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났을 땐 녀석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더러 원주엘 가거나 사잇골에서 글과그림이 모일 때면 삼촌, 삼촌하고 부르며 따라다니던 아이. 목수학교를 마치고 먹통 엉아와 함께 지은 그 집은 아이가 살 집이었다.
1.
아직도 철딱서니 중학생이던 아이, 우리가 지은 집에선 아이가 살았다. 그러던 어느 초여름, 아이는 내게 더이상 삼촌이라 부르지 않고 형이라 부르게 되었다. 얌마, 너 은하 씨한테는 형이라고 하면서 나보구는 왜 삼촌이래? 내가 먼저 눙을 쳤겠지. 아이가 함께 살던 집에는 나이 많은 형이며 누이들이 층층이 있었으니. 아이는 장난어린 눈으로 머뭇거리던 끝에, 그럼 형이라고 할께, 했고 그 말이 나는 반가웠다. 아무렴, 삼촌보다야 형이 낫지. 녀석과 내 나이는 스물하나 차이. 그래, 이제부터 나는 네 형이다.
2.
여기, 냉이로그에도 녀석은 더러 등장하고 있어. 때로는 근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2013'이 한참 유행일 땐 남순이라는 별명으로, 그리고 '너목들'이 재미날 땐 종석이라 부르면서. 예전에 써놓았던 거를 찾아보니 데이트 (2008.8.21)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게 있네. 거기엔 요렇게 놀던 사진 몇 개가 조로록 올라 있기도 해.
미천 골짜기에 갔을 때 (2008. 8. 9)
양양, 서면에 있는 미천이라는 골짜기. 세상에나, 이 녀석 저렇게 쪼꼬말 때가 있었다니. 일곱 해가 지난 지금은 키가 쭉쭉쭉 자라, 지금은 나보다 한 뼘은 더 커 백팔십칠이라던가, 팔이라던가. 우리는 양양에 살며 이렇게 놀았다. 속초에 나가 데이트를 했고, 설악엘 오르거나 해안선을 따라 강릉으로 내려가거나.
3.
스물한 살 차이가 지는 내게 '형'이라 부르던 게 몇 해 지나고, 녀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갈 무렵, 우리는 말그대로 형과 아우, 식구가 되었다. 사랑이며 우정이며 그리움을 강조하는 말로써가 아니라, 생을 거는 책임과 약속까지 다하게 되는 말그대로의 식구. 내가 과연 다할 수 있을까, 겁이 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러나 고마웠다, 기꺼이 아우가 되어주기로 한 녀석이. 그리고 좋았다, 나를 형으로 받아준 이 녀석이. 그때는 이미 달래와 혼례를 얼마 앞두지 않았을 때이니 나 혼자 결정할 수만은 없던 일, 그러나 달래도 같은 마음. 우리는 형이며 누나가 되었고, 녀석은 우리를 지켜줄 아우가 되어. 가족의 탄생, 그동안 최고로 꼽던 영화 중 하나이던 김태용 감독의 그것이 이렇게 현실로.
4.
컴퓨터 만지는 일을 하고 싶다 했지만, 녀석이 들어간 곳은 토목을 공부하는 쪽이었다. 진학 고민을 하던 때, 녀석이 뜬금없이 내뱉는 말.
형은 그런 거 싫어하지?
- 왜?
땅 파헤치고, 산 깎아내고 그런 거 싫어하는 거 아냐?
그러나 당시로선 녀석의 사정상 다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앞뒤로 놓여있던 어려움. 나로서는 대학에 가지 않는 걸 권유했지만, 그 또한 무책임한 말일 수가 있어. 진학을 해야 한다면 다른 선택지는 없었고, 녀석에겐 그 문제가 단순히 진학의 문제 뿐이 아닌 스무살 이후 삶의 여러 조건들이 다 같이 맞물려 움직여질 문제였다. 게다가 맞닥뜨리게 된 현실과 아픔까지.
그런 거 싫어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 그냥 느낌상. 사잇골 선생님들은 그런 거 다 안 좋아하잖아.
그런데 토목이라는 게 원래 나빠서는 아니야.
- 좋은 것도 있어?
그럼. 길이 막혀 다닐 수 없는 이들에게 길을 내어주고, 물이 가로막아 움직일 수 없는 이들에게 다리를 놓아주고…… 뭐든지 배운 걸 이롭게 쓰면 이로운 거고, 아무렇게나 쓰면 나쁜 거고 그런 거지. 쓸 데 없이 자꾸 길이나 내고, 터널을 뚫고, 강바닥을 파헤치고, 그런 게 너무 많아 그렇지.
녀석은 형이랑 같이 일을 할 수도 있는 거냐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건축이랑 토목은 같이 가는 일이야. 녀석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같이 일할 수도 있겠네. 정말이지? 정말!
5.
스무 살이 넘으면서 녀석은 속이 꽉 찼다. 나만 해도 그 나이 때 그러질 못했어. 방학이면 꼬박 두어 달을 뜨거운 기름솥 앞에서 알바를 했고, 매번 시험을 보고 나면 자신이 없다 했지만 기특하게도 장학금을 받았다. 물론 지금도 어린 애 같은 구석이 있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것 한 가지만은 분명해. 자신의 삶을 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거. 여전히 예쁘고 착했다. 달래와 나는 감자가 뱃속에 있을 때 딸아이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아들이 나온다면 근이를 닮은 아이가 나오기를 입모아 말하곤 했다. 멍청이여도 좋고, 세상 일에는 눈치없고 둔해도 좋아. 그저 착하고 순한 아이이기를. 꼭 이 녀석처럼.
