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일오

냉이로그 2016. 4. 16. 01:16

 

 

0. 기억  

 

 

 일부러 꼽지 않아도 절로 기억하게 되는 날들. 그 가운데 하나가 어제 공사일오, 그리고 오늘 공사일육.

 

 

 

 

1. 두 해 전

 

 

 제주에 혼자 내려와 일을 하고 지내던 봄이었다. 0415 달래냉이 국수를 먹던 두 바퀴가 되던 날, 달래와 함께 기념을 할 수는 없고, 현장 가까이에 있던 김녕 바닷가에다 모래 낙서를 하며 그날을 기억해. 그리고 그날은 강화에서 큰이모와 아이들이 강정에 내려온다던 날이기도 했다. 만장굴에서 일을 마치고, 바로 강정으로 넘어가. 미량 게스트하우스에서 기차길 식구들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이던 0416 아침은 강정에서 바로 만장굴로 다시 출근.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을 때였을까, 시끌벅적한 노가다 현장의 점심 밥집.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바다 한 가운데 기울어진 배가, 점차 가라앉고 있는 그 배가 계속해서 화면에 잡혔다. 앵커가 뭐라고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아, 화면 아래로 지나는 자막을 보면서야 무슨 일인가를 짐작할 수 있는 정도. 그래도 그나마 그땐 안심을 했던 건, 전원 구조되었다는 자막 글씨 때문.

 

 그 밥집에서 보던 화면이, 그렇게나 무서운 일이 되어 남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온통 물무덤 속으로 잠겨들어.

 

 

 

 

2 .지난 해

 

 

 국수를 먹던 공사일오, 작년에는 어떻게 보냈더라. 달래도 나도, 처음에는 기억이 잘 나질 않아. 이상도 하지, 무어 대단하게는 아니더라도 그냥 지나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얘기를 하던 끝에 동시에 생각이 났는지, "그날 우리 싸웠잖아!" 하고 웃어.

 

 그러게, 그랬네. 작년엔 진작부터 공사일오, 그날엔 팽목항에 가자고 계획을 하고 있었더랬지. 몇 달 전부터 제주에서 완도로 가는 배편을 예약해놓고, 팽목항 가까이에 있는 민박집도 하나 예약해두고서. 감자가 시월 열일곱 날에 태어났으니, 꼭 여섯 달이 되는 때. 여섯 달박이 감자를 안고, 바다를 건너 그 먼길을 가는 거에 달래는 적잖이 부담스러워하기는 했지만, 달래 또한 그러자, 며 함께 준비를.

 

 하지만 막상 공사일오가 되고 배를 타러 나갈 준비를 하면서, 달래의 몸은 마음처럼 그게 쉽지를 못해. 미처 그걸 알아채지 못했는지, 아니면 알아챘으면서도 외면하는 마음이었는지, 뱃길을 나설 채비만을 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에 배려가 부족한 말과 얼굴로 달래를 서운하게 했던 거. 달래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던 거. 몇 달 전부터 준비하며 그날은 팽목엘 가자고 준비를 하던 내게, 못 가겠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던. 한 번 쯤이라도 괜찮겠느냐고, 갈 수 있겠느냐고, 내가 먼저 물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텐데, 오히려 나는 차마 말하지 못하는 달래 마음을 아주 모르지 않았으면서도, 조금 힘이 들어도 다녀왔으면 하는 마음이 더 앞서.   

 

 그랬구나, 세 바퀴가 되던 작년엔, 공사일오 공사일육을 그렇게 보내었어. 팽목에 예약해둔 민박집은 그냥 놀리게 되면서, 그날 그 바다를 찾았을 지인들 가운데 누구라도 대신 썼으면 했지만, 그러지도 못했네. 감자를 안고서 처음 맞던 결혼기념일을, 그동안 한 번도 찾지 못한 그 바다에서 보내고 싶었건만, 그러지는 못하고, 공사일육 그 다음 날을 제주에서 보내. 제주 동쪽의 중산간에 문을 연 기억공간 리본, 그리고 그 저녁 제주시청 앞의 촛불.

