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네 식구도 여름휴가라는 걸 보내었다. 아직 하고 있던 공사가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이제 현장정리하는 정도의 일만 남기고 있었으니, 회사에도, 감독부서에도 허락을 받아 휴가를 쓸 수 있었어. 칠월말부터 팔월 첫날까지, 괴산으로 기차길옆작은학교 캠프엘, 다녀와야지 했으니, 그 월요일이 끼어있는 일주일을. 그리하여 닷새 휴가에 앞뒤로 주말을 붙여 아흐레가 되었던 휴가.
휴가의 시작은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캠프에 함께 하는 거였고, 그 끝은 밀양에서 송전탑반대 싸움을 해온 할머니들과 함께 강정에 가는 걸로 마무리 지어졌다. 기차길 캠프에서 돌아오던 날부터 제주에서는 해마다 계속되고 있는 강정평화대행진의 걸음이 시작되었다. 감자네 식구 휴가와 꼭 같은 닷새. 어느 구간이라도 감자를 안고 걸어볼 수 있을까, 품자를 유모차에 뉘여 밀고 걸어볼까,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무래도 달래와 감자, 품자에게는 무리일 수밖에 없어. 아쉽지만, 그렇게까지 욕심을 부릴 수는 없고, 그나마 행진팀이 감자네 집 가까이를 지날 때나 행진 마무리 하는 행사 때 나가보기로 계획을.
휴가 계획이라는 걸 꽉 짜놓고 있던 것도 아니었건만, 어쩌다 보니 아주 꽉 찬 휴가를 보내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캠핑을 다녀온 뒤로, 어느 하루는 섬의 반대편엘 다녀오기도 하였고, 또 어느 하루는 이 섬에 딸려있는 또다른 부속섬엘. 그리고 그 어느날은 그림그리는 이모야의 감자네 집 출판기념회를, 또 다른 날에는 노래하는 이모야의 감자네 집 콘서트라는 동화같은 밤. 그러면서 짬짬이 함께 했던 강정평화행진에, 전혀 예정에 두지 않았던 밀양 할머니들과 함께 찾은 강정, 강정의 할아버지 신부님.
아마 머리를 싸매고 휴가계획이라는 걸 짠다고 했대도 이렇게나 가득한 시간을 보내진 못했을 거.
휴가라니, 생각해보니 나로서는 군복입고 지내던 시절을 빼고는 휴가라는 게 처음이었다. 나이 마흔이 넘어 직장생활이라는 걸 시작했으니, 그 고달픔이란 거에 대해서도 이제야 겨우 알아. 휴가받은 날짜가 반이 넘어가면서 하루하루가 얼마나 아쉬웁던지. 그러나 그 꽉찬 아홉 날을 다 지나고 나니, 어느 하루도 아쉬웁거나 그러지가 않아. 나로서도 처음이고, 감자품자네에게는 당연히 처음이었을 여름휴가는 그렇게 지나갔다.
참 좋았다.
1. 기차길옆작은학교 캠프
공부방 캠프 얘기는 십 년 전부터 들어오던 거. 아이들 뿐 아니라 이모삼촌들도 캠프, 캠프하며 여름방학 캠프를 기다렸고, 캠프를 다녀오고 나면 그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는 이야기를 들어오곤 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공부방 아이들이 만들어 보내오는 공부방 신문 '칙칙폭폭'에는 캠핑 이야기만으로도 자리가 모자랄 만큼.
그런 캠프에 공부방에서 감자와 품자를 초대했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일. 평일이 끼어 있는 금토일월을 무작정 다녀올 수도 없을 뿐더러, 아직은 제주 시내를 나가더라도 두 아가와 아가의 짐보따리를 싸들고 다니기에는 녹록치가 않으니. 초대만으로도 고마웁고, 우리를 받아주는 그 마음만으로도 기뻐하면서, 다음에 감자품자가 좀 더 크면, 하면서 못가는 게 당연한 거라 여기고만 있었는데, 공부방 이모들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달래하고 감자품자를 공항까지만 데려다 주라고, 그러면 그때부턴 공부방에 있는 이모삼촌들이 알아서 다 챙기고, 함께 보아주면 될 테니, 주말에 냉이가 데려다 주기만 하라고.
친구들, 형아들을 만나면 감자가 얼마나 좋아할까.
이모 삼촌들 품에 안기면 품자가 얼마나 좋아할까.
갈 수 있을까? 말을 꺼낼 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못 그럴 거라는 전제 아래에서 막연한 그림을 그려보는 거였는데, 그렇게 시작한 상상은 용기를 불러주었다.
그래서 회사에도 휴가를 기차길 캠프가 걸려 있는 월요일부터 일주일로 맞추고, 한라산에서 진행하고 있는 공사도 최대한 캠프 전까지 주요공정을 마칠 수 있게 해놓고, 육지로 가는 비행기에 타올라.