6.
스물둘, 녀석이 제주에 다녀갔다. 다음 달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고, 지슬이 얼굴을 보고 갈 거라고. 그렇게 해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온 것이 삼월 말, 처음엔 한 주일정도 지내다 가려했지만 한 주일을 더, 한 주일을 더, 또 한 주일을 더, 그렇게 하여 근이는 이곳에서 한 달을 보냈다. 녀석은 육아보조의 보조가 되어 감자가 싸면 물수건을 적셔왔고, 바깥에 나갈 때면 기저귀 가방을 챙겼다. 우리는 용수와 신창으로 나가 바닷가 풍력발전단지를 함께 걸었고, 도서관에 나가 감자 그림책을 함께 골랐다. 삼성혈 나무 숲으로 가 감자와 네 식구 가족사진을 찍었고, 우리 둘이서는 아직 눈 쌓인 한라 백록엘 올라. 벚꽃이 피는 길을, 벚꽃이 지는 길을. 그러다 하루는 군포로 출동하여 원화전 갤러리에 그림을 함께 걸고 내려왔고, 기차길옆작은학교 공연에는 감자네 식구를 대표하여 혼자 인천으로 다녀오기도 했어.
감자를 처음 만나던 날, 근이는 감자에게 삼촌이었다. 형 동생이니 당연히 삼촌이지. 그런데 나이를 셈해보니 나하고 녀석은 스물하나 차이, 녀석하고 감자는 스무 살 차이. 억울하다나, 안 되겠다며, 그 다음부턴 감자에게 삼촌 아닌 형이 되겠다는 거. 야, 그럼 촌수가 뒤죽박죽이잖아, 하하. 그래, 촌수가 무슨 상관이람, 니가 나를 삼촌이라 부르다 형이라 하는 것처럼, 감자도 너를 삼촌으로 만났다가 형이라 하게 되겠네. 이로써 우리의 '가족의 탄생'은 액자식 구성이 되어버려.
7.
근이는 일찍 장가를 들어, 일찍 아빠가 되고 싶다 했다. 기저귀를 갈고 빨고, 젖병을 씻고 챙기고, 감자를 안고 재우고 할 때마다 하나하나 어찌나 유심히 보며 물어보던지. 마치 하나하나 머릿속에 받아적기라도 하듯이. 윗집의 들이와 만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레기덩 형님이 근이에게 버킷리스트가 뭐냐고 물었더니, 녀석의 대답은 "아빠되는 거요!" 라나. 엉뚱한 대답이긴 했지만, 근이에게는 그게 가장 소박하면서도 귀한 소망. 군대에 있는 동안 자기 시간이 생기거나 하면은 그때부터 바로 기사 시험 공부를 시작할 거라며.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면 바로 장가를 들고 싶다고. 그러면 그 아기랑 감자랑은 몇 살 차이가 될까, 셈을 해보기도 하며. 그렇담 감자는 그 아기에게 형이나 오빠가 되겠구나. 근이는 감자의 형이고, 나는 근이의 형이고. 아, 이거 이촌 관계로만 계속 이어지는 새로운 가족!
근이가 내려온 첫 날.
처음엔 이렇게 어색했지 ㅋ
삼성혈, 나무 많은 공원으로 소풍도 나가고.
풍력발전 바람개비가 많은 싱계물 공원에도 함께 나가.
바람이 세면 근이 형아가 감자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자연스레 기저귀가방이랑 감자맘마 같은 걸 챙기는 담당이 되어.
감자야, 아빠 동생이야, 너한텐 형아.
어느 날은 협재 바닷가에.
또 하루는 한라산 백록 꼭대기에.
아, 제주에 지내는 동안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지. 레기덩 형님이랑 "스물둘, 스물둘" 하며 술을 마시던 저녁.
푸하하, 형네 집엘 왔더니 고기를 먹을 수가 없어! 군대가기 전에 고기도 안 먹여줬다고 나중에 뭐라 하겠다며, 흑돼지 어때? 했더니 입이 좌아아아악 벌어지더라니 ㅎㅎ 그러니 고깃집 인증샷도!
벚꽃이 활짝일 때는 벚꽃 길로.
이렇게 안아 보란 말이야. 감자가 힘들잖아 ㅋㅋ
저렇게 팔 벌려 사진을 찍는데, 왜 눈물이 났을까.
벚꽃이 질 때면 또 그 나무 아래로.
감자랑 눈높이를 맞추어 쫓아다니며.
형아가 밀어줄게.
감자가 잠이 들면 누나랑 마주 앉아 이렇게 만화책을 ㅋ
보름 쯤 지나서였나.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겁을 내더니, 이제는 놀 줄을 알아 ^ ^
감자 너, 형 휴가나왔을 때 몰라보면 안 된다 (굽신굽신 ㅠㅠ)
한 달이 다 되어갈 즈음엔 이렇게나 잘 놀아! (이제 겨우 친해졌더니 가야 하는구나 ㅜㅜ)
맘마도 형아가 먹여줄게.
감자도 형아가 좋으니.
형아도 감자가 좋아.
그래서 근이는 휴대폰에다 감자 사진을 팡, 팡, 팡, 팡!
다음에 만날 땐, 형아야 하면서 활짝 웃어줘야 해.
이젠 정말 간대. 입대를 앞두고 사잇골 식구들에게 인사하러 올라가던 날. 떠나기 전 집 앞에서 한 번 더 가족사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