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엔딩

감자로그 2015. 4. 9. 05:32

 

 

 

 잠시일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지는 꽃을 보면 빨라도 참 빠르단 생각밖엔.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화려했던 꽃터널이 시든 잎만 남기고 다 떨어져버리게 된 건. 그때, 꽃터널 아래로 산보를 나가 사진을 찍고 그러던 바로 다음 날 저녁, 제주 서쪽 중산간에는 엄청난 바람이 불어. 그 밤이 지나고 나가보니 그 울창하던 벚나무 가지 하나가 우지끈 꺾인 채 부러져 있을 정도였다. 근이는 담배 피우러 한 번씩 처마 밑으로 나갔다가는 집 날아갈까봐 무섭다고 벌벌벌 그러기도 했으니.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는 비가 내리 사흘을. 우리는 꽃 지는 걸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꽃대에 아직은 힘이 있으니 그리 쉽게 떨어지진 않을 거야, 희망섞인 위로를 하곤 했다. 그러나 닷새가 지날 무렵이었나, 이미 광령부터 장전을 지나는 그 길은 한참일 때 눈을 홀리게 하던 그 꽃길이 아니었다. 이야, 정말 빠르다. 활짝 만개해 있는 건 닷새도 채 되지 않아.

 

 그렇담 우리 이번엔 꽃비를 맞으러 나가자. 아니, 바람에 날리는 건 비가 아니라 눈이 나리는 것 같아. 그렇담 꽃눈을 맞으러 나가자. 그런 말을 할 즈음부턴 우리는 그 길을 지날 때 쓸쓸해지는 꽃가지가 아니라, 나무 밑둥 아래를 보곤 했다. 저 꽃방석이 얼마나 덮여있나, 꽃터널이 끝없이 이어지던 것처럼 저 꽃카펫은 얼마나 멋지게 이어지려나. 바람이라도 한 번 불면 땅에서부터 피어오르는 꽃잎들, 그리고 아직 나뭇가지 붙잡고 있다가 떨어져내리는 봄의 눈송이들.

 

 

 

 

 

 그 길에 두껍게 쌓여 이어지는 꽃카펫, 그마저도 며칠이면 다 흩날리고 빗물에 씻겨내리겠구나 싶어 우리는 집을 나섰다. 이번에는 장전까지 걸어서 나가보자. 어른 걸음으론 십오 분 정도나 될까, 감자를 유모차에 태우고 한들한들 걸어 나가면은 삼십 분쯤 되는 그 길. 감자야, 꽃길 위로 나가보자. 감자가 걸음마를 할 줄 안다면 폭신하게 깔려 있을 그 길을 아장아장 밟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해. 아직 그러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꽃눈을 맞으며 감자를 안고서 그 꽃길 위를.

 

 

 

 

 

 

 

 날은 제법 쌀쌀했다. 겨울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옷이 얇아진 거에 대면 제법 추운 날씨. 게다가 바다 쪽에서 올라오는 바람은 왜 이렇게 세던지. 걸어나가는데 삼십 분, 꽃길 아래에서 그보다 더. 살짝 춥다고 느껴져 어디에서 따뜻한 거라도 마셨으면 싶다가 장전에 있는 나들가게에라도 가보기로. 거기에 가면 커피라도 데워서 팔지 않을까.

 

 소길에는 구멍가게 하나 없는 터라 급할 때면 한 번씩 들르던 장전리 구멍가게. 언제더라 무한도전에서 유느와 도니가 소길댁을 찾아가던 프로그램을 할 적에, 빈손으로 어떻게 가냐며 휴지랑 세제랑 이것저것을 사가던 장면으로 잠깐 나오던 곳. 그때 무도를 보다가도 그 구멍가게가 얼마나 반가웁던지. 아, 저 구멍가게 아저씨 나온다! 담배사러, 라면사러 한 번씩 들르던 곳 ㅎㅎ  

 

 

 

 가게에 가서 따뜻한 커피를 찾는데, 마침 그 가게 안엔 조그만 상이랑 온수기가 놓여 있어. 그렇담, 커피가 다 모냐, 이렇게 추울 땐 컵라면이지! 감자 유모차까지 가게 안으로 들여놓고 우린 컵라면 하나씩에 뜨거운 물을 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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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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