다녀오고 나니 알 것 같았다. 왜들 그렇게 아이들부터 이모삼촌들까지 캠프캠프 하였는지를. 인사를 하고 헤어지면서는, 이제 또 일년을 어떻게 기다리냐며, 자주 들어오던 그 말을 듣는데, 그런 말이 나올만도 하겠구나 싶었다. 아이어른들 해서 일흔이 넘는 식구. 같이 잠을 잤고, 밥을 지어먹었고, 물가로 나들이를 나갔고, 그 모든 걸 스스로 만들고 꾸렸던 연극놀이며 자연놀이며 깜깜밤중 담력훈련에 캠프파이어 같은 일들. 프로그램도 프로그램이었찌만, 그런 건 하나 중요치 않았다. 모여 있으면 그것 그대로 즐거웠고, 그 안에서는 놀이가, 관계가, 서로에 대한 보듬음이 자연스레 피어났다.
이모삼촌들이 뒷자리의 궂은 일들을 도맡으며 마련해주었고, 스무살을 넘은 청년들이 아이들을 챙겼다. 고등부 형아누나들은 동생들의 손을 잡아 밥을 지었고, 그릇을 씻었고, 더 어린 동생들을 보살폈고, 중등부 아이들은 초등부 아이들을, 초등부 아이들은 유치부 아이들을, 그리고 또 그 유치부 아이들이 아가들의 손을 잡아주는.
솔뫼라는 괴산의 산마을을 다녀오고 나서 감자네도 한동안 멍한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우리가 어딜 다녀온 거지? 거기에 있던 아이들, 마당 한 가운데에서 피어나던 웃음소리, 그곳에선 해가 내리 쬐어도 좋았고,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 비를 퍼부어대도 좋았다. 거기에 '우리 아이들의 나라'가 있었어.
달래와 나는 감자, 품자를 위해 다녀오는 거라는 생각에 집을 나선 거였지만, 감자, 품자보다도 정작 좋았던 건 엄마와 아빠.
다녀오길 잘 했다. 정말 잘 했다!
얼마만에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나가는 거더라. 지난겨울, 성탄 다음 날에 인천으로 기차길 식구들을 만나러 다녀온 게 마지막이었으니, 오랜만에 육지에 올라가는 길이었네. 그러고보니 지난 번 그때도 기차길 식구들을 만나러 갔던 거였고, 이번에도 다시 기차길 식구들에 이끌려 육지로 올라가는 길.
공항에 있는 수유실에 들어가니까, 기저귀가는 침대가 두 칸이 있어. 마침 감자도 품자도 비행기를 타기 전 기저귀를 갈았어야 하기에 한 칸에 하나씩을 나란히 눕혀놓았네 ㅋ
감자 형아 때는 돌잔치를 해주러 이모들이 제주에 내려오기도 했고, 우리가 인천으로 올라가 만나기도 했지만, 품자하고는 처음 나누는 인사. 다들 품자를 보면 맨 처음 하게 되는 말은 우량에 튼실, 그리고 조금 지나고 나면 어쩜 이리도 순할까 하는 말들 ^ ^
품자도 드디어 형아들에게 둘러싸였네. 갑자기 사정이 생겨 중국에 가서 지내게 된 예준이 형아랑 세나 이모야도 함께, 어찌나 말을 잘 하는지 놀랍기만 한 래원 형아랑 카리스마 빛나는 한빈이 형아까지.
감자야, 여기가 어디야? 이모야들 삼촌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네, 하준이도 예준이도. 친구들에 언니형아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어 ^ ^
감자와 이람이 ^ ^ 감자가 한 살 형아지만, 실은 석 달 차이 밖에 나질 않는. (하지만 이람이가 터 커 ㅎ)그래서 오히려 더 이렇게 둘이가 친구같아 보이는 커플 ㅎ
감자에게 캠프 가자는 얘기할 때마다, 하준이를 만나러 가는 거라고 하면 눈이 반짝 하던.
예준이는 못보던 사이 얼마나 많이 컸나 몰라.
엄마아빠가 옷을 제대로 챙겨오질 못해서 물놀이를 할 때면 벌거숭이가 되어야 했던 ㅋ
마을 아래로 흐르던 개울에 가서 실컷 놀다가 돌아오는 길, 그 먼길을 챙겨주던 대기 형아.
맨날 엄마랑 감자품자, 셋이서만 지내다가 이렇게 어디에나 친구가 있어, 형아가 있어, 이모삼촌들이 있어.
매끼마다 이렇게 한 데 모여 밥을 먹는 잔치같은 밥상.
개울에 내려가 물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고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면서 급하게 숙소로 돌아오는 길.
큰이모에게 받은 수십장의 캠프 사진들 가운데에서 가장 감동스러웁던 이 빗길의 행렬 ^ ^
서로가 서로를 챙기던, 더 어린 동생부터 챙겨주던.
함께 맞는 비.
내 몸에 젖는 비.
보다 어린, 보다 약한 이들을 챙겨주는 자연스러움, 그때의 행복.
형아들이 있다.
낙숫물 아래의 두 아가들 ^ ^
그저 함께 모여있는 것만으로도.
캠프파이어 때 유치부 아가들이 준비한 장기자랑 연습에, 감자도 끼어 ㅋ
다 같이 벌거숭이가 되어있는 친구들. (감자는 이때 낮잠에 빠져 있었나 보다 ㅎ)
하은이 누나 품에서도 생긋방긋, 품자는 어느 품에 안겨서도 좋아라 웃으며.
캠프를 마치기 전, 유치부 아가들의 기념사진.
다들 선물받은 거를 몸에 걸고 사진을 찍자 했는데, 장난감 썬그라스를 품자에게 씌웠더니 다들 웃음이 ㅎㅎ
.
