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감자로그 2016. 5. 24. 14:18

 

 

 

 그림책을 보다보면 할머니가 자주 나오곤 한다. 그러면 감자는 할머니 그림에 손가락을 찍어. 그래서 할머니야, 할머니! 하고 얘기를 해주면 감자는 고개를 돌려 할머니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으응, 맞아, 할머니야, 할머니. 저 방에 감자 할머니는 지금 아파서 서울에 갔어. 슈우웅 비행기 타고 할머니 서울에 가셨지? 할머니 서울에 가서 안 아파지고 그러면 감자 보러 다시 올 거야. 할머니 아프지 마세요, 할머니."

 

 할머니가 올라가고 집 안이 텅 빈 것 같아. 감자는 문득문득 할머니가 생각나는지 다다다다, 중심을 잡지 못해 기우뚱거리는 달리기로 할머니 방을 들여다보곤 한다. 텔레비전이 켜있곤 하던 할머니 방, 뜸뜨는 향이 가득 배어있던 할머니 방, 감자는 할머니 화장품 주머니 만지기를 좋아하였고, 할머니가 덮고 자던 보드라운 이불에서 뒹굴기를 좋아하였다. 으응, 할머니는 아파. 그래서 할머니는 서울에 올라가셨어.  

 

 올라가시던 아침, 할머니는 내내 편치 못한 얼굴이었다.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그래서 그 아픈 몸으로 마음으로도 꾹꾹 눌러 삼키며 말하지 못하던. 내가 가면 지슬 엄마 혼자  둘을 어떻게 보니, 일하고 돌아와서 빨래며 밥이며 살림은 또 어떻게 하니. 참고 참고 참던 것이 마침내는 줄줄 새는 눈물이 되고 말아. 미안하다, 나 좀 올라가 있어야겠어.

 

 

  

 

 "할머니, 갔다 올게. 할머니 가 있는 동안 지슬이도 엄마랑 우슬이랑 잘 지내고 있어." 할머니 얘기에 감자는 할머니에게 배운 합장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 며칠 전, 부처님오신 날, 할머니와 함께 절에 다녀오고 나서 배운 합장 인사. 

 

 

 

  

 

 

 그날은 온식구가 다 같이 절밥을 먹고 나와 절에서 가까이에 있는 함덕 바닷길을 함께 걸었다.  

 

 

 

 

 

 

 허리 아프고, 팔 아프니 아기 안는 건 하지마세요, 했지만, 그래도 할머니는 달래와 내가 손이 모자라 쩔쩔매는 걸 보더니 포대기로 품자를 들쳐 매. 등에 업은 포대기를 조심조심 돌리면 이렇게 안을 수도 있다며, 이렇게 안으면 팔이 아프지도 않아 얼마든지 안아줄 수 있겠다며.

 

 

 

 

 

 

 할머니가 품자를 한참 안고 있을 때, 할머니 얼굴을 올려다 보던 감자는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나봐. 할머니가 나를 보아주지 않고 품자만 보고 있어. 할머니가 품자를 내려놓으니 감자는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할머니 앞에서 재롱을 피웠다. 할머니한테 보아달라고, 품자 말고 감자 좀 봐달라는 듯이. 그 재롱이 얼마나 열심이던지, 오히려 그 모습에 짠한 마음이 들 정도로. 떼 한 번 쓰고 그러진 않았지만, 그래도 서운했구나, 감자는.

 

 

 

 

 할머니 무릎에 앉아 이거리저거리각거리. (아빠가 전화기로 동영상을 찍을 때는 늘 한 템포가 늦어 다 지나간 뒤에나 담아놓곤 하지만 ㅜㅜ)

 

 

 

 

 할머니랑 같이 블록쌓기 놀이.

 

 감자는 숨바꼭질도 할머니한테 처음 배웠고, 할머니가 빨래를 널러 나갈 때마다 마당에 따라가서 한참씩 놀곤 했는데, 이젠 할머니가 없네. 할머니가 우엉을 갈아 전을 부쳐주던 것도, 토마토를 데쳐서 갈아주던 쥬스도, 감자 입맛에 꼭맞는 무국에 말아주던 밥도, 당분간은 먹을 수가 없어. 엄마아빠가 흉내를 내보려 하지만 할머니가 해주던 거는 따라할 수가 없는.

 

 저녁을 지나면서 달래도 나도 녹초가 되어 겨우 하나씩을 안아 재우며 기저귀를 삶아 빨고, 부엌 정리를 하다보면 할머니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지슬아, 할머니가 재워줄게. 할머니 방에 가자."

 

  

  

 할머니가 두고 간 모자. 

 

 

 마당엘 나가도 할머니는 없어.

 

 

 맞아, 할머니는 비행기 타고 올라가셨어. 아픈 거 다 낫고 다시 오실 거야.

 

 

 할머니, 얼른 나아서 감자보러 오세요.

 

 

 

 

 

고생만 하다 가셨다. 그렇게 아픈데도, 걱정하게 할까봐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면서. 가끔씩 부엌에 섰다가 부랴부랴 방으로 뛰어들곤 할 때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너무 아파 어쩌지 못할 때. 엄마는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팔을 두드렸고, 다리를 두드리거나 쥐가 오르는 발을 주물렀다. 소리를 내지 않고 아픈 걸 참느라 이를 물어 얼굴만을 찡그려.

 

 엄마 너무 고생만 하다가 갔어. 엄마, 허리랑 다리랑 팔이랑 아픈 것도 어서 낫고 아프지마. 엄마 잘 맞는다는 침놓는 데 다니고, 엄마한테 잘 듣는다는 그 병원에도. 엄마, 이제는 너무 참으려고만 하지마. 억지로 견디려고만 하지마. 엄마 마음에 드는 거 다 말하고, 엄마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얘기하고, 엄마가 정말 원하는 거, 엄마가 좋은 쪽으로, 엄마가 하고싶은대로. 엄마 미안. 엄마가 갔는데, 나는 엄마 아픈 거 생각보다 엄마 보고싶은 생각만 자꾸 난다. 감자도 기분이 이상한지, 할머니 방을 쳐다보며 한참씩 무언갈 생각하는 얼굴을 하곤 해. 엄마 얼른 나아. 그리고 얼른 다시 와. 엄마,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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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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