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않고

냉이로그 2014. 8. 9. 00:26


            
1. 

 어머나! 시와의 노래들에 불어 버전이 있었다니. 페퍼문이라는 프랑스 팀과 함께 낸 음반. 시와 목소리로 듣던 것과는 또 달라. 여전히 시와의 목소리로 부른 노래들에 훨씬 마음이 잠겨들지만, 불어 버전으로는 묘한 매력이 있다. 간절하게 어떤 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잇골에 함께 살던, 이제는 가고 없는. 이 노래들을 들려주면 눈을 지긋이 감았겠지. 
 
 

 서두르지 않을래 / 시와&페퍼문

유튭에서 찾아보니 불어 버전의 그 노래들은 아직 올라 있지가 않아 따올 수는 없었는데, 그대신 아직 음반으로 나오지 않았던 이 노래를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게다가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시와의 파마 머리까지. 이런 노래를 듣는 일은, 언제라도 고요하다.




2.

 아버지 생신이라, 전시회 일정보다 하루를 당겨 날이 밝으면 비행기를 탄다. 해마다 쇠약해지는 아버지를 찾아뵈면서, 앞으로 몇 번이나 아버지 생신을 더 챙겨드릴 수 있을까를 생각해. 혹시, 이번에 올라가는 길에는, 기왕이면, 생신 날에 새로 나올 책 한 권을 전해드릴 수 있을까 싶은 바람. 그 전에 책이 나오기는 하겠는데, 내가 전해받아 그걸 들고 갈 시간은 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낮은산 아저씨가, 인쇄소에서 책이 들어오면 아버지 댁으로 먼저 한 권을 부쳐주겠다고 하였는데, 엊저녁 새 책을 받았다는 어머니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 나도 보지는 못해. 궁금하여 인터넷 책방에 들어가보니, 서가에 꽂혀 있어. 




3. 

 오바마는 어제 날짜로 이라크에 공습을 승인하였다. 공습이란 말은, 이제는 너무도 익숙하여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거나 경악스런 어떤 말로 들려지지 않는다. 마치 야구나 축구 경기에서 어떤 작전명을 말하듯, 가히 그럴 수 있는 하나의 전술 정도로만 여겨지는 말. 그러나 공습을 승인했다는 말은, 무차별의 살인 면허를 주었다는 말과 다름이 아니. 그것도 인간과 인간이 서로의 눈동자, 숨결을 느끼며 벌이는 전쟁이나 전투가 아니라, 군사무기의 우세를 이용하여 일방적으로 포화를 쏟아붓는 그 행위를 인정했다는 것. 그래놓고는 <지상군은 파견하지 않고, 공습만 허용> 한 것을 그나마 잘하는 일처럼 내세우고 있는데, 그 뻔뻔함이야 뻔뻔함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적고 있는 국내 언론은 더 어처구니가 없어. 그건 쉽게 말해 자국 병사의 피해 없이, 무차별 폭격으로 죽이겠다는 것에 다름아닐진대, 오바마의 국민들에게나 통할 핑계가 될지언정, 그게 어디 이 나라 언론이 받아적을 일인가. 자칫하면 그 말투와 어조에 속아넘어갈 지경. <그래도 지상군은 파견하지 않으니 다행> 이라 여기게 되면서 ㅠㅠ. 그래놓고는 이 끔찍한 소식을 전하는 기사 맨 밑단에는 공습 결정으로 인해 코스피 지수가 몇 포인트 떨어졌는지, 환율이 얼마나 내려갔는지를 빠뜨리지 않고 붙여놓고 있어. 인간이 인간을 학살해도 좋다는 승인 앞에서, 코스피지수와 환율의 등락부터 걱정을 해대는.

 제국은 이라크 땅에서 벌어지는 제노사이드를 막기 위해, 인도주의에 따른 결정이라 하지만, 그 멀지 않은 땅 가나안에서 벌이는 엘의 무참한 학살 앞에서는 눈을 감고만 있었다. 그토록 무참히 죽어가고 있는 팔의 사람들, 아이들에게는 베풀어지지가 않는 그 이상한 인도주의. 이제 제국은 또다시 이라크로 공습 미사일을 쏘아대고, 엘은 여전히 팔의 땅으로 폭격을 멈추지 않는다.

 그곳이 내전의 수렁으로 들고 있다지만, 그것은 내전이라는 이름 뒤로 숨은 침략의 연속일 뿐.   




4. 

 태풍이 피해간다지만 오늘 하루종일 바람이 쉴 새 없었다. 워낙에 센 녀석이어서 가장자리만 스쳐가는 걸로도 이렇게나 세게 바람을 일으키는 걸까. 정낭 안으로 마당에 심어놓은 콩잎들은 쉴 새없이 이파리를 뒤집어. 아침 일찍이 비행기를 타야할 텐데. 이번에 올라가면 한 열흘은 육지에 머물어, 서울에서만도 일주일 가량을 머물게 될 텐데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이어지는 일인시위가 그때까지 이어지겠는지. 광화문 앞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농성장 곁으로는 어린이책 작가들의 한뼘 그림책 부스가 있다는데, 그곳과 전시장을 오갈 수 있으려나 막연히 생각한다. 식구들을 만나러 올라가는 길을 빼고선, 서울에 가는 길이 꽤 오랜만인지라, 저녁 시간의 약속들은 이미 빽빽하게 놓이고 말았으니, 그런 와중에도 취한 밤들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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