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북콘서트를 하고 그 이튿날, 감자네 식구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내려오자마자 집에 잠깐 들러 감자 기저귀보따리만 다시 챙겨서는, 동쪽으로 넘어갔다. 하도리 바닷가가 바로 내려다보인다는, 마당이 아주 예쁘다는 펜션 <디스이즈핫>. 여기에서 재즈콘서트가 열려. 재즈피아니스트 임인건 샘이 기획한 연주에 수니 언니가 보컬로 함께 하기로 한.
북콘서트를 다녀와야 했으니 난장이공 카페는 금요일 하루 문을 닫아야 했고, 토요일에는 오후에라도 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나 했는데, 일주일 전부터 달래가 망설여. 어차피 토요일에도 몇 시간 문을 열지 못할 텐데, 아예 그날까지 문을 닫고 공연을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한 술을 더 떠서는 금토에 일요일까지 하루를 더 쉬어 카페 휴가라도 내자고. 그러면 토요일 공연을 보고 동쪽 어디쯤에다 숙소를 잡아, 그 다음 일요일 하루는 제주 동쪽 바람을 쏘이다 오면 좋겠다는 거. 여태 김영갑 갤러리에도 가보질 못했는데, 그렇게 하면은 거기에도 갈 수 있지 않겠냐면서.
망설이다망설이다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 그러고는 그쪽에 있는 숙소를 알아보고 있었어. 그래, 이참에 김영갑갤러리에도 가보자, 비행기를 타고 부산까지 다녀오느라 달래도 감자도 적잖이 힘이 들텐데, 게다가 콘서트를 마치면 밤늦은 시간, 꾸역꾸역 집에 돌아오고 그러느라 무리는 하지 말자, 이번 기회에 달래가 보고 싶어하는 공연도 보고, 동쪽에 있는 바다와 오름도 둘러보자…….
마침 전화로 예약을 하고, 휴대폰으로 결제를 할 즈음, 카페에 와 있던 수니 언니가 그 얘길 듣더니, 예매한 거 취소하라고. 언니가 초대할 테니까 티켓을 끊지 말으라고, 그래도 되나 싶어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취소했느냐고 몇 차례나 더 확인해서 물어. 그럼 고마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기로 하고, 그대신 공연 마치고 소길에 돌아오면은 그때 뒤풀이를 난장이공에서 쏘는 걸로 ^ ^
그랬으니 하루를 자고 오자던 거는 그만 두었고, 얼떨결에 출연 뮤지션과 한 식구가 되어 공연을 보러가게 되어.
멋졌다, 정말 멋졌어. 가까이 내다보이는 바다, 가까이 올려다보이는 지미오름, 예쁘게 가꾼 마당, 자유롭게 흔들리는 바람, 최고의 셰프라고 소개된 분들이 마련한 음식들에,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와인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멋졌던 건 임인건 샘을 비롯한 재즈 연주자들의 기가막힌 합주에 소름을 돋게 하던 수니 언니의 노래까지.
솔직히 나는 부산에서 내려온 토요일 당일까지도 갈까말까를 망설이며, 달래에게 혼자 다녀오는 건 어떻겠는지, 비가 올지 모르는데 그냥 가지 말을까, 하는 말들을 하며 그렇게까지 가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더랬다. 아, 그런데 가길 정말 잘했지, 얼마나 좋았는지, 꿈을 꾸는 듯 했다. 아, 재즈라는 게 이런 거구나!
카페에 오면 내 집 부엌처럼 주방에 들어와 달걀을 부치고, 양파를 까고 하던 수니 언니를 무대에서 보고 나니 아, 저 언니가 그 언니였나 싶은. 언니는 정말 최고의 디바!
공연 전에는 최고의 셰프라는 분들이 준비한 갖가지 음식들과 와인으로 식사까지 준비가 되어.
요즈음 들어 아무거나 먹을 거만 보면 저도 먹겠다고 달려드는 감자에게, 시커멓고 거칠게 생긴 돌빵을 주었더니, 그걸 입에 물곤, 아이구야, 좋단다!
