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거리식당

냉이로그 2016. 6. 20. 05:23

 

 

 강정에 해군기지가 준공되고, 강정의 주민과 지킴이들에게 엄청난 액수의 구상권이 청구된지는 벌써 오래. 그러더니 끝내 삼거리식당 일대를 행정대집행으로 밀어버리겠다는 예고가 되고 있다는 소식. 강정에서는 행정대집행을 앞둔 주말, 뭐라도 해보자는, 문화제가 준비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 주말이 마침 품자의 백일이 있고 백하루, 백이틀 되는 날. 그래서 그날만큼은 품자 백일떡이라도 들고 강정엘 다녀와야지 하는 마음이었다. 품자의 젖을 물리고 달래가 함께 움직이기에는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은 터라, 다 같이 가기가 어려우면 감자랑 아빠랑 둘이서만이라도 다녀오기로. 그래서 품자의 백하루가 되던 토요일, 이웃들에게 떡을 돌려 인사를 하고 나면은 감자랑 아빠는 오후에라도 강정엘 가야지 하고 있던 거였는데, 하루를 미루어 문화제 둘쨋날이던 일요일에 강정으로 나섰다. 반가웁게도, 달래가 품자를 안고 함께 길을 나서.

   

 

 

 가는 길 내내 차 안에서 잠이 든 감자는, 강정천 주차장에 내려 미사천막으로 걸어가는 길에서부터 신이 나. 펄럭펄럭 현수막들을 하나하나 만져보면서.

 

 

 곳곳에는 신부님이 새겨놓은 나무기둥 글씨들. 누군가 거기에 꽃 한송이를 올려두었을까, 감자는 꽃을 보곤 좋아라 뛰어가지.

 

 

 으응, 나뭇잎이 거기에 떨어져 있어.

 

 

 미사를 마치고 중덕삼거리, 문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식당으로. 어쩐 일인지 감자는 집에서보다 더 밥을 잘 먹네. 이모야들이 부쳐준 부침개를 손으로 잡아 뜯으며 꾸역꾸역. 더 달라고 꾸역꾸역 ^ ^

 

 

 다들 품자를 보고는 백일아기가 무지무지 크다며 ㅎ 미량 이모야가 품자를 안으니 둘이 닮았다며 여기저기에서 웃음소리가 ㅎㅎ

 

 

 밥을 먹고 있는 동안에도 식당 무대에서는 리허설이 한참.

 

 

 여기 중덕삼거리를 강제로 뜯어낼 거라고. 4년 전, 엄마아빠가 신혼여행으로 내려와서 처음 찾아오던 곳.

 

 

 삼거리 한 쪽에는 병수 아저씨의 나비, 평화자리가 그려져 있기도 하네. 두희 샘은 이거 사진 찍어서 병수 아저씨에게 보내주라고, 행정대집행 때도 다들 그 리본을 가슴에 달려고 준비한다며, 병수 아저씨에게 전해주라며 ^ ^

 

 

 소박한 사람들이 소박한 꿈을 꾸던 삼거리. 감자는 멍멍이가 반가워 계속 그 자리를 맴돌고.

 

 

이번엔 중덕이 멍멍이에게 쫓아가 ㅎ

 

 

 어느새 감자는 엄마아빠 손을 놓고는 혼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신이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다니며 놀아. 오랜만에 사람들 많은 곳, 게다가 다들 저를 예뻐해주고 그러니 기분이 좋았나봐.

 

 

 감자는 페이스페인팅을 해주는 이모야에게 손목에 그림을 그려달라고 ㅎ 

 

 

 형아가 손목에 물감으로 그리는 동안, 품자는 시사만화를 그리는 이동수 아저씨 앞에 앉아. 

 

 

 감자도 만화가 아저씨 앞에 앉아서 엄마가 치는 징소리에 맞춰 얼씨구절씨구~!

 

 

 와아아, 예쁘게도 그려주었네 ^ ^ 지금 감자품자보다는 훨씬 더 큰 모습인 거 같지만, 가만히 보다보면 정말로 감자품자 나중 모습이 이럴 것만 같아.

 

 

 할아버지 신부님, 품자도 강정엘 왔어요. 이제 막 백일을 지나고 할아버지께 인사드려요 ^ ^

 

 

 할아버지 환하게 웃으신다. 다 망가져버린 구럼비, 다 빼앗기고 쫓겨나는 마을을 보며 그 가슴 얼마나 허전하고 안타까우실까.

 

 

 힘내요, 할아버지. 그래도 어떻게든 싹을 틔워낼, 평화.

 

 

 품자에게 젖을 물리러 공소에 들어가 있다가 감자가 꼽아서 넘겨보던 책. 4년 동안의 거리미사를 기록한 사진책 <강정>을 들고 나왔더니 평화바람 두희 샘이 품자 백일선물이라며 싸인을 해주던.

 

 

 

 

 이제 며칠 뒤면 이 삼거리는 어떤 풍경이 될까. 부대가 완공된 이 마을은 어떤 모습이 될까. 끝내 그리로 군대가 들어오고, 군인들이 휘젓고 다니게 되고 나면 이 섬은 또 어떻게 될까. 감자품자와 함께 강정에 다녀오던 길. 생각하면 절망스럽지만, 거기엔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다 잃게 되어도 끝내 잃을 수 없는 것. 간절한 바람, 손잡은 기억, 따사로운 눈물과 그 평화로운 웃음들. 품자를 안고 백일 인사를 다녀왔다. 다녀오길 정말 잘했어.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자네 여름휴가  (2) 2016.08.10
불치  (2) 2016.07.19
기억  (0) 2016.06.06
아홉  (0) 2016.05.18
고사리  (0) 2016.04.19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