내년에도 또 함께 할 수 있을까.
그땐 감자도 종알종알 말을 하며 형아들을 따라다니게 될까,
그땐 품자도 지금 감자 형아처럼 아장아장 걸으며 물놀이에 쫓아다니게 될까.
캠핑을 했던 괴산 솔뫼에서 청주공항. 감자도 무언가 텅 비고 허전한 기분이었을까. 제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이렇게 하여 품자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육지엘 다녀오게 되었네. 감자 형아는 여섯 달이 되면서 처음 비행기를 탔더랬는데, 그때만 해도 엄마아빤, 비행기 안에서 많이 힘들어 하면 어쩌나,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 기압차가 있어 많이들 운다던데,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둘째 때는 정말 다르긴 다르네. 그런 걱정이나 준비 하나 없이 ^ ^
고맙게도 품자는 엄마품에 안겨 잘 웃고, 잘 자며 첫 비행을 잘 마쳤다
. 벌써 일곱 번의 육지행, 열 네 번이나 비행기를 탔던 감자 형아도 비행기 안에서 매번 편안하게 잘 자거나 잘 놀고 그래온 것처럼 ^ ^
아! 그리고 이건 캠프 때 사진들 가운데에서 아가들이 사과 먹을 때 모습들 ^ ^ 나도 나중에서야 카톡으로 사진을 받으면서 보게 되었는데, 감자 이 녀석 ㅋㅋ 지 얼굴만한 사과 하나를 받아들고는 얼마나 필사적으로 사과를 먹던지 ㅎ 그 모습이 너무나 우스워 ^ ^
밥보다 과일을 더 찾는 감자에게 사과는 익숙한 거지만, 집에서는 이렇게 사과알을 통째로 줘본 적이 없어 ㅎ
그렇지, 이렇게 하준이 예준이 처럼 잘 베어먹으면 되는 거!
흐흐흐, 저 입벌린 것 좀 봐 ㅋ
사진으로 보는데도 아빤 왜 이리도 조마조마한지 ㅋ
있는대로 입을 힘껏 벌리고!
한 입 물었나? ㅎㅎ
그리도 사과가 맛있었을까 ㅋ
턱 빠질라, 감자야 ㅠㅠ
이 표정을, 어쩌면 좋아 ㅎㅎ
2. 물고기를 보러 찾아간 섬의 반대편
막연히 휴가 때 어딜 가보면 좋을까, 하면서 마땅히 손꼽아지는 게 있지는 않았다. 안그래도 아가들과 함께 움직이는 게 쉽지를 않아 달래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 게다가 이어지느 폭염까지. 그러다 달래가 떠올린 게 아쿠아리움 같은 수족관엘 가자는 거. 마침 감자는 요사이 물고기라는 거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아지고 있었어. 어느 날 고내포구에 나갔다가 낚시꾼의 낚싯대 끝에 매달려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본 뒤에는, 물고기 그림이나 인형을 볼 때마다, 손바닥을 뒤집고 흔들면서 팔딱거리던 그 물고기 흉내를 내.
그래, 괜히 실내에 갈만한 데랍시고, 갔다오면은 후회만 하게 될 이상한 박물관, 전시관 같은 데 말고, 그런 수족관이 좋겠다! 하면서 계획을 해. 그런데 감자네 집은 섬의 북서쪽, 아쿠아플라넷은 섬의 남동쪽.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감자가 좋아하겠다! 하면서 기꺼이 집을 나서.
그러나, 굳이 이번 휴가 기간 중에 가장 아쉬운 걸 꼽자면 달래도, 나도 거기에 다녀온 걸 꼽곤 했다. 동물원이라는 데가 그렇듯, 수족관이라는 데도 그 안에 갇혀 사는 목숨들을 보는 일은 즐거울 수만은 없으니. 게다가 중간중간에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쇼라는 이름으로 벌이고 있는 것들을 지나칠 때는, 그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다는 게, 무슨 죄라도 짓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몇 해 전에는 <감자네 식구는 돌고래쇼를 보지 않겠습니다>라는 서명에 인증샷까지 하질 않았나. ㅠㅠ 부러 돌고래쇼 공연장으로는 걸음을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살아있는 목숨을 그렇게 구경거리 삼아 가두어키운다는 거는, 즐거울 수가 없는 일 ㅠ
엄마아빠가 느끼는 아쉬움이야 엄마아빠 몫인 거고, 감자는 수족관으로 이어진 길고긴 터널을 지나며 눈앞에 살아 헤엄치는 물고기들에 눈을 떼질 못했다.
으응, 감자야, 여기가 바닷속이야. 감자가 좋아하는 바다, 그 아래.
출렁출렁, 넘실대던 파도, 그 아래에는 이렇게나 많은 물고기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있어.
터널같은 어둠 속, 자극적인 조명들에 품자는 힘들었을지도 모르는데, 우주최강 순둥이 품자는 바닷속순둥이가 되어 형아의 물고기 구경 곁을 잘도 함께 해.
그림책에서 보던 뒤뚱뒤뚱 펭군도 보았고,
사방이 거울처럼 비춰지던 수족관 터널 속에서는 바닷물속 같은 가족사진도 ㅎ
여기에선 해달이라는 바닷짐승들이 뒤엉켜노는 걸 보았던가.
