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이

냉이로그 2015. 4. 28. 00:54

 

 

     

0.

 

 처음 만났을 땐 녀석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더러 원주엘 가거나 사잇골에서 글과그림이 모일 때면 삼촌, 삼촌하고 부르며 따라다니던 아이. 목수학교를 마치고 먹통 엉아와 함께 지은 그 집은 아이가 살 집이었다.

 

 

1. 

 

 아직도 철딱서니 중학생이던 아이, 우리가 지은 집에선 아이가 살았다. 그러던 어느 초여름, 아이는 내게 더이상 삼촌이라 부르지 않고 형이라 부르게 되었다. 얌마, 너 은하 씨한테는 형이라고 하면서 나보구는 왜 삼촌이래? 내가 먼저 눙을 쳤겠지. 아이가 함께 살던 집에는 나이 많은 형이며 누이들이 층층이 있었으니. 아이는 장난어린 눈으로 머뭇거리던 끝에, 그럼 형이라고 할께, 했고 그 말이 나는 반가웠다. 아무렴, 삼촌보다야 형이 낫지. 녀석과 내 나이는 스물하나 차이. 그래, 이제부터 나는 네 형이다. 

 

 

2. 

 

 여기, 냉이로그에도 녀석은 더러 등장하고 있어. 때로는 근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2013'이 한참 유행일 땐 남순이라는 별명으로, 그리고 '너목들'이 재미날 땐 종석이라 부르면서. 예전에 써놓았던 거를 찾아보니 데이트 (2008.8.21) 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게 있네. 거기엔 요렇게 놀던 사진 몇 개가 조로록 올라 있기도 해.  

 

 

 미천 골짜기에 갔을 때 (2008. 8. 9)

 

 양양, 서면에 있는 미천이라는 골짜기. 세상에나, 이 녀석 저렇게 쪼꼬말 때가 있었다니. 일곱 해가 지난 지금은 키가 쭉쭉쭉 자라, 지금은 나보다 한 뼘은 더 커 백팔십칠이라던가, 팔이라던가. 우리는 양양에 살며 이렇게 놀았다. 속초에 나가 데이트를 했고, 설악엘 오르거나 해안선을 따라 강릉으로 내려가거나.  

 

 

 

 

6.

 

 스물둘, 녀석이 제주에 다녀갔다. 다음 달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고, 지슬이 얼굴을 보고 갈 거라고. 그렇게 해서 비행기를 타고 내려온 것이 삼월 말, 처음엔 한 주일정도 지내다 가려했지만 한 주일을 더, 한 주일을 더, 또 한 주일을 더, 그렇게 하여 근이는 이곳에서 한 달을 보냈다. 녀석은 육아보조의 보조가 되어 감자가 싸면 물수건을 적셔왔고, 바깥에 나갈 때면 기저귀 가방을 챙겼다. 우리는 용수와 신창으로 나가 바닷가 풍력발전단지를 함께 걸었고, 도서관에 나가 감자 그림책을 함께 골랐다. 삼성혈 나무 숲으로 가 감자와 네 식구 가족사진을 찍었고, 우리 둘이서는 아직 눈 쌓인 한라 백록엘 올라. 벚꽃이 피는 길을, 벚꽃이 지는 길을. 그러다 하루는 군포로 출동하여 원화전 갤러리에 그림을 함께 걸고 내려왔고, 기차길옆작은학교 공연에는 감자네 식구를 대표하여 혼자 인천으로 다녀오기도 했어.  

 

 

 

 감자를 처음 만나던 날, 근이는 감자에게 삼촌이었다. 형 동생이니 당연히 삼촌이지. 그런데 나이를 셈해보니 나하고 녀석은 스물하나 차이, 녀석하고 감자는 스무 살 차이. 억울하다나, 안 되겠다며, 그 다음부턴 감자에게 삼촌 아닌 형이 되겠다는 거. 야, 그럼 촌수가 뒤죽박죽이잖아, 하하. 그래, 촌수가 무슨 상관이람, 니가 나를 삼촌이라 부르다 형이라 하는 것처럼, 감자도 너를 삼촌으로 만났다가 형이라 하게 되겠네. 이로써 우리의 '가족의 탄생'은 액자식 구성이 되어버려.

 

 

7.

 

 근이는 일찍 장가를 들어, 일찍 아빠가 되고 싶다 했다. 기저귀를 갈고 빨고, 젖병을 씻고 챙기고, 감자를 안고 재우고 할 때마다 하나하나 어찌나 유심히 보며 물어보던지. 마치 하나하나 머릿속에 받아적기라도 하듯이. 윗집의 들이와 만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레기덩 형님이 근이에게 버킷리스트가 뭐냐고 물었더니, 녀석의 대답은 "아빠되는 거요!" 라나. 엉뚱한 대답이긴 했지만, 근이에게는 그게 가장 소박하면서도 귀한 소망. 군대에 있는 동안 자기 시간이 생기거나 하면은 그때부터 바로 기사 시험 공부를 시작할 거라며.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하면 바로 장가를 들고 싶다고. 그러면 그 아기랑 감자랑은 몇 살 차이가 될까, 셈을 해보기도 하며. 그렇담 감자는 그 아기에게 형이나 오빠가 되겠구나. 근이는 감자의 형이고, 나는 근이의 형이고. 아, 이거 이촌 관계로만 계속 이어지는 새로운 가족!

 

 

 

 

8.

 

 

 머리깎아도 예쁘네. 잘 다녀와, 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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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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