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자리

냉이로그 2016. 2. 24. 22:40

 

  

 지난 달, 병수 아저씨가 제주에 다녀갈 적에, 만나는 사람마다 별자리 이야기를 해. 오리온 자리라 불리고 있는 그것을 나비자리로 보고자 하는, 궁극에 그것을 평화의 별자리로 말해내고픈.   

 

 

 강정에 갔을 때도 아저씨는 오두희 샘을 앉혀놓고 한참도록 이 나비자리, 평화자리 이야기에 열을 올려. 그러고는 26일로 예정된 해군기지 준공식 때부터 이 나비자리를 평화의 상징으로 쓰면 좋겠다는 바람도.

     

 

 

 아저씨는 난장이공 카페에 수놓은 바느질 작품들의 솜씨 주인을 찾아, 이 평화별자리를 나비모양 넥타이로 만들어주기를 부탁하기도 해. 카페에 솟대 작품들을 설치할 때부터 아저씨를 보았던 미나 씨는 흔쾌히 대답하였고, 그러고 있다 얼마 뒤 이처럼 아저씨의 구상을 땀땀 바느질로 만들어 사진으로 보내왔다.

 

 그러곤 아저씨는, 마치 지나가는 말인 것처럼, 나한테도 숙제 한 가지를 던져 주었다. 이 평화 별자리에 이야기의 옷을 입혀 어떤 스토리텔링을 해달라는 거. 허걱.  병수 아저씨가 몽상가에 망상가, 똘끼 충만의 천재라는 거야 진작부터 알아왔지만, 그렇다고 아저씨의 구상이나 서사, 이미지가 열이면 열, 다 뻑가게 하는 건 아니란 말이지. 이 나비자리 얘기를 들을 때도, 그거야 아저씨 생각이지, 하면서 놀리듯이 살짝 구박을 주며 듣던 게 사실이었다. 그랬으니 아저씨가 던져준 숙제라는 것도 한 귀로 흘려듣고 말았겠지.

 

 열흘 전이었던가, 아저씨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와. 어, 이걸 어쩌지, 나는 그 뒤로 어떤 고민도 없었고, 잊다시피 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아저씨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진지해. 그제서야 나는 아저씨에게 질문을 던져가며 귀를 기울였다.

 

 - 하필이면 왜 별자리인가요.

 

 - 그 중에서도 왜 오리온 자리인 거죠.

 

 - 왜 나비여야 하는데요.

 

  지난 번에도 토막토막 들었던 얘기들이긴 했지만, 귀를 기울이고자 하니 다르게 들려왔다. 자의적인 아저씨의 몽상, 혼자서만 앞서간 자기만의 망상이 아니라 이어지는 고리, 상상의 얼개가 드러나는 것 같아.

 

 - 그래요, 아저씨. 이십 일까지는 어떻게든 써보낼게요. 내가 쓴다기 보다는 그냥 아저씨가 들려준 얘기를 잘 받아적기만 해도 되겠어요.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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