가방이랑 맘마, 까까, 장난감까지 한 짐을 싣고 바닷가 언덕에 자리를 잡고는 편의점에 들어가 호기롭게 만원에 네 개 하는 캔맥주를 담아 나오려니, 앗차차, 지갑이고 뭐고 암 것도 안 들고 나왔네 ㅠㅠ 여기 계좌이체로 계산해도 되느냐고 ;; 그러라고 해서 엄마한테 전화해서는 편의점 계좌에 만 원만 넣어달라고 부탁.

 

 다행히 편의점엔 친절한 언니가 지키고 있었어. 감자를 안아봐도 되느냐고 먼저 묻더니 감자를 안고 잘도 보아주네 ^ ^ 부산에서 내려왔다던가, 그렇게 편의점 알바에 또다른 알바도 하면서 제주에서 일년살기를 하고 있는 중이라며. 휴우우, 그래서 아빤 지갑없이 간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수 있었지 모야. 나중에 난장이공 카페에 다녀가라고, 커피 한 잔 드릴게요, 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인사.

 

 

 이야, 정말 멋진 곳에 자리를 잡았어. 이 해안도로에 카페나 펜션말고, 그냥 편의점인데도 이렇게나 전망좋은 벤치를 갖춘 데가 있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진작에 알았다면 지난 주에 누구누구가 다녀갔을 때도, 그 전 주에 누가누가 다녀갔을 때도 이리 나와 한 잔을 했을 건데. 암튼 오늘은 감자랑 아빠랑 둘이서 이 멋진 제주 밤바다를!

 

 

 

 

 그렇게 애월해안도로 편의점 데크에 앉아서 한 시간 반을, 감자를 안고 그네도 타다가, 맘마도 타서 먹이고, 그러는 사이에 틈을 봐서 캔맥주를 홀짝홀짝. (도무지 틈을 주지 않아 깡통 하나도 제대로 못 먹었네 ㅜㅜ) 바닷바람을 그렇게 오래 맞고 있었더니, 졸음이 오는 데다 춥기까지 했는지, 도무지 품에서 떨어져 유모차에 앉으려고 하지를 않아. 그래도 감자야, 인증샷은 찍어 엄마한테 보내조야지. 겨우겨우 유모차에 앉혀 까꿍깍꿍 까불어 웃는 얼굴을 짓게 해 사진을 찍는다고 찍었는데, 역시나 감자 얼굴은 "나 졸리다고요!"  말을 하고 있네.

 

 

 그래, 감자야, 이젠 집에 가자 ^ ^ 다음엔 엄마랑도 같이 오면 좋겠다. 일마치고 나서 바다 보러 잠깐씩, 바람 쏘이러 잠깐씩 나와있기엔 딱인 걸. 게다가 좋다 하는 여느 전망 못지를 않으니 더더욱.

 

 이렇게 하여 감자랑 둘만의 첫 데이트를 하고 왔네. 애월해안도로 편의점 데크에서 밤바다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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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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