감자는 이날 그렇게 식사 시간에는 나명 삼촌 품에 있다가 공연이 시작하고 나서부턴 동익 삼촌 품에 한참을. 평소 같으면 빠져나오겠다고 몸을 비틀거나 바동거리며 용을 쓰고 그랬을 텐데, 공연 내내 신기할 정도로 동익 삼촌 품에서 너무도 편안하게 가만히 안겨 있어.
그랬으니 엄마랑 이모야들은 공연을 맘껏 누릴 수가 있었네. 아빠랑 삼촌들은 와인잔을 계속 비워가면서 감자랑 ㅎㅎ
어둠이 내리면서 공연은 더욱 무르익어가고 있었네. 라다이모야는 공연 스텝으로 낮부터 고생을 하고 있었다지. 이런 곳에서 만나니 더 반가워라. 또치 이모네도 공연장에서 만나고, 라다 이모야랑 빵군 삼촌도, 그리고 언젠가 시와 이모 제주 공연 때 만난 소심한 책방의 요정 이모야도, 이 멋진 잔디밭에서 다 만나게 되어.
이얏호, 건배!
감자야, 이제 수니 이모야 노래하러 나갈 차례야. 이모 노래 잘 하고 오세요 ^ ^ 와아아, 오늘은 정말 하늘빛도, 달빛도, 이모야도 너무너무 예뻐라.
수니 이모야는 정말 달랐어. 이야아아, 지금 저 무대에 선 사람이 거의 날마다 카페에서 만나던 그 이웃집 아줌마가 맞나, 싶어. 이모야 노래가 시작하는데 하늘도, 바다도, 달빛도, 새도, 벌레도 모두 숨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아. 들리는 건 오로지 연주와 함게 흘러나오는 이모야의 목소리랑 내 가슴 속에 뛰는 심장 소리 뿐.
이모야가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를 부르고, 그 다음 곡으로 <애월낙조>를 시작할 무렵, 엄마는 눈물을 흘리는 것도 같았어. 그땐 아빠가 엄마를 뒤에서 가만히 안고 무대를 보고 있느라, 굳이 엄마 얼굴을 들여다 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그랬던 것 같아.
정말로 최고였지. 꿈을 꾸는 것 같았어. 이모야가 부른 다섯 곡의 노래, 아니, 앵콜곡까지 더해 여섯 곡을 마치고, 연주자들끼리 잼공연을 펼칠 때는, 나처럼 뻣뻣한 애도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으니.
p.s
그렇게 공연을 보고 온지, 이틀밖에 지나질 않았는데 벌써 아련해지는 게, 정말 무슨 꿈을 꾸는 것만 같았어. 아, 맞다. 그 공연을 마치고 다음 날이던 일요일, 그날 무대 위의 디바였던 수니 이모야는 다시 카페엘 찾았어. 하루종일 창고 정리를 하느라 먹질 못했다며 라면 하나랑 국수 하나를 시키고, 소주를 부탁해. 하하하, 그러더니 그날도 카페에 와서는 주방에 들어와 안주를 손수 만들고, 다른 손님들이 시킨 음식까지 언니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내어주시네. 아마 그 손님들은 주방에서 칼질을 하다가 김치를 담아 쟁반에 내어주는 이 아줌마가 그 순간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제비꽃>의 그 언니인 줄은 상상도 못하겠지. 그 생각을 하니 너무나 웃겨. 글쎄, 나도 그랬을까. 맨 처음 들이네 집에서 언니와 형님을 소개받아 인사하질 않았다면 마을에서 스쳐 만났더라도 저 분이 그 분이라는 걸 모르고 지나쳤을까. 아님,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 지나쳤을까. 어쩜 그랬을지도 모르지. 진짜 디바는 아무 데서나 나는 뮤지션이요, 하고 폼을 잡고 다니는 게 아닐 테니까. 그래서 더 멋지단 말이지, 수니언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