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일 함마질을 하다 왔더니 어깨부터 상박하박이 다 결리고 띵띵해. 이번 주도 날은 정말 이상해서 해가 났다 싶으면 빗방울이 후두둑, 검은 구름, 파란 하늘. 그랬으니 땀이 좀 난다 싶으면 금세 땀이 식으면서 으실으실하곤 했다. 그러다가 오늘은 제대로 땀을 흘려. 마치 지난 봄 그 현장에서 일할 때처럼. 땀방울이 뚝뚝 안경알에 고이고, 스킬을 넣을 때마다 그 안경알에 톱밥이 엉겨붙어 눈앞이 흐려지곤 했다.
그래도 고마운 건, 1톤 트럭을 타고 현장으로 오르내릴 때마다 차창으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그 양 옆으로 펼쳐진 과일나무 밭들. 딴 건 몰라도, 꽃을 원없이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다. 여기 풍기, 순흥, 부석은 정말 과일나무들이 많아. 자두꽃, 배꽃이 하얗게 가득하고, 이에 질세라 분홍의 복사꽃들도 씩씩하게 웃는다. 그것들을 다 더한 것보다 몇 배는 되고도 남을 사과나무 밭에서는 꽃봉오리들이 아직 준비 땅, 신호를 기다리고 있어. 이 꽃들, 그것 그대로 보는 것도 좋지만, 여름을 지나고 나 이 꽃들이 있는만큼 그 자리를 채워 매달릴 자두며 복숭아, 사과 들을 떠올리면,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봄엔 이렇게 꽃들을 보며, 그리고 가을엔 그 먹음직스런 과일들을 보며 다닐 수 있다니. 그 상상이 얼마나 실제처럼 되던지, 벌써부터 그 시원달달한 과즙을 꿀꺽 하는 것처럼 입 안 가득 침이 고이기도 해.
2.
두어 시간 전부터 눈이 감겨오고 있었으니, 이제 그만 자야겠다. 내일은 아침 일찍 서울에 올라가야 해. 열두 시 반까지 오라 했으니 시내에 닿으려면 첫 차를 타야한다. 요사이는 컴퓨터에 앉을 짬도 많지가 않아, 인터넷에 들어갔다 얻어걸린 신문 기사를 흘끔거리며 보는 것도 거의 하지를 못해. 그래도 숭례문이라는 말에 몇 개 제목을 열어보기는 했는데, 요 며칠 기사들이 계속해서 나오던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숭례문 복구 공사에 참여한 작업자들에게는 거의 한 달 전 즈음부터 내일 있을 준공식에 안내가 있었다. 어떤 기사에는 준공식이라고, 어떤 거에는 복구 기념식이라고, 또 어디에는 현판식이라고, 이름도 각각으로 기사가 떠있곤 하던데, 어쨌건 내일은 그런 자리가 있다. 불에 타고 난 뒤로 화재 수습부터 하여 고증과 설계를 거쳐 문루 복구 및 성곽 복원 공사를 다 마치고 여는 기념과 축하의 자리. 아마 그 자리에는 대통령도 올 거라나, 그래서 경호 같은 것도 대단히 엄격하게 하는 모양이었다. 초대장과 신분증을 꼭 지참하라고, 행사보다 한 시간 반 전에 와서 미리 신원확인 같은 것도 다 받아야 한다는. 그런 식으로 행사를 치른다면 왠지 햇볕 쪼이는 광장에 딱딱하게 줄을 맞추고 앉아, 떠들지도 못한 채 꼼짝 앉아 무대 위만 바라봐야 하는, 그런 재미없는 자리이고 말려나. 그렇게 말고, 행사는 행사대로, 그래도 돌아다니며 삼삼오오 졸업식 때 풍경처럼 사진도 찍으고, 앞으론 정말 다시 만나기 어려울 사람들이랑 다시금 인사도 나누고, 그럴 수 있는 잔치마당 같은 거라면 좋을 텐데. 딱딱한 의례의 행사라면 정말로 별 흥미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는 꼭 가고 싶어 회사에도 미리 말을 해놓고 있었다.
숭례문으로 처음 일을 하러 가던 날 아침이 생각나.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 고마운 얼굴들이 하나하나 떠올라. 그 한 사람 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그리고 정말 애쓰고 고생했다고 더운 마음 그대로 전하고 싶은. 물론 그때의 나에게도 행복하게 인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현장에서 일을 하며 가슴이 뛰던, 땀을 바가지로 쏟던, 힘이 들어도 그저 기쁘고 고마웁던 그 시간들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