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바퀴

냉이로그 2013. 4. 15. 09:11


 한 바퀴가 돌았다. 그날, 하늘은 더 없이 맑고 파랬고, 햇살은 보드랍게 반짝였다. 연두의 나무들과 노랗고 빨갛게 빛깔 고운 꽃들, 그리고 고마운 얼굴들. 벌써 일 년인가 싶지만, 돌이켜보면 찍어온 발자국들 몇 개의 고갯마루를 지나온 오솔길처럼 남는다. 결혼을 했다지만, 아직 결혼생활이라는 게 어떤 건지. 영월 땅에 보금자리를 두었어도, 서울에서, 경주에서, 그리고 영주에서 지낸 날들 더 많았으니, 영월 보금자리에는 그저 유숙생처럼 일이 없는 날에만 한 번씩. 아마 그렇게 쉼표처럼 주어진 날들이나 주말들을 다 모으면, 후하게 친다 해도 한 계절이나 되었을까. 그것도 그 대부분의 시간은 굴 속이라 이름붙였던 터널을 지나는 참이었으니. 다시 이 산천이 연두와 꽃빛으로 물드는 봄이 돌아오고, 우리는 그렇게 지구의 한 점 위를 타고 태양 한 바퀴를 크게 돌았구나. 

 달래에게 고맙다, 고맙다 하였다. 나같은 어설프고 허접한 아이, 그래도 낭군으로 여겨, 온전히 내 몫이기만 할 어려움마저도 기꺼이 함께 감당해주고, 기다려주고, 괜찮아해주었으니. 무엇보다 가장 고마운 건, 그럼에도 네가 행복해했다는 거.
 

 
 혼례를 올리고 한 바퀴가 되던 날, 연호정에서. (기념사진 한 번 찍자 하고는, 사진찍는 거에도 어설퍼 역광인 줄도 모르고 이렇게 흐릿하게 ㅜㅜ 언젠가 반쪽이네 만화책을 보니까 해마다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 십 수년, 우리도 저 자리에서 그렇게 사진을 찍으면 저 둘 옆에 갓난아기가 하나 둘 늘어가고, 또 언젠가는 그 아이가 제 엄마보다 키가 훌쩍 자라있는, 그런 기억들을 포개듯 이어가게 되려는지.) 

 둘 다 멋이 없어 그날을 어떻게 기념할 줄은 모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육천구백원짜리 포도주 한 병에 딸기 한 팩을 사다놓고 쨍을 했다. 술이라고는 한 모금도 못하는 달래는, 그것도 술이라고 딱 한 잔에 얼굴이 빨갛게 불타올라.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던 밤.   

 그리고 오늘 다시, 새로 한 바퀴를 시작해.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추쌈  (2) 2013.04.23
봄눈  (0) 2013.04.20
편지  (2) 2013.04.11
주말  (2) 2013.04.07
그러나  (0) 2013.04.05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