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꽃

냉이로그 2013. 5. 9. 22:30




 이 꽃들을 다 어쩔.   





 여기 순흥, 부석에서는 어디를 가나 이 어마어마한 사과밭을 피할 수가 없어. 성혈사라는 절은 트럭에 짐만 조금 실어도 올라가기가 겁날 정도로 깎아지르는 비탈 꼭대기. 그 비탈을 오르는 길에서도 어김없이 사과나무 밭은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 





 지난 주부터였나 보다. 이제 사과꽃도 피기 시작했구나, 하던 것이. 





 꽃들을 솎아주는 아주머니들 손길이 바뿌지.





 순흥으로, 단산으로, 부석으로, 이 어마어마한 사과나무 밭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그러다 어제부턴 봉화에 있는 송석헌이라는 고택 현장으로 일을 다니게 되어. 순흥에서 출발, 단산면을 지나고, 부석면을 들어가, 봉화의 물야 쪽으로 길을 틀었을 때, 이게 다 모야. 어쩜 이럴 수가 있나. 사과나무에도 수령이 오래된 고목들에 피는 꽃들은 같은 꽃이라도 레벨이 달라. 앞에 달리던 트럭을 세우고, 뒤따르던 우리 트럭도 세우고, 잠깐 내리자 했다. 기겁을 하며 좋아라 하는, 입을 못 다물고 놀라며 펄쩍펄쩍 뛰는 나를 보며 부석이 고향인 김과장과 올 해 칠순을 보내신 장반장님은, 철없는 애녀석 보듯 해.





 세상에나, 얘네들을 다 어쩔 거냐구!





 밭 한 가운데로 들어가 가득만발한 저 사과꽃들에 취해 있다가, 다시 판타지로 빠져들어. 저 하얀 꽃들 자리마다 빨간 사과알들이 매달리게 될 상상. 그러고는 장반장님을 불러, 김과장을 불러, 돌아가며 사진을 찍자고 이리 폴짝 저리 폴짝!  

 




 장반장님도 싫지 않은듯 작업모를 벗고 머리를 가지런히 손질해 사과나무 아래에 섰다. 함께 일을 하다보면 마음이 짠해질 때가 많은 칠순 어르신. 몸을 함께 움직여 일하다보면 정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더 쉬게 해드리질 못해 미안한 마음 들 때가 많다. 그래서 실은 사과꽃도 사과꽃이지만 꼭 같이 사진 한 번을 찍고 싶었어.
 




 나도 저 모자를 벗을 걸 그랬나봐. 더 가까이 닿으려던 게 모자 창이 반장님 얼굴을 밀고 있네. 





 사진은 안 찍는다고 비싸게 굴던 김과장이랑도 한 팡! 처음엔 엄청 까칠한 것처럼 굴더니만 같이 일하다보니 그 마음 속에도 어김없이 여리고 물렁한 것이 있어. 어느 새 정이 많이 들었는데, 다시 또 내가 이 친구를 외롭게 하겠구나 싶어 요즘들어 마음이 울렁거리는.   





 함께 고생한 사람들이면 정이 들지 않을래야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칠순의 장반장님과 이제 마흔 문턱의 김과장, 어떻게 보면 아버지 아들 나이이지만, 이 둘이 투닥대며 일하는 걸 보면 아주 의좋은 형제같기도 해. 투닥투닥 놀려먹고, 일하다보면 서로 고집을 부리고, 그러다가도 서로를 챙겨주고. 거기에 나도 끼어, 현장에서 우리 셋만 있을 때는 일이 아무리 더럽고 힘들어도, 그래도 좋았지.  





 나도, 나도! 애처럼 좋아라 하는 박소장 ㅋ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밭들. 꽃이란 건 다들 그렇게 잠깐인 걸까. 이젠 사과나무에도 꽃이 피는구나 싶던 게 고작 일주일이 될까 한데, 벌써 지게 될 것을 아쉬워하게 되어. 그래도 이번 한 주는 어디를 둘러봐도 하얀 사과꽃들이 너울넘실대는 바다였다. 덜컹이는 트럭에 실려 현장으로 오르내릴 때마다 콧노래가 흥얼흥얼. 사과나무 배나무 꽃 피고, 아지랭이 강둑에 필 때 순이야 보오고픈 나의 순이 나비처럼 내게 오려마, 랄라랄라 랄라랄랄랄라 랄라랄라 랄라랄랄라 나나나 나아아아 나나…… 나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그 콧노래에 그날이 떠오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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