바닷물 깊은 곳, 거기에도 평화로운 세상이.
물 밖 세상에서는 보지 못하던 또다른 세상.
마침 엄마 등 뒤로 상어가 지나고 있었어 ㅎ
상어다, 상어!
저 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 들여다보던,아파트 3, 4층 높이는 될만한 커다란 수족관 속,
품자야, 감자 형아가 저 안에서 한참도록 무슨 생각을 하며 보고 있을까?
여기는 공연장 옆이던가? 감자는 물고기도 좋지만, 내리막길에 계단길이 나오니 여길 뛰어다니는 게 더 좋아 ㅎ(아마 스무 바퀴는 더 돌았나 보다, 땀 뻘뻘;;)
공연은 무슨 공연 ㅠ 두어 시간 넘게 걸었으니 배가 고파진 감자는, 아무데나 걸터앉아 김밥을 얌얌.
성산에서 애월로 돌아오는 머나먼 길. 운전을 해오다가 신호에 걸려, 거울로 뒤를 건너다 보니 감자품자달래는 셋이서 똑같은 얼굴로 잠 속에 빠져있어.
3. <큰할망이 있었어>, 감자네 집 출판기념회
감자네 식구의 휴가가 있기 전부터 영화 이모와 약속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어. 지난 가을에 제주그림책시민모임에서 연 그림책 워크삽이라는 게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만든 영화 이모야의 그림책. 제라진엘 놀러갔다가 영화이모야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 출판사로 연락을 했던 것이, 그게 시작이 되어 이렇게 멋진 그림책으로 태어나게 되어. 그 작업이 반 년 넘게 이어졌고, 드디어 출간이 되었다며 책을 들고 찾아오겠다고. 그러더니 오겠다던 날은 아직 책이 제주에 들어오지 않아 못간다며, 그 다음 날에 다시 오겠다고, 그러다가 그러려면 차라리 감자 아빠가 휴가를 쓰고 있는 주에 약속을 잡자고, 하면서 미뤄지고 있던.
그전날까지만 해도 이날도 감자네는 비양도라는 섬엘 갔다 와야지 하고 있어서 약속을 할 수가 없었는데, 오전부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아무래도 배를 타고 들어가 차도 없이 섬을 다니기에는 무리이겠다 싶어 계획을 취소했던 거. 그런 바람에 영화 이모야가 마침 잘 되었다며 섬의 서쪽 감자네를 다녀가.
그래도 이 따끈따끈한 첫 책을 들고 일부러 감자네 집을 찾아주는 건데, 케잌에 촛불이라도 켜고 감자네 식구하고라도 조그맣게 출판기념회를 해야지, 생각했던 것이, 또 우연히 해남에서 여행온 깜과 지선 부부, 그리고 소길리의 다함이네 식구까지 다 같이 만나게 되어 제법 여럿이 함께 한 출판기념회가 되어버려 ㅎ
정말로 축하하는 마음. 나보다 한 살 아래이니, 늦다면 늦은 작가의 첫 책. 영화 씨의 솜씨는 그림 뿐 아니라 바느질이며 설치, 조형 그 어느 것 하나에 머물러 있지가 않아. 볼 때마다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들. 정말 좋은 작가, 좋은 작품들을 해낼 것이라 믿어.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난 가을 제본해서 보던 것하고는 적지 않게 손을 보아 달라졌다는데, 달래가 먼저 보더니 금세 눈시울이 울먹울먹. 영화 이모야는 가수 김두수를 좋아해, 이 이야기의 바탕에는 그 노래들이라 말했지만, 달래와 내가 그림책을 보고 나서는 한영애 아줌마의 <<조율>>노래를 동시에 떠올렸어. 찌찌뽕!
이 기쁜 날, 감자아방은 술에 취해 뻗어버리고 말았네. 낮에 시작한 출판기념회 때부터 한 모금 두 모금 마시길 시작하여, 영화 이모야는 잠깐 귀덕에 있는 요배 아저씨한테도 인사를 다녀온다고 자리를 비우고, 그 사이에 지선 이모야네랑 늘보 삼촌네랑 계속 한 모금, 두 모금, 여러 모금을 하고 있다가, 요배 아저씨네 집엘 다녀온 영화 이모야가 술을 한 보따리 들고 다시 감자네 집으로. 이번에는 요배 아저씨 집에서 도록 정리를 하는 다른 이모야까지 함께. 그렇게나 많이 마신 줄은 몰랐네. 급하게 마신 것도 아니었는데, 거의 한 나절을 내내 마셔대었으니, 영화 이모네가 돌아가고 나서, 감자가 아빠한테 놀아달라고 쫓아다니는데, 감자 아빠는, 감자야 아빠 취했어, 미안미안, 아빠 힘들어, 그러면서 감자를 도망다니더라나 ㅠ 아마 감자도 놀랐을 거야. 아빠가 나를 도망다니다니, 이런 일은 감자가 태어나고 처음이었을 테니 ㅋ
4. 선경 이모야의 감자네 집 콘서트
감자네 여름 휴가 가운데 하루는 승민 삼촌, 선경 이모야네랑 만나기로 하였다. 감자네가 동쪽으로 가건, 아님 승민선경네가 서쪽으로 넘어오건. 그러다가 감자네가 목요일엔 곽지 해변엘 나가 강정평화대행진 팀을 응원하러 나가볼 거라 했더니, 그날 서쪽으로 넘어오겠다고.
