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0. 내전
아이에스아이엘, 혹은 아이에스아이에스. 내전의 가능성이 이야기되고, 오바마가 뉴스에 등장한다. 지상군 아닌 정보부대라 하지만 그린베레라는 이름의 특수부대. 제국의 군대는 완전 철군 2년만에 다시 출동했다.
1. 계획
예견되고 있던 일들. 종파갈등, 종족분쟁이라고 쉽게 말들을 하지만, 이미 그것은 침략군의 계획 안에 있었고, 점령군의 의도로 부추겨졌으며, 효과적인 지배를 위한 조건이자 지속적인 강탈을 위한 명분이 되는 것들. 그 땅에는 이미 오랜 세월 속에서 수니와 시아라는 비슷하고도 다른 믿음의 방식을 지닌 두 줄기의 이들이 따로또같이 살아오고 있었다. 또한 북부 지역에서는 종족을 달리한 쿠르드인들이 반자치지역을 이루며 살아오고 있었어. 애초 침략자들은 그 땅의 민주주의라거나 인민들의 평화, 자유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네들에게는 침략의 명분이 필요했고, 공격을 마친 뒤에는 주둔의 근거를 가져야 했어. 침략의 명분은 거짓으로 일관, 있지도 않은 화학무기를 운운하며 악의 축으로 몰아세웠고, 기세좋게도 공격을 감행. 그 이후에는 점령의 근거를 갖기 위해 그 땅의 불안이 필요했다. 마침 그 땅의 권좌에 있던 후쎄인 정권은 급진수니파의 바트당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세력. 침략군은 독재자를 끌어내렸고, 점령군은 독재를 지탱해온 구세력을 몰아낸다는 명분으로 수니를 궁지에 몰아넣어. 그런 한 편, 시아에게 좀 더 많은 권력과 기회, 점령의 떡고물을 떨어뜨려주면서 두 종파가 서로를 증오하게끔 만들어. 그러면서 쿠르드 반자치지역에는 마치 당장이라도 분리독립을 시켜줄 것 같은 희망고문으로 저항을 무력화시켜가는 전략을.
2. 치환
침략과 점령에 대한 저항을 무력화시키기에 가장 좋은 것은, 그땅 민중들의 분노를 그들 내부 증오로 치환시켜버리는 일. 내부 갈등을 조장, 내전과도 같은 상황이 이어지게끔 한다. 필요에 따라 어느 한 쪽 편에 힘을 실어 그들을 말 잘 듣는 꼭두각시로 만들어어버리면서, 또 다른 한 편에는 억압과 소외를 가중한다. 공존이 가능했던 어느 두 집단은 비로소 서로를 증오하게 되어. 분노의 대상은 점령군이 아닌 서로의 서로. 그 어떤 점령자들도 이와 같은 공식을 피하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앞잡이나 부역자를 두기도 하였으나, 그보다 더 지능적인 점령통치의 메뉴얼은 피점령 민중들이 몇 갈래로 나뉘어 서로 아귀다툼으로 들게 하는 것. 때로는 종파를 기준으로 민중들을 갈랐으며 때로는 인종을, 때로는 이념을, 때로는 지역을, 때로는 생산수단 소유 여부를 기준으로 서로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65년 전 한반도에서는 이념이 되었고, 10년 전 이라크에서는 종파가 되었다. 이념이나 종파를 위해 죽이고 죽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죽이고 죽여야 했으며, 증오가 증오를 불러일으켜 나도 모르는 사이 이 편이 되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 저쪽에 대한 막연한 분노에 휩싸이게 되는.
3. 분할
침략자들에게는 이라크 민중이 두 종파로 나뉘어 서로를 적대하게 되는 일이 가장 효과적이라 여겨졌을 것이다. 게다가 종족이 다른 북쪽의 자치지역까지. 게다가 수니와 시아, 쿠르드로 적대를 조장하여 분리통치를 하기에 더 좋은 조건이 있기까지 했어.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이 다수를 이루는 지역에는 키르쿠크와 모술이라는 막대한 유전지대가 있고, 시아파가 많이 모여사는 남부의 바스라 일대 또한 어마어마한 유전지대. 그에 반대 이라크 수니파 다수가 살아오던 이라크 중부 지역에는 이렇다 할 유전이 있질 않아. 그러했으니 이라크 땅을 크게 셋으로 잘라 북부 쿠르드와 중부 수니, 남부 시아로 쪼개어 분할통치를 할 수 있다면, 그들의 본색 그대로 빨대를 꽂을 수가 있어. 막대한 그 유전지대들.
4. 착시
십 년이 지났고, 석 달이 더 지났다. 어느덧 뉴스의 중심에서 침략자들은 보이지가 않고, 빨대 장착을 마친 점령국은 철군이라는 미명 아래 그곳에서 발을 빼는 듯 했다. 그 와중에도 계속 이어져온 전쟁상황. 어느덧 그곳의 혼란은 애초부터 종파갈등과 종족분쟁이 그 뿌리에 있었던 양 문제를 치환시켜버린다. 거기에 해석이 덧붙여지고 있는 주변국들과의 세력관계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시리아, 수니파를 돕고 있다는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쿠르드자치독립의 움직임까지. 이와 같은 해석이 더해지면서 그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의 악순환은 그야말로 종파 및 종족 갈등이 그 모든 것의 시작이며, 그 모든 일들의 전부였다는 착시를 들게 했다.
5. 공존
그러나, 과연 그랬던가. 그 땅에서 일곱 아이를 낳아 평범하게 살아오던 살람 아저씨는 수니파의 교리대로 이슬람을 믿던 순박한 아저씨였고, 아저씨의 아내는 시아파 사원을 찾아 식구들을 위해 기도하던 여인이었다. 아저씨가 살던 마을에는 수니파 이맘을 따르는 이들과 시아파 사원을 찾는 이들이 정답게 어울려 살았다. 또한 아저씨는 북부 쿠르드 지역에 믿음을 나누던 친구가 있었고, 그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 이라크인이라 여기지 않는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들려주었다. 마치 오끼나와 주민들이 자신들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뿌리깊은 정서를 가지고 살아오고 있듯. 그렇게 그이들은 따로또같이, 혹은 한지붕세가족으로, 서로가 서로의 이웃이 되고, 우정을 나누며, 때로는 가족을 이루기도 하면서 살아오고 있었다.
6. 시작
그들을 적대하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무차별적인 테러를 가하도록 내몰아온 것은 무엇이었는지. 한반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집단학살을 가하던, 좌익과 우익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이 땅 백성들과 다른 게 무엇인지. 반도가 두 동강이 나버린 것처럼 유전지대가 가득한 올리브 나무의 그 땅이 두 토막, 세 토막이 나 버린다면, 끝내 종파갈등 때문이었다고 말을 하겠는지, 종족갈등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하겠는지.
침공, 그 순간부터 이미 내전은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사들. [레디앙]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후 11년, 카오스의 이라크, 2014.06.22 [프레시안] 이라크, 미군 철수 3년 만에 내전 속으로, 2014.06.21 [참세상] "이라크에는 석유가 아닌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2014.06.18 [경향신문] ISIL과 이라크 내전의 본질, 2014.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