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에게 편지가 왔네.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 전화로 목소리를 듣고, 그 뒤에 다시 카톡이 들어와 있는 걸 보지 못했더랬어. 깜빡 잊고 감자네 집 주소를 적어가지 않았다는 걸, 급하게 카톡으로 보내어 달라는 말이었는데, 우리가 확인했을 땐 이미 연병장에서 차렷, 쉬엇! 을 하고 있을 즈음.
요즈음은 군대에서 이런저런 사고가 많아 그런지, <부모님 의견서>라는 걸 보내어달라는 우편물을 보내는 모양인데, 우리가 받은 건 양양을 거쳐 한참이나 뒤늦어서였다. 암튼 그 덕에 녀석의 훈련소 주소를 알게 되어 그리로 편지를 보낼 수 있었고, 녀석도 우리가 보낸 편지를 보고나서야 전에 써두었던 편지를 이리로 보내.
그 편지가 오늘 제주에 도착하였다. 게다가 마침 오늘은 녀석의 5주 훈련을 마치는 수료식 날. 저마다 가족들이 찾아주어 보고싶던 얼굴을 만지고, 등을 두드리며 그간 고생을 격려하며 한껏 정을 나눌 텐데, 녀석만 찾아주는 이 없이 혼자 쓸쓸하진 않을까 걱정이었건만, 고맙게도 순녀, 병순 누이가 녀석의 수료식에 함께 해주었다고.
전화기 너머로 듣는 녀석의 목소리는 밝아. 그래, 어디에서나 잘 지낼 녀석이니. 밝고 씩씩하고, 여전히 순박하고 귀여운 모습에 마음이 참 좋았다. 녀석 목소리를 듣고, 금능 바닷가엘 나갔다 들어오는 길 우편함에 꽂혀 있는 녀석의 편지를 열어보는데 주책맞게도 눈물이 찔끔. 이그, 이 녀석 글씨 하난 정말 예술이네. 프랭스 이후로 이렇게 못쓰는 글씬 처음이지 모야.
하하, 해독불가!
암호를 풀면 이렇다 ㅋ
감자 식구들에게
기범이 형 벌써 주말이야. 지금 요일이 토요일이고 5/9일인데 주소를 몰라서 못보내겠다. 여튼 기범이 형 지금 일주일동안 부대에서 제식훈련했는데 잘 해가지고 나는 분대장을 맡았어. 조교같은 거야. 여기는 지금 23사단 신병교육대대고 지역은 삼척이야. 나중에 4주 뒤에 야수교라고 운전병들만 모이는 곳인데 거기서 후반교육받고 그 뒤에 나의 부대가 정해져. 아마 그때쯤 형한테 연락해서 이 편지를 보내게 될 꺼야. 형은 지금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있겠지?
감자는 이제 머하려나? 이제는 스스로 엎드리려나? 아직 밥까지는 아니고 죽같은 거 정도 먹으려나? 키도 좀 크고 덩치도 좀 있고 여튼 많이 컷겠지. 애기들은 쑥쑥 크니깐 ㅎ
보고싶다. 감자가 큰 모습을. 누나는 몸 좀 괜찮아졌어? 허리는 낫기 힘드니까 걱정이 많이 되네. 빨리 감자가 걸어다녀야겠네 ㅎ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깐 걱정말구, 다치지 않고 잘 훈련받을게. 이제 막 총들고 촥촥 이상한 동작 막 척척 해. 세워 총, 앞에 총 ㅎ 이런 제식 동작도 잘 한다.
아무튼 잘 지내고 있을게. 형이랑 누나랑 감자두 잘 지내고 있고. 편지 또 쓸게.
상근이가
아직 그 편지를 받기 전, 감자네 집에서 보낸 편지.
상근이에게
상근아, 잘 있어? 요즘 날이 더워지고 있었는데 훈련받느라 고생이 많겠네. 입대 전 제주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푹 쉬다가 갔는데, 훈련소에 들어가서는 새벽에 기상해서 점호 받고, 구보하고, 훈련일과에 맞춰 뛰고 구르고 하려니까 많이 힘들지?
제주도 감자네 집에서는 누나랑 형이랑 감자랑 다들 잘 있단다. 감자는 벌써 태어난 지 223일이 되었어. 이제는 뒤집기도 잘 하고, 그때보다 더 큰소리로 잘 웃는단다. 내일은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빡빡 깎기로 했어. 제주도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부처님오신날에 머리를 한 번씩 빡빡 밀어주는 풍습이 있대. 그래서 감자도 한 번 그렇게 해보려구 해. 이야, 상근이 삼촌도 군대 가느라고 머리를 깎았는데, 감자도 빡빡머리가 되겠네 ㅎㅎ
