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2015. 8. 12. 01:37

 

 

 

 카페 문 앞에 세워놓는 입간판. 보통은 카페 이름이나 메뉴 같은 것을 써놓곤 하는 블랙보드판. 우리도 난장이공을 맡기 시작하면서 <감자네 식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시작>이라고 써서 내놓고 있었다. 그러곤 삼 주가 지나. 그러는동안 마카 펜의 빛깔도 많이 바랬고, 문구도 이젠 식상한 것 같아, 새로 쓰느라고 싹싹 지워버렸다.

 

 그러고 나선 그 검정보드 판에 이렇게.

 

 

 

 옆에서 책을 읽다가 들여다본 말랴는, 어, 이거 좀 쎄지 않느냐고 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렇게라도 하고만 싶어. 누나에게 구치소 주소를 물은 게 벌써 두 주일 전이지만, 여태 편지 한 통도 쓰질 못했다. 서울에선 석방을 촉구하는 문화제를 열기도 하고, 저마다의 뜻을 모아 '조각보성명'이란 걸 내며 기자회견을 갖기도 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함께 하진 못하고 그저 걱정만. 그러다가 오늘 카페 입간판을 새로 쓰면서, 그렇게나마 작은 마음을 보태고 싶은.

 

 

 

 제주에서도 인적 드문 중산간 마을, 저렇게 써서 길에 내놓는다고 얼마나 되는 이들이 보겠냐만은, 또는 이 시골 길가하고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다소 낯설고 의아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하지 않는다면.

 

 

 

 

 내일은 난장이공 책장 한 가운데에 형의 책을 세워두어야겠다. 혹여라도 카페에 드는 이 가운데 형에 대해 묻는다면 이 책이라도 건네어 볼 수 있게.

 

 

 

 지난 봄이었구나. 내가 제주에 내려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책 제목 글씨를 써봐주면 좋겠다고 연락을 받던.  책 제목 글씨 를 써봐주면 좋겠다고 연락을 받던. 최종 디자인에선 그냥 컴퓨터 서체로 하였는데, 형의 삶을, 가장 척박한 곳을 뚜벅뚜벅 걸어온 시간들을, 꾸밀 것 없는 말들로 덤덤하게 들려주던, 덤덤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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