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달 전부터 계획을 두고 있었지만 팽목에는 가지 못했다. 한 주일 전부터 시작이던 것이, 달래가 허리가 많이 아파. 좋은 컨디션이어도 감자와 함께 뱃길로, 찻길로 그곳을 찾는 건 용기를 내어야 하는 일이어야 했으니, 아무래도 무리.
일 년이 지났다. 새벽 빨래를 마쳐놓고 나서 아침 밥상을 차리면서 이제쯤부터 선체가 기울기 시작했겠구나, 이제쯤이면 뉴스 화면 아래로 속보 한 줄이 잇달아 나오고 있었겠구나, 그리고 배에 물이 차기 시작했겠구나,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래, 엄마 보고 싶어, 살려주세요……. 그날 뒤로 그 바다 위로는 눈물겨운 삼백넷의 별이 반짝이고 있어.
제주에도 추모의 자리는 곳곳에 마련되었다. 그 가운데 선흘의 어느 조그만 농가 창고를 고쳐 만들었다는 <기억공간, 리본(re:born)>. 거기에 '아이들의 방'이라는 이름으로 기억의 전시를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되어.
아이들의 방을 찾아가는 길엔 약간 애를 먹었다. 보았던 제민일보 기사에 소개된 주소를 찾아갔더니, 엉뚱한 산길에서 끊기고 말아. 다시 검색을 하여 어느 게스트하우스 블로그에 올라 있는 주소를 찾았더니 거기도 역시 아니. 여기저기 연락 끝에 리본 운영자의 전화번호를 물어 찾아간 곳은 선흘리 3982번지. 제주 시내에서는 한참 들어가야 하는 곳이지만, 그리 외진 곳은 아니었다.
창고 주인 할머니가 선뜻 내주어서 마련할 수 있었다던 공간. 저 안에 바다 속에 잠기고, 끝내 별이 되어 빛나는 아이들의 방이 마련되어 있어.
재잘거리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흙먼지 날리며 뛰어다니던 환한 얼굴, 그 눈물겨운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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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야, 그 배에는 언니형아들이 있었어. 그리고 할아버지할머니들도, 아저씨아줌마들. 그리고 감자처럼 아주 갓난 아기도, 아직 엄마 뱃속에서 세상을 기다리던 더 어린 아기도.
감자가 살고 있는 여기 제주섬, 이리로 건너오던 커다란 배. 그 배가 가라앉은 건 어쩌면 엄마아빠가 잘못 살아온 때문인지 몰라. 어디서부터 잘못이었을까, 어떻게 해야 다시는.
끝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어떤 걸까. 진실을 말한다는 건 무얼까. 그러나 적어도 분명한 건 우리 누구도 저 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거.
아이들의 방에서 나와 제주시청 앞으로. 추모문화제가 시작하기 전에도 이미 많은 이들이 모여 있어. 조금 전에 보고 나왔던 - 교복과 체육복, 운동화, 휴대폰, 일기장 들로만 남은 그 아이들과 또래의 아이들이 차가운 바닥 위로 촛불을 들고 앉았고, 그보다 어린 아이들도, 그리고 감자처럼 엄마 품에 안긴 갓난 아이들도.
선흘의 기억공간에서 산 리본 배지를 하나씩 가슴에 달아. 그러고보니 한 해가 지난 이제서야 노란리본 가슴에 달았구나.
아무 것도 바뀐 것없이 슬픔만 더해가던 지난 한 해. 발언자의 말은 정부를 향한 분노였지만, 단상에서 들려오던 이 말은 가슴을 치기에 충분했다. 그래, 나는 얼마나, 무엇을 바꾸었을까. 나는, 우리는.
'세월호 의인'으로 알려진 김동수 씨가 무대 위로 올라. 사고 당시 배 안에 있던 소방호수를 자신의 몸에 묶고 열 명의 학생들을 구하고 나온. 지난 3월, 사고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절망에 겨워 자해를 시도해, 안타까움을 전하던.
의아하고 신기했을까, 점점이 흔들리며 밝히고 있는 촛불들. 무대 앰프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기에, 어른이라도 귀청이 아프도록 큰 소리였지만, 감자는 마치 알아듣기라도 하는 양 가만히 무대 앞만 응시해. 집에서도 그 정도 시간을 한 자세로 있었다면 안아달라 하거나 서서 거닐어달라고 하곤 했을 텐데, 한 자세로 가만히 앉아서도 보챔이나 칭얼거림없이.
세상에 나온지 백팔십삼 일, 처음으로 함께 한 촛불, 그 슬픔.
사흘 전, 피네 아저씨가 보내어준 사진들. 지난 번 들이네 집에 모여 함께 그린 기억타일들 아저씨는 마지막 작업을 위해 팽목에 있었고, 그동안 더 모아진 기억타일들과 그 가운데 새겨둘 석조 조형물을 설치하고 있었다. 비가 오던 날이었어.
천이백 도 가마에 들어갔다 나오고 나니 빛깔이 조금 진해진 것 같아. 단단하게 새겨넣은 슬픔의 약속들.
4565명이 한 조각씩 모은 약속의 도자기 편들. 그 사이로 돌판 가득히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겨넣어.
석조물 설치를 마쳤을 때 지켜보던 유가족들이 그 이름들을 더듬더라는. 초성만으로 새겨넣은, 다시 볼 수 없는 얼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