여러가지 일로 오뉴월을 정신없이 지낸 승민선경네는, 그간 했던 작업물 가운데 하나인 선경의 가사집을 감자네에게 선물하겠다고, 전부터 만날 날을 함께 꼽고 있었다. 지난 해부터 시작한 '책만들기 워크숍'에서 선경이 만든 거는 자신이 짓고 노래한 곡들의 가사집을 만드는 거. 마침 그 가사집을 최근에 완성했다며, 그것도 재단기를 사서 손으로 직접 재단하고 바느질해서 만든 세상에 단 한 권 뿐인 걸로 만든 그거를.
생각지도 못했다. 감자네 집에서, 선경 이모야가 공연을 펼쳐줄 줄은. 그저 오랜만에 만나 얼굴이나 보자며, 그 때 만나면 가사집도 선물할 거라며, 그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멋진 공연을 보여줄 줄이야.
평화행진 나흘 째, 강정에서부터 동, 서로 나누어 출발하여 동쪽을 도는 동진과 서쪽을 도는 서진이 섬의 반바퀴씩을 돌고 있어. 그 가운데 서진은 나흘 째 접어들면서 애월을 걷고 있었고, 이날 점심을 곽지에서 먹는다고 일정표에 나와 있어.
거기는 감자네 집 앞을 지나는 길, 그래서 감자네는 비록 함께 행진은 하지 못하지만 행진단을 맞이하는 자리에라도 나가고 싶어 곽지로 나갔다. 그러나 아가들을 챙기랴, 어쩌랴 하느라 열두 시 반이 지나 곽지에 닿았더니 행진단 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가 않아. 아뿔싸, 벌써 점심을 다 먹고 떠났나, 하고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커리왈라 앞 삼거리 너머에서 한 떼의 노란옷들이 깃발을 흔들며 잔뜩 나타나길 시작.
아, 반가워라. 이 뜨거운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들, 해군기지는 완공이 되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
바닷가에서 잠깐 쉬고난 행진단은 다시 신발끈을 조였다. 고맙습니다, 내일모레 동진하고 서진이 만나는 탑동광장에서 다시 만나요. 감자네 식구도 그날 탑동으로 나갈게요~!
곽지까지 나간 길, 오랜만에 감자네 식구는 커리왈라에 들어가 다와 삼촌이 해주는 인도커리를 먹어. 세상에나, 감자가 그렇게나 잘 먹을 줄은 몰랐네. 오히려 엄마아빠는 카레가 매워서 커리왈라에 가면은 감자 먹을 게 없다며 가고 싶어도 못가고 그래왔는데 말이지. 잘됐다, 감자야. 앞으론 커리왈라에 자주 오면 되겠다 ^ ^
그리고 그날 저녁, 선경 이모야가 손수 만든,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책, 선경 이모야의 노래 가사집 <<녹는 점>>.
저런 말 좋아. 우리도 가끔 나란히 ^ ^
그러고나선 생각지도 못한 선경 이모야의 감자네 집 공연이 시작되어 ^ ^
이야아아,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그 사이에 새로 만든 신곡들부터 시작해서!
이 얼마나 복이 많은가. 소길리 감자네 집에서는 시와 이모야가 감자네 식구만을 위한 콘서트 열어주었고, 이렇게 또 선경 이모야의 공연을 볼 수가 있다니.
봄소풍 / 선경 / 20160804 감자네 집
빛나던 / 선경 / 201160804 감자네 집
나중엔 소파에서 내려앉아서도 노래를 불러주고 ㅎ
먼저 노래할 때 동영상으로 찍었더니 감자는 그거를 틀어달라더니, 전화기 속 이모야랑 눈앞에서 노래하는 이모야랑 같은 이모야라는 게 신기한지 똑같다, 똑같다! 하며 좋아하네^ ^
생각지도 못한 동화같은 밤, 섬의 동쪽에서 찾아온 친구들.
5. 감자네 식구, 비양도 한 바퀴, 그 한 마디.
제주섬에는 섬에 딸린 섬들이 여럿 있어. 그 가운데 감자네가 살고 있는 서쪽 바다에 걸려 있는 비양도라는 섬 하나. 그림책에서만 보던 배, 감자품자와 함께 배를 타고 건너가 보고 싶기도 하였고, 곽지나 금능 바다로 나갈 때마다 가까이 바다 건너에 떠있는 작은 섬이 궁금하였던 아빠엄마는 그리로 하루 다녀오기로 해.
아침에는 찌는 듯 해가 쨍쨍이더니, 감자네가 배를 타러 나가면서부터 갑자기 하늘이 우르르쾅쾅.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배에 올랐고, 배를 타고 넘어가서는 한동안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 섬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올 생각까지는 아니었기에, 이거 섬 구경은커녕 비만 피하다가 다시 나가는 배를 타겠네, 싶기도 했지만 다행이 비가 그쳤고, 그 비로 인해 오히려 찌는듯한 땡볕이 가셔지는 바람에 더욱 좋았던 섬 한 바퀴.
