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타일

냉이로그 2015. 3. 21. 03:52

 

 

 

 지난 주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어린이책 작가들> 모임에서 팽목항을 뒤덮을 타일그리기를 하러 제주에 다녀갔다. 임정자 선생님과 피네 아저씨 둘이 내려왔는데, 같은 날에 제주시와 서귀포시 두 곳에서 행사를 계획하고 있어서 두 분이 각각 한 곳씩을 나누어 진행을. 

 

 서귀포보다 사람이 많이 살고, 여러가지 문화행사가 활발한 제주는 그 짧은 시간에 삼백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던가.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바로 그 가라앉은 배가 닿고 싶었던 목적지. 일상으로 그 배를 타고 육지를 오가며 생업을 잇던 이들이 살아가는, 실제로 그 배에 탔던 이들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이 또한 살아가고 있는 곳.

 

   

 

 

 나는 피네 아저씨 조수가 되어 서귀포 행사장으로. 그 자리를 찾은 오십여 명의 사람들. 다른 지역에서 그려낸 타일 사진들을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정말 다들 얼마나 정성을 들이며 그림을 그리던지. 아이들이 그린 것은 아이들 그림대로, 어른들 것은 어른들 것대로, 그 조그만 도자기편에 그려넣은 건 바로 그이의 마음, 그 사람이었다.

 

 

 

 

 

 

 타일이 제주에 내려오면 우리도 한 장씩, 감자도 물감을 찍어 바르게 하자고 하고 있었는데, 막상 행사를 해보니 그 자리에서는 함께 하질 못했다. 나는 피네 아저씨 조수가 되어 서귀포 행사장으로 쫓아내려가야 했고, 감자는 그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하여 함께 갈 엄두가 나질 않아. 무리를 하여 갔다 하더라도 그 행사장에서 함께 그림그리기를 하기는 아마 어려웠을 것도 같아.

 

 암튼, 그렇게 행사 진행을 하고 난 뒤 피네 아저씨랑 들이네, 감자네는 저녁을 먹으러 소길리로 함께 들어왔다. 그러고는 밥을 먹기 전에 상 위로 타일과 물감, 빠레트를 펼치고 집에서 그림 하나씩을 그리기로 해.

 

 

 

 처음에는 웃어가며, 또다시 들이와 들이아빠의 그림 시합이 열리는 거냐며 즐겁게 시작하였지만 저마다 연필과 붓 한 자루씩을 들고 도자기편에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하면서는 사뭇 고요하고도 집중되는 시간.

 

 

 

 

 그리고 맨 마지막엔 감자도 발바닥에 물감을 칠해 타일에 찍는 것으로, 다같이 웃으며 다같이 감동하며 소길리 식구들도 다섯 장의 타일을 팽목으로 보낼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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