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냉이로그 2015. 6. 13. 00:54

 

    

  

 0. 서울, 메르스.

 

 

 제주에 있을 땐 메리슨지 메르슨지 하는 걸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집에선 테레비를 아예 켜지를 않지, 종이 신문을 받아보지도 않지, 어쩌다 휴대폰으로나 기사를 한 번씩 볼 뿐. 도대체 이 나라는 무슨 호들갑이 이리도 심한가, 싶은 정도였다. 

 

 서울에서 삼박사일. 무슨 재난 영화 속으로 들어와 있는 것만 같은 기분. 몇 해 전이었더라, 수애가 나오고, 장혁이 나오고, 차인표가 나오던 <감기>라는 영화. 마치 그 영화 속 어느 장면인 것처럼. 공기 중에 떠도는 이상한 공기, 공포와 불안.

 

 잠시 서울에 다녀가는 길에 소방관 엉아와 연락이 닿았는데, 얼굴 한 번 보자 하면서도 엉아는 아무래도 시간을 내지 못했다. 좀처럼 엄살이 없는 엉아는 내내 목소리가 잠겨들어. 밤마다 관계부처 대책회의가 있고 나면 일선 공무원들은 더 죽어나는 모양. 일일구 구조대에 있는 소방관 엉아는 관할구역에 있는 독거노인들을 비롯 병에 더욱 취약한 이들을 챙기느라 눈코뜰 새가 없어 보여. 위에서 시키는 일들에, 지구대에서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일들까지.

 

 

 

 

 

1. 엄마, 병원.

 

 

 시장을 보던 엄마가 교통사고를 난 건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감자네 식구가 서울을 거쳐 안동, 제천을 들르고 제주에 내려오던 날, 그날 사고가 있었어. 경동시장이었고, 그 시장통에는 차가 빨리 달릴 수도 없는 곳. 사고를 낸 자동차는 모범택시였는데, 그 택시도 쉬는 날이라 과일 한 상자를 사러 시장에 나온 길이라던가. 그 택시가 엄마의 발등을 밝고 올라 타.

 

 발가락 둘이 부러졌다고 했다. 깁스를 하고 있다보면 자연스레 붙을 거라 했다. 그렇게 사 주가 지났다. 답답하실 게 걱정이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싶으면서 병원에도 한 번을 올라가 보질 못했다. 그 사이에 형과 형수님 두 분이서만 출근 전, 퇴근 뒤로 병원에 들르면서 애를 쓰고 있었어.

 

 엄마는 여전히 아프다 하는데 병원에서는 퇴원을 하라고. 그래서 병원을 옮겨 다시 검사를 해보니 발가락은 둘이 아닌 넷이 부러져 있었고, 그 중 둘은 접합 수술이 시급한 상태. 그 전 병원에서도 엑스레이를 몇 차례, 씨티에 엠알아이까지 찍었다던데, 어떻게 그런 식으로 허술하게 할 수가 있었을까. 병원을 옮기자마자 바로 수술을.

 

 그 소식을 듣고는 바로 몇 시간 뒤 비행기표를 끊어 서울엘 올라갔다. 그 한 달 동안에도 병원에 한 번 올라가보질 못했는데, 적어도 수술 직후 거동하기 어려운 동안에라도 곁을 지켜주어야 할 것만 같아. 솔직히 나는 적잖이 밍기적거리기도 하였는데, 달래가 등을 떼밀어. 어서 다녀오라고.

 

 개인병원이라 그랬는지, 메르스 때문에 입원환자가 적어 그랬는지, 침대가 여덟 개 있는 입원실엔 환자가 둘 뿐. 침대가 많이 남는 병실, 그랬으니 불편하지도 않게 엄마 곁에서 나란히 사흘 밤을 보내어. 앞으로 한 달은 더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데, 엄마는 얼마나 답답할까, 메르스는 괜찮을까.

 

 

 

 

 

2. 밤 열한 시.

 

 

 프랭스가, 난지도가, 란이. 엄마가 잠들고 난 늦은 시간, 밤 열한 시가 넘어 병원 앞에 찾아주곤 했다. 병원 일 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다 길바닥에서 마시거나, 골목 안 포장마차에 들거나. 감자를 낳고 나선 한 번도 못보던 얼굴들을 이렇게나마 보게 되어.

 

 

 

 

 

3. 사각형 갤러리.

 

 

 병원에서 사흘 밤을 자고, 나흘 째 되던 날 공항으로 나오는 길에 합정엘 들러. 민과 경의, 모습공방의 서울 전시장에는 가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움직이게 되면서 전시까지 볼 수 있게 되어. 마침 어제가 전시를 시작하는 날이었고, 나는 첫 번째 관람객이 되어 작품들을 볼 수가 있었어.

 

 

 

 오픈 준비를 마치고, 갤러리 입구에 강정마을에서 보내온 걸개를 걸고 찰칵. 신부님을 비롯해 강정 친구들의 메시지들을 담은 전시 축하 걸개 ^ ^

 

 

 

 

 

 

 

4. 감자가 보고싶어.

 

 

 사흘 밤, 나흘 낮. 이렇게 오랫동안 감자랑 떨어져있기는 처음. 얼마나 보고싶던지. 병원에서 엄마 침대 곁을 지키면서도 내내 전화기를 만지작, 감자 사진을 넘기며 헤벌쭉거려. 그런 내 모습에 엄마도 웃어. 우습다고 웃는 건지, 흐뭇해서 웃는 건지, 아님 나의 헤벌쭉이 옮아져 그런 건지 ㅎㅎ 

 

 제주 공항에 비행기가 내리고, 주차장으로 얼마나 달렸는지 모르겠네. 감자야, 감자야! 감자야아아아~!

 

 

 그러곤 감자를 안고 빙그르르르. 감자야, 너도 아빠 보고싶었어? 아빠 까먹은 거 아니지? 아빠가 얼마나 보고싶었다구. 어유, 그동안 더 컸네, 머리도 더 많이 길었네. 보고싶었어, 감자야.  

 

 

 

 

 

 5. 기도.

 

 

 공항에 내려 큰이모와 톡을 나누다 수연이모의 재수술 소식을 들었다. 갑상선 암이 재발. 좋아지고 있다는 말만을 믿어 마음을 놓았는데, 얼마나 힘겨웠을까. 아이들이 힘이 되기를, 아이들이 기도가 될 거야. 간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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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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