 

 

 

 

3. 이공일육 공사일오

 

 

 감자야, 오늘은 엄마랑 아빠가 결혼식을 했던 날이야. 올해는 엄마아빠 싸우지 않을게 ^___________^

 

 

 품자는 서른일곱 날이 되는 날, 바깥에 나가 밥 한 끼 먹는 것도 아직은 무리.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운 마음이고, 요즘 들어 밤중 수유에, 낮에도 감자품자가 번갈아 낮잠을 자면서, 밤낮으로 잠을 못자며 녹초가 되어가는 달래에게 무언가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그러나 선물같은 걸 하는 데는 영 젬병에다, 기분 좋게 해주려고 뭘 사들고 들어갔다가도 달래 마음에 드는 적은 별로 없어. 마음 먹고 샀는데, 달래 입맛에는 아니라거나 ㅠㅠ 달래가 좋아할 거라고 샀지만, 반품이나 환불을 하게 되고마는 ㅠㅠ

 

 라다에게 부탁해 '최마담네 빵다방'의 파이를 미리 주문했더랬다. 빵군 형이 수술받은 병원엘 들렀다가 한 조각 얻어먹었던 게, 이거라면 달래가 좋아할 것만 같아. 그래서 하루 전, 급하게 최마담에게 주문을 부탁했고, 일을 마치고는 협재에 있는 빵다방엘 가서 저렇게 생긴 파이를 찾아들고 집으로.

 

 

  

 

 

 

 

 4. 이공일육 공사일육

 

 

 두 해가 지났다. 아직 가라앉은 배는 심해의 그 깊은 어둠 속 그대로이고, 그날 뒤로 스물넉 달이 지나도록 아직 만나지 못한 아홉의 얼굴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니, 찾지를 못하는 것도 아니, 찾으려 하지도 않고 있는 채 칠백일을 맞아. 여전히 진행 중인, 이 어마어마한 슬픔 앞에서, 그러나 우리는 결혼기념을을 조촐하게 기념하기도 했고, 물무덤 속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일상은 일상대로였다.

 

  "이거 한 번 읽어볼래?"

 

 [한겨레 21] "형, 우리 죽어요?" "형아가 너 살릴게" 2016.04.15"

 

 엄마아빠 기념일이라 그랬니, 감자품자가 동시에 잠드는 일이 없었는데 이날은 일찍부터 잠에 들어. 내가 먼저 기사를 읽다 훌쩍거리고 나서, 달래에게 읽어보기를 권하며 기사 제목을 말해주는데, 달래는 제목만 듣고도 울컥하더니, 힘이 들어 못 읽을 것 같으다고. 달래는 감자를 낳은 뒤로, 그 슬픈 일들에 더욱 감당을 하지 못한다. 당시 생존학생들과 유가족이된 형제, 자매들의 이야기를 받아적은 기록 <다시 봄이 올 거예요>에 실린 한 대목.  

 

 "그럼 그 기사에 있는 얘기, 내가 대신 말로 해줄게."

 

 여섯 살 된 그 아이, 자판기 뒤쪽에 있던, 그 형아를 계속 쳐다보던 그 눈망울…… 당시 생존자였던 조태준 학생이 들려준 그 이야기를 달래에게 들려주면서도, 나는 내가 마치 그 여섯 살 아이의 눈망울과 마주하고 있는 것만 같아, 울음이 새어나와 말이 끊기곤 했다. 듣고 있던 달래도 울고,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던 나도 자꾸만.

 

 

 

 공사일육을 하루 앞둔 날, 마침 제주에 있는 기억공간 리본, 이라는 데는 지금 일하는 현장 가까이에 있어. 지난 해에는 감자를 안고 달래와 함께, 근이와 함께 갔던 거기를 이번에는 혼자 다시 찾았다.

 

 

 

 

 

 

5. 다시, 기억

 

 

 

 기억할 거라는, 잊지 않겠다는 약속. 해마다 공사일오를 기리는 감자네는 아마도 공사일육을 잊게 되지는 않을 거. 언제나 공사일오는 공사일육과 함께 찾아올 거고, 그 두 날을 떼어놓을 수는 없을 테니. 그러나, 기억한다는 건 무얼까. 그때 그 일이 있었다는 걸 기억하는 것, 그것만으로 괜찮은 걸까. 여전히 그 자리에서 미안해하기만 할 뿐이지만, 부끄러움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그 부끄러움이 내게 무언가 말을 걸어오게 하는 것만으로도, 아무 것도 아닌 거는 아니라 해도 될까.

  

 

 공사일육, 그날 제주에는 여름 태풍 때처럼 강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곳곳에서 세월호 기억집회를 하고들 있을 텐데, 이 비바람이 위로 올라가진 않을까, 그리 멀지 않은 팽목항 바다는 어떨는지. 가닿지 못하는 걱정을 하고 있을 때, 병수 아저씨에게 사진 문자가 들어왔다.

 

 그 전날이던 공사일오 오후, 팽목항에 들어가 솟대와 깃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하기에, 감자네 식구 깃발도 하나 올려주세요, 하고 했던 거.

 

 감자야, 오늘은 아주 무서운 일이 있던 날이란다. 저 바다 깊은 곳에 배가 가라앉아 있어. 아직도 거기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언니 형아들이 있어. 감자보다 다섯 살이 많은 그 형아도,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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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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