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팔십다섯 날, 감자는 비행기를 탔다. 그 전에도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여러 차례 비행기도 타고, 배도 타고 영월에서 제주를 오가고는 했지만, 세상에 나와서는 처음 비행기를 타는 일. 전날 밤 짐을 꾸려. 처음으로 종이기저귀라는 것도 챙겨보고, 맘마 도시락도 이틀먹을 만큼을 칸칸이 담아. 갈아입을 옷가지들이랑 손수건, 그리고 또 뭐가 빠졌나, 서울은 혹시 바람이 셀까, 속싸개도 넣고, 벗어버릴 옷가지들 따로 챙길 봉다리들이랑, 혹시 먼 이동 길에 지루할지 몰라 엊그제 한라도서관에서 빌려온 그림책도 한 권. 어쩜 모자도 있어야 할까?

 

 

 서울은 제주보단 추울텐데, 밤길을 걸어 움직여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평소 잘 쓰지 않던 모자도 이것저것 감자 머리에 씌워보아.  

 

 

 

 

 자, 이제 되었을까. 비행기 시간을 맞추려면 담날 새벽 일찍 준비하고 나서야만 해. 그러곤 담날 새벽 일찍부터 엄마아빠 바쁘게 움직여. 나갈 준비까지 다 해놓고 나서는 곤잠을 자고 있는 감자 아랫도리를 살짝 벗겨 기저귀를 갈아주고, 살포시 들어안고는 공항으로 출발. 아침 맘마는 공항 나가는 차 안에서. 그동안 감자네 집엘 다녀가는 사람들을 따라 몇 차례 공항엘 가보기도 하였지만 이날은 배웅이나 마중이 아니라 감자도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

 

 

 

 

 발권에 보안검색대 통과, 그리고는 타는 곳 앞에서 기다리는 일까지, 그 사이에 감자는 곯아 떨어지고 말아. 차라리 다행스런 일인지도 몰라. 비행기를 타고 아기가 편안하게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을 자는 거라던데. 하지만 어디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그런데 감자는 때맞추어 곤잠에 빠져. 나이든 엄마아빠 힘들게 안 하려고 밤잠 잘 자고, 깨어서는 잘 놀고, 엄마아빠 밥먹을 때 잠들어주고 그러더니만, 어떻게 이렇게 딱딱 맞춰줄까. 그래서 이 늙은 엄마아빠는 감자에게 고맙다, 고맙다 소리를 입에 달고 산다니.

 

 

 그래도 게이트를 지나면서 저 멀리 비행기를 두고 인증샷도 한 방.

 

 

 

 두둥실 하늘 위로 떠서 얼마 있질 않아 감자가 눈을 떠. 기압이 달라지는 이착륙 때 아기들이 많이 힘들어한다더니, 감자는 그때까진 잠이 들어있다가 이제 다시 방긋벙긋. 감자네 식구 비행기샷 찍어주세요, 하고 승무원 이모야에게 부탁을.

 

 

 

 어머나, 여긴 또 어디야. 비행기에서 내려 엘리베이터에 에스컬레이터, 그리고 여긴 칙칙칙칙 지하철. 모든 게 처음이고 신기한 것 투성이. 감자야, 우린 지금 셔블한양에 온 거. 감자는 온통 처음보는 서울의 신문물에 눈이 휘둥그레 ㅋ

 

 

 

 그래서 닿은 곳은 출판사. 여기에서 에게해 이모야랑 시와 이모야랑 낮은산 이모삼촌들 만나기로 해. 이야아, 우리 감자 홍대 앞에도 왔네, 출판사도 와보네. 엄마도 출판사엔 처음 와보는 거래. 엄마랑 출판사 구경하자. 여기가 세상에서 젤로 좋은 출판사. (아빠 책을 여러 권 내고 있으니 그냥 그런 걸로 ㅋ) 어머, 한쪽에는 기차길 식구들이 낸 그림책 인형들이 있어!

 

 

 

 시와 이모야가 왔어. 감자가 세상에 나오는 길에 내내 들려오던 노랫소리, 그 목소리 이모야. 엄마야, 이걸 어쩌면 좋아. 아빠는 그냥 구석에 숨어있을까.

 

 

 

 에게해 이모야는 문을 열고 들자마자 땅바닥에 옷을 던저버리고 감자에게 달려가. 잠깐 회의실에 모여 이날 있을 공연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온통 감자에게 달려갈 생각만. 그러더니 하루종일 감자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부비고 안고 어르고 하는 게 꼭 몸집 째그만 할머니 같더라니까. 정생이 할아버지 동화에 나올 법한 그런 할머니.  

 

 

 

 군포에서의 공연.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무대며 조명이며 객석이며, 극장은 생각보다 으리으리. 공연 시작 전 미리 무대감독 같은 분과 조명 및 음향 스텝 분들이 가르쳐주는대로 들고 나는 시간이며 동선같은 걸 체크하는데, 그 위에 서려니까 어찌나 쫄아들던지. 어휴, 이걸 어쩌나. 어떻게든 되겠지.

 

 

 

 

 자도 육지가 처음, 달래도 감자를 낳고는 처음 올라간 길이니 마음 한 구석엔 식구들에게 찔리는 마음이 없질 않아. 할머니는 한 달 너머 감자네 집에서 지내고 갔다지만, 큰아빠큰엄마사촌형아누나들은 여태 감자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해. 언제쯤 다녀갈 수 있는지를 물을 때마다 감자가 아직 어려서 어려울 거라고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행사 때문에는 버젓이 올라갈 준비를 하였으니. 게다가 일정도 딱 하룻밤만 자고 바로 내려오는 걸 하고 있으니, 제대로 집에 들르지도 못해. 그래서 집에는 연락하지 말고 모르게 다녀갈까 하기도 하다가.

 

 

  

 

 가장 많은 식구들, 돌아가려면 먼 걸음을 해야 할 기차길옆작은학교 언니형아들하고는 공연장 옆에 있는 짜장면집에서 짜장면만을 먹고 아쉬웁게 헤어져야 해. 그러고나선 함께 준비하고 애쓴 이들이랑 함께 서울로. 감자네 식구가 묵기로 한 게스트하우스 가까이, 연남동에 있는 불빛 많은 곳.

 

 

 엄마는 본격 뒤풀이가 시작하기 전에 시와 이모야랑 인증샷을 찍어야 한다고 아무 길거리에서나 찰칵!

 

 

 

 감자는 맥줏집에도 가보게 되었네. 소방관 큰아빠가 번쩍 안아 상 위에 올려놓으니 감자도 한 잔 하겠다며 물병 뚜껑울 입에 물고 움물움물. 새벽부터 자는 걸 깨워 비행기에 태우고 군포까지 갔다가 다시 서울로, 고단한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감자는 그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였다. 나중에는 저 맥줏집 한 쪽 테이블에 누워 그 떠들썩 매캐한 속에서도 곤한 잠에 들기까지.

 

 

 

 고맙게도 감자네가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편히 지낼만한 곳이었어. 감자야, 여기에는 푹신푹신 침대도 있네. 우리 집엔 이런 거 없는데, 와아아 좋다. 여기에선 푹 잘 수 있겠다.

 

 

 

 와아아, 이거는 시와 이모야가 선물해준 여우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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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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