호젓한 길을 함께 걸으니 평소 표현하지 못하던 마음의 말문이 열렸을까.
"고마워 오빠, 오빠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아.
새벽부터 일어나 밥 차려놓고 일 나가고,
일하고 들어와서 빨래하고……"
"고생은 모, 니가 더 고생이지……"
하고 대꾸를 하는데 목이 꺽 메어져. 아마도 나는 평소 별로 표현이 없는 달래에게 적잖이 서운하기도 하였을까. 나름 애쓰고 있는 만큼, 서로 알아주면 좋겠다 싶은데, 그래달라면은, 경상도 여자는 그런 거 못한다며, 표현 한 번 없던 뚝뚝한 아내에게.
내가 먼저 왈칵, 하니 말을 잇던 달래도 울컥을.
그 대화 하나만으로도 지난 육아 스물두달의 피로가 모두 씻기우는 것처럼 가볍고 좋았다. 이번 여름 휴가에서 가장 좋았던 말 한 마디, 그 때 오가던 마음의 온기. 갑자기 비양도의 모든 풍경이 새로웠고, 보이는 것마다 아름다웠다. 이젠 다 괜찮아, 아무 것도 문제 될 게 없어,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 며칠 끙끙대고 아프던 어깨까지 싹 씻기워진 것 같은 ^ ^
한림항을 출발해서 섬에 딸린 작은 섬으로 건너가던 배.
선실이 아니라 선수나 선미에 서서, 배가 갈라놓는 바다의 거품이며 넘실거리는 물결을 감자에게 가까이 보여주고 싶었건만,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그건 엄두를 낼 수가 없었어. 그래도 감자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성난 바다 거품에 놀란 눈을 떼질 못해 ^ ^
쏟아지는 빗속에서 그 섬에 내렸으나 갈 데라곤 잠시 비를 피해 들어갈 조그만 식당 밖엘 없어. 다른 델 찾아 헤매다 결국 그 식당을 찾아 들어가니, 배에 타고 있던 여행객들은 다 그 식당에서 이른 점심을 먹고 있었네 ㅎ 에라, 이거라도 인증샷을 찍어보자, 하고선 찍은 보말죽과 한치물회.
고맙게도 비가 그쳤네 ^ ^ 섬 한 바퀴를 걷다보면 나가는 배를 탈 시간까지 돌아올 수 있을까, 약간 모험이긴 했지만, 그래도 해보자며 섬 둘레 한 바퀴를 걷기 시작해.
아하, 여기가 조인성 아저시랑 고현정 아줌마가 나온 드라마를 찍었던 데구나! 엄마는 아빠보다 인성이 아저씨를 더 좋아하니까 여기에선 제대로 인증샷을 ㅋ
이 섬으로 드는 배에는 차를 실을 수가 없었으니, 이 섬은 당근 차가 다니질 않는 땅.
곽지며 협재, 금능 바닷가에 설 때마다 저기가 비양도래, 하던 그 섬에서 이번에는 거꾸로 저기가 곽지구나, 저기가 협재, 저기가 금능, 하면서 거꾸로 본섬을 돌아다 보던.
이 즈음이었나 보다. 그 모든 고단함, 피로감, 서운한 마음의 찌질함을 다 날려줘버리던 그 한 마디 ^ ^ 아, 몇 해 전부터 힐링힐링 하는 말이 유행해왔지만, 그 말이 실체로 다가오는 적이 없었는데, 아마 이 순간이 그런 거가 아닐까 싶던. 그렇다면 이날 비양도 여행은 그야말로 힐링의 여행. 별 것 없이 섬 한 바퀴를 걷기만 했지만, 그 어떤 나들이나 여행길보다 좋았던, 그런.
섬둘레가 모두 3.6km라고 했던가, 어른 걸음으로야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일 테지만, 감자가 과연 그 길을 다 걸어낼 수 있을까, 싶기도 하였는데, 감자도 후륭하게 한 바퀴를 완주. 게다가 이 때는 이미 아빠가 완전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 같은 마음이라, 섬 한 바퀴를 무사히 돌고난 감자를 보면서도 마구마구 감동을 ㅎ
돌아가는 배에서는 감자를 안고 선미에 나가 바다 앞에 설 수가 있었다. 배가 가르고 지나간 자리마다 하얗게 거품이 일어 넘실대는 바다. 우와아, 우와아 하던 감자는 사진을 찍으로 구석으로 가니, 바람에 눈을 뜨지 못하고 얼굴을 감춰버려 ㅋ 이젠 감자와 그림책에 나오는 배를 볼 때마다 이 바다 얘기를 하겠구나 ^ ^
6. 평화야 고치글라, 강정평화대행진 문화제
아쉽지만, 감자를 안고 그 길을 함께 걷는 건 내년에나 할 수 있을 테니. 올해는 그저 행진단이 감자네 집 가까이를 지날 때나, 마지막 날 행진을 마치는 문화제에 가서 이모삼촌들을 응원하는 것 밖에. 하지만 이 더위 속에서는 그렇게 잠깐씩 응원하러 나가는 것만 해도 젖먹이 품자를 안고 시도때도없이 젖을 물려야 하는 달래에게는 쉽지 않은 일. 그래서 어느 저녁이던가, 달래에게 고맙다고. 충분히 싫다 할 수도 있고, 부담스럽다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함께 움직이기를 마다치 않아주어 고맙다고. 아니, 고마운 게 아니라 그래서 달래가 좋다고. 어느 자리에서도 특별히 무슨 의식이 있다는 걸 드러내려거나 내세우듯 하는 거 전혀 없으면서도 그런 일이 있으면 거리낌없이 함께 하는 모습, 그런 모습이 나는 좋다고.
