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시고, 감자품자네 집에선 또다시 엄마아빠 둘이서 두 아가를 돌보는 일상이 시작해. 실은 엄마아빠 둘이서가 아니라, 아빠가 일하러 나간 사이, 엄마 혼자서 감자품자 둘을 보아야 하는. 게다가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제주의 날씨는 얼마나 습하고 더운지, 장마 동안에는 그 습한 찜통으로 진이 빠지고, 장마가 지나고 난 뒤로는 나흘째 이어지는 폭염주의 아래에서 땀에 절어있느라 기운이 다 빠져버려. 아빠는 저녁 아홉 시만 넘으면 그때부터 눈이 감겨 감자를 안거나 품자를 안은 채 꾸벅꾸벅 졸기가 일쑤라. 그러고 나면 "오빠, 소파에서 졸지말고 들어가서 자." 달래 혼자서 두 아기를 거두고 재워야 하는 나날들.  

 

 

 젖을 물어야 하는 품자에게 엄마 품을 내주기는 했지만, 감자도 엄마 품 가까이에 있고 싶어. 엄마 얼굴 보이는 데서 젖병을 물겠다고, 엄마하고 살이라도 대고 있겠다고. 이렇게 두 아가가 나란히 젖을 물고, 젖병을 무는.

 

 

 

 이건 요 앞에도 올려두었던 거.. 한 손엔 유모차, 한 손엔 바구니차. 거기에 달려있는 바퀴 여덟 개는 얼마나 제멋대로 휙휙 돌아 방향조정이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지, 젊은아빠도 아닌 나이든 초보 아빠는 두 차를 밀고 끄느라 땀을 뻘뻘.

  

 

 그런 속에서도 제주에선 이런 일상이 있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지 이틀 째, 감자가 낮동안 바깥엘 나가지 못해 밤에 잠을 잘 못드나 싶어, 아빠가 퇴근해 저녁밥을 먹고 나서 조금 선선하다 싶을 때 찾아나선, 집에서 십 분 거리, 최단거리에 있는 고내 바닷가. 이 어둔 밤에도 감자는 신나게 뛰어다니며 흠뻑 땀을 뒤집어썼고, 아빠도 감자를 쫓아다니느라 속옷까지 다 젖어버리던. 그렇게 감자품자와 함께 하던 바닷가 밤마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요즘 흔하게 볼 수 있는 제주 바다의 클래스'랄까 ㅎ 폭염이 계속되던 어느 하루, 장마 구름이 다 걷히고 파란 하늘에 파란 바다가 얼마나 예쁘던지. 퇴근길에 달래에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집에 닿자마자 바다에 나가보자고. 어쩌다 바다에 나간대도 퇴근해서 씻고 저녁먹고, 깜깜한 바다만 나가고 그랬는데, 이 파란 바다며 하늘, 하얀빛깔 구름들을 감자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그렇게 해서 아빠가 퇴근하자마자 쫓아나간 밝은 바다. 집에서 아직은 일곱 시 너머까지 이렇게나 환해. 아빠가 퇴근하고 들어와야지나 겨우 바깥 걸음을 할 수 있는 달래도, 바다물빛을 보며 좋아하니 얼마나 기쁘던지.

 

 

 

 

 

 할머니가 올라가시기 전날이었나 보다. 이날은 아빠도 할머니도 다같이 집에 있던 날이었지만, 아마 달래가 낮동안 혼자서 감자품자를 보고있을 때, 이런 모습이겠지. 보고있노라면, 감자품자보다도 달래가 한없이 사랑스럽고 고마워지는.

 이날은 엄마가 둥글게둥글게 노래를 처음으로 불러주던 ㅎ 

 

 

 

 

 처음 불러줄 땐 감자가 엄마를 얼마나 유심히 보는지. 처음 불러주는 노래, 처음 보는 율동, 감자는 잠깐도 눈을 떼질 못하고.

 

 

 

 

 하하하, 그 다음 불러줄 때부턴 감자도 신이 나서, 재미있다고 터져버린 웃음이 그치질 않아. 

 

 

 

 

 그러더니 세 번째 불러줄 땐 감자도 엄마를 따라 율동을 따라하며 춤을 추었네. 품자도 그 곁에 앉아 엄마랑 형아랑 노래하고 춤추는 걸 열심히 보고 있어. 감자야, 품자야. 엄마가 참 고맙다, 그치.

 

 

 

 

 

 

 엄마가 품자를 안고 서성여야 할 때나 젖을 물리고 있어야 할 때, 감자와 마주보며 놀아주지 못할 때, 비를 좋아하는 감자는 혼자서 창밖으로 내리는 빗방울들을 내다보기도 하면서.

 

 

 품자를 안고 있으면서도 눈은 감자 형아를 보아야 하는 게, 품자에게도 늘 미안한 일이지만, 감자 형아가 낮잠이라도 자고 있으면 이렇게 품자하고만 오롯한 시간을 갖기도 하면서.

 

 

 도립미술관에선 강요배 아저씨 전시가 아주 좋다지. 피네 큰아빠가 보고 와서는 꼭 한 번 가보라고 권해주던 곳. 주말이 되었지만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바닷가 모래밭으로는 나가질 못하고, 그 참에 찾아간 미술관은 가보기를 참 잘했던.

 

 

 

 

 

 

 우와아아, 크레파스다! 맨날 자석칠판에만 그림을 그려야 했던 감자는, 색색깔로 들어있는, 정말로 종이에 그려지는 크레파스가 신기하고 신이 나. 감자가 기뻐하니, 엄마아빠도 기뻤지만 ^ ^ 조금 지나 깨닫게 되었네 ㅋ 감자에겐 스케치북이 너무나도 좁기만 하다는 걸. 크레파스를 손에 쥐면 장판이고 냉장고고, 심지어는 이불에까지 아무 데나 그림을 그려대는 통에, 감자를 쫓아다니며 지우고 말리고 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하게 될 거라는지를 ㅠㅠ 

 

 

 

 

 

 이렇게 두 아가와 살아가고 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 그러다 보면 어느 샌가 훌쩍 커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그게 위안이었다가도, 지금 여기에서 천천히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

 

 적어도 지금 이 순간들을 흘려보내거나 놓치고 싶지는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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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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