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감자로그 2016. 5. 13. 11:45

 

 오월이다. 제주의 날씨는 여전히 구름과 비와 바람과 햇살이 오락가락이지만, 비와 바람이 없는 오월의 하늘은 어찌나 맑고 파란지. 아침저녁으로에 창을 열면 바깥에서 귤꽃 내음이 진하게 들어온다. 아직 베지 않아 누렇게 익은 보리밭엔, 바람이 불 때면 마치 무림과 강호의 고수들이 한 판 대결의 장면이 있을 법한 멋진 장면. 잠들 때를 놓쳐 늦은 밤까지 놀아달라 감자가 잠에 들지 않으면, 마당으로 나가 서서 밤하늘을 한참도록 바라보곤 하였다. 이젠 감자도 달님을 알아, 달님 보러 가자, 하고 말을 하면 손가락으로 하늘 꼭대기를 가리키며 먼저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들고 기다리는.

 

 그렇게 오월의 제주는 귤꽃 내음이고, 바람 속 보리 밭이고, 밤하늘 달빛이었다. 그리고 하늘이 바다이고, 바다가 하늘인 온통 파란 빛의 그것. 그 속에서 오월감자와 오월품자는 파릇파릇하고 있다.  

 

 바다에 나갔던 날, 갈아입을 옷을 충분히 챙기질 못해, 아빠 티셔츠를 원피스처럼 걸치고도 좋아라 모래밭과 바닷물을 뛰어다니던 감자.

 

 

 

 

 

 감자가 요즘 꽂혀 있는 그림책 가운데 하나가 해원 언니가 쓴 <<오일장이 열렸어요>>.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장날 풍경이 한 장면씩 나오곤 하는데, 그 가운데 감자가 젤로 좋아하는 건 뻥튀기 가게 앞. 뻥이요! 하고 소리칠 때 그 앞에 선 사람들이 귀를 막는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이 나올 때마다 감자도 귀를 막아. 할머니가 뻥이요! 하고 소리를 치고 귀막는 흉내를 내어주니까, 감자도 그걸 따라해. 그리고는, 뻥이요! 를 해 달라고, 또 해 달라고.

 

 

 뻥이요! 장면 말고도, 장터에서 아저씨들이 국밥에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도 있는데, 그 그림 볼 때마다 달래가 아빠가 먹는 거야, 하고 알려주니, 감자는 그 그림을 가리켰다 아빠를 가리켰다 손가락을 왔다갔다 ㅎㅎ 고추, 양파, 마늘을 파는 할머니도 나오고, 신발가게, 옷가게도 나오고, 호미와 낫, 삽을 만들어 파는 대장간도 나오고 그러는데, 제주 오일장에 가면은 그걸 다 볼 수 있거든.

 

 그래서 마침, 오일장 날짜와 토요일이 겹치던 날, 할머니랑 아빠랑 감자 셋이서 장을 보러 나갔다.  

 

 

 

 

 

 그날 저녁엔 아빠랑 감자 둘이서 강정낭독회엘. 회사에 나가지 않는 주말이라도 아가들을 돌보아야 하는 건데, 다녀올 일이 있었으니 달래에게만 감자품자 둘을 돌보게 두고 갈 수는 없어. 그래서 감자만이라도 함께 다녀기로 한 길. 그렇게 하여 감자와 아빠 둘이서 강정으로 데이트를.

 

  

 무대에 올라 무언가를 읽어야 했는데, 감자가 잘 있어줄지가 걱정이었다. 낯선 곳, 적어도 내가 무언가를 읽는 동안에는 감자와 눈맞추며 있을 수도 없고, 감자를 안거나 어르거나 할 수도 없을 텐데, 감자가 몸을 비틀며 힘들어하지는 않을지, 아빠를 잡아끌며 어디론가 가자고 하지는 않을지. 그러나 고마웁게도 감자는 이십 분 가까운 시간동안 가만히 있어주었다. 놀랍게도.

   

 

 

 

 

 어버이날엔 집에와 계시는 할머니랑 무얼하면 좋을까, 맨날 침을 맞으러 한의원엘,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엘, 그렇게나마 겨우 버티면서도 집안 살림을 돌봐주시는 할머니한테, 그날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무얼 먹으러 가면 좋을까 하다가 집에서 가까운 해안도로, 조그만 카페엘 다녀오기로.

 

 

 일흔다섯 살 할머니도, 두 달 된 품자도 카페라는 데에서 처음으로 밥을 먹어보았네 ㅎ  

 

 

 

 

 해가 길어지고 있어. 어느 하루는 퇴근을 하고 돌아왔는데도 저녁 볕이 좋았다. 섬의 서쪽에 있는 감자품자네 마을, 노랗게 떨어지는 볕이 좋아, 감자에겐 물론 품자에게도 볕을 쪼여주고 싶어 나간 마을 산보.

 

 

 감자야, 같이 가자! 아무리 불러대어도 감자는 신이 나서 혼자 내달려가기만 ㅎ   

 

 

 

 

 

 첫 외출이었다. 물론 아빠랑 같이, 할머니랑 다같이 바닷가에도 몇 차례 나갔고, 더러 바깥에 나갈 때도 있었지만, 엄마랑 둘이서만 어딘가엘 가기는 처음인 외출. 품자를 낳은 조산원, 그 조리원에서 열흘을 지내면서 함께 지내던 다른 아기 엄마들. 아기를 낳은 날짜도 같거나 하루이틀 차이로 거의 비슷하고, 거의 비슷한 육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산모들끼리 만나기로 약속한 날.  달래가 감자와 품자 둘을 데리고 나갈 수가 없으니, 감자는 할머니랑 집에서 둘이 있기로 하고, 달래와 품자만 시내에 있는 다른 아기엄마네 집으로.

 

 

 으하하하, 이렇게 아기 다섯, 아기엄마 다섯이 모였다네. 엄마도 친구들을 만난 거지만, 품자도 친구들을 만난 날.

 

 

 

 

 

 그날 저녁, 할머니 방에 들어가 이것저것 뒤적이고 만지작거리던 감자에게 할머니는 보자기를 등에 둘러주었나봐. 이야아호! 감자도 슈퍼맨 망토를 둘렀어 ㅎ ㅎ 그런데 공갈젖꼭지를 입에 문 슈퍼맨이라니 ㅋㅋ 빠라바밤빠라바밤~ 그렇게 하여 감자는 이 얼빵한 표정의 울트라공갈젖꼭지슈퍼감자맨으로 변신!

 

   

 

 

 감자품자의 오월, 그리고 감자품자네 집의 오월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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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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