그랬더니 달래가 그러네. 칭찬에 머쓱해서 그러는지, 암튼 요사이 유머가 늘었다니까.
"강정의 평화를 위해 가는 거라기 보다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가는 거야.
오빠가 가고 싶어하는 거 같으니까, 가는 거지 ㅎㅎ"
그런데 실은 나도 그렇거든. 결정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거는 강정의 평화니 한반도의 평화니 그런 게 아냐. 신부님 얼굴이 떠올라 가만히 있질 못하겠는 거고, 오두희 샘 그 쓸쓸한 얼굴이 떠올라서 너무 오래 가보지 않으면 가고 싶어지는. 승민이, 선경이, 거기에서 견디고 살아내는 지킴이들이, 그곳의 할망들, 아이들이.
여느 해나 그랬듯이 강정 평화대행진에는 쫓겨나고, 빼앗기고, 억눌리고, 상처입은 이들이 함께 해. 이번 평화대행진에도 역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용산참사의 유가족들이, 세월호의 가족들이, 밀양의 할매들이 함께 해. 감자네가 탑동 광장에 들어섰을 때 맨 먼저 만난 세월호 가족들의 서명 부스.
감자야, 여기에 엄마도 이름 쓰고 갈게.
문화제가 시작하기 직전, 다섯밤 여섯날을 걸어온 사람들. 광장에 들어서니 몇 발짝 움직일 때마다 반갑고 고마운 얼굴들을 만나겠지. 강정에 갈 때마다 만나던 지킴이들은 물론이고, 이 걸음을 걷느라 육지에서 내려온 이들. 꿀잠을 만드는 데에서 고생하고 있던 선배를 만났고, 이라크평화팀에 함께 몸을 두었던 창근이 얼굴이 반가웠다. 그리고 이 문화제에 힘을 주러 스물다섯 분 할머니가 비행기를 타고 찾아준, 밀양 송전탑 대책위의 할매들. 특히나 지난 번 총선 때 녹색당을 알리느라 동행했던 할매들 몇 분은 얼굴을 기억하며 더욱 반가워해. 말이 어눌해 어떻게 인사를 건네야 할지 모르젰지만, 눈빛만으로도 이미 서로의 마음을 다 알 것 같던 이계삼 선생까지.
강정에 갈 때마다 예뻐해주던 혜영 이모야가 까맣게 탄 얼굴로 감자를 반겨주어 ^ ^
우아아아, 품자는 이렇게 사람들 많이 모인 데는 처음이다, 그치이?
으응, 이 사람들은 모두 함께 비를 맞는 사람들. 기차길 캠프에 갔을 때 형아들 언니들이 더 어리고 더 약한 동생들을 챙기며 비를 함께 맞던 것처럼. 그렇게 서로서로 함께 손잡고, 함께 비를 맞아주는, 더 약하고 더 아픈 이들을 보듬는.
행사본부에서 나누어주는 김밥을 받아와, 감자는 광장 한 가운데에서 김밥을 주워먹고, 품자는 무어가 좋다고, 그 뜨거운 데에서도 웃어 ^ ^
창근이 삼촌을 만났네. 지난 여름 감자네가 카페를 할 때도 평화대행진 다 마치고 난장이공엘 찾아주어서 만났더랬는데, 제주에서는 평화대행진이 있을 때만 만나게 되는 삼촌. 이렇게 만나면서도 술 한 잔 함께 못하고 헤어져 아쉽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삼촌이야, 갈수록 얼굴이 더 평화로워지고 있네. (아닌가, 능글맞아지는 건가? ㅋ)
밤이 되어 무대에선 멋진 조명에 공연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감자는 등 뒤 하늘에 떠 있는 달님이 더 반가워 ^ ^
그러면서도 감자는 무대에서 노래가 나오면 엄마랑 같이 율동을. (엄마가 감자에게 율동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감자가 만들어서 하는 몸짓을 엄마가 따라하고 있는 거 ㅎ)
그러더니 못참겠다, 달님을 보러 달려나갔다가, 어? 저게 모지? 웬 모형 비행기 하나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를 보곤 좋아라!
무대의 앰프 소리가 너무 커서 가까이로는 가 있질 못하고, 품자는 그 사이 지쳐 잠에 들었고, 감자도 점점 잠이 오던 끝 무렵.
늦은 시간이 되어 승민삼촌, 선경이모야도 광장에서 만나. 더 오래는 감자 품자가 있을 수 없어 아쉬웁게도 먼저 일어서야 했지만, 그렇게 만나 더 반가웁던.
감자, 품자야 아빠는 그렇게 믿고 있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이 길에 끝까지 남는 사람들은 무슨 진보적인 의식이니 사상이니 그런 걸 배우고 갖춰서가 아니라는 걸. 아마도 이 길에 끝까지 남는 이들은, 캠프에서 보았던 언니형아들처럼 함께 비를 맞을 줄 아는, 그 비를 내가 더 맞아줄 줄 아는, 어린 동생들부터 먼저 챙기는, 그 마음을 키우고 가꾸어온.
7. 밀양 할매들과 함께, 강정 할아버지 신부님을 만나러
휴가의 마지막, 아흐레가 되던 일요일엔 다른 약속을 두고 있질 않았어. 꿀같은 휴가라는 게 이렇게 끝나는구나, 아쉬워하면서 이날 하루는 감자에게 바닷가 물놀이, 모래놀이를 실컷 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뜨거운 폭염 속, 한낮에는 말고, 볕이 저물어가는 늦은 오후에 나가는 걸로.
감자도 낮잠에 들고 품자도 낮잠에 든 시간, 잠든 아가들 곁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고 있을 때, 전화기 벨소리가 울려. 엊저녁 문화제가 열리던 탑동광장에서 만난 이계삼 선생의 목소리. 지금 할매들이 제주 오일장을 구경하고나서 점심을 드시고 있는데, 이 더위에 다들 너무 지쳐 힘들어하신다며 어디 시원한데에서 잠깐 쉬게 해드리고 싶다고, 혹시 예전에 감자네가 하던 난장이공 카페에 예약이 되겠는지를. 난장이공 카페에 다락방이 있으니 누워서 쉬셔야 할 분들에게도 거기가 좋을 것 같다면서.
그리하여 감자품자네 식구도 난장이공에 연락을 해두고 할매들을 맞으러 그리로 나가.
그 찜통에 오일장을 다녔으니 얼마나 덥고 힘드셨을까. 할매들은 카페에 오자마자 다락으로 올라가 차등을 펴고 차곡차곡 누우셨어. 순간, 그 오랜 세월 송전탑이 세워질 자리마다 천막을 지키며 농성을 해오셨을, 그 천막 농성장의 장면이 떠올라. 너무도 익숙한, 서로의 몸에 몸을 기댄 그 모습.
더위에 지쳐 위아래층으로 나누어 쉬고 계시던 할매들은 커다란 팥빙수들을 시켜놓고, 그 안으로 숟가락을 섞어가며 아이처럼 좋아했고, 아이들처럼 재미나게 떠들어 웃음소리가 그치지를 않아.
지난여름 밀양송전탑 대책위 식구들이 카페에 다녀간 뒤로, 올 봄 녹색당 유세를 하면서 다녀갈 때 몇 분을 다시 뵙기는 했지만, 이렇게나 할매들을 다 같이 뵈어 만나게 될 줄이야.
요즘들어 낯익지 못한 얼굴들 앞에서는 잔뜩 긴장을 하곤 하는 감자가, 어느덧 경계를 내리더니 계삼이 삼촌과 숨바꼭질을 시작해 ^ ^
감자야, 계삼이 삼촌 어디 숨었지이? ^ ^
까꿍 ㅎㅎ 여기 숨었네!
그러더니 아빠를 가운데 두고 숨바꼭질을 한참 ㅎㅎ
밀양에 송전탑은 세워지고 말았지만, 할매들의 싸움은 끝나지가 않았다.
할매들은 밀양의 싸움을 계기로, 밀양의 아픔이 강정의, 세월호의, 쌍용의, 용산의, 또 그 어디의 아픔과 다르지 않음을 누구보다 몸소 느끼고 계셨고,
밀양 땅에 송전탑을 뽑아내는 싸움과 동시에, 더는 당신과 같은 이들이 외로이 십자가를 지고서 눈물 흘리지 않도록 그 비를 함께 맞아줄.
감자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할매들 천막에 하룻밤 자고 왔을 뿐이에요. 감자 품자가 조금만 더 크고 나면 할매들 만나러 찾아갈게요.
이젠 할매들과 함께 할아버지 신부님이랑 지킴이 이모삼촌들을 만나러 강정으로 넘어가는 길. 감자는 할매들이 타고온 버스를 쫓아 제가 먼저 앞장을 서. 감자네는 난장이공 오시는 길에서만 뵙고 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지만, 할매들을 따라 강정에도 같이 가기로.
감자야, 엄마가 우리도 할매들 따라 할아버지 신부님께 인사드리러 갈 거래 ^ ^ 어제 탑동광장에 갔다가도 할아버지 얼굴 뵙지 못하고 온 게 아쉬웠는데, 할매들이랑 같이 가자 ㅎ
강정의 할아버지 신부님은 아주 기뻐하며 할매들을 반겨. 반핵의 상징 밀양과 반군사주의의 상징 강정이 만났으니 더욱 감격에 겨워.
할아버지 신부님의 환영에 답하는 밀양 할매는 떨리는 목소리로, 살아있는 하느님을 보고 있는 것 같다며, 서로의 뜨거운 마음을.
그러곤 할매들과 강정 지킴이들은 천막 아래로 흐르는 강정천으로 내려가. 정말 물이 얼마나 맑고 차던지, 감자도 옷을 홀딱 벗고는 그 차가운 물에 참방참방 신나게 놀아.
뜻하지 않게 밀양 할매들과 함께 하였고, 뜻하지 않게 강정을 다시 찾아 그 환하게 빛나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던 하루. 예정에 없던 휴가의 마지막 날이었다. 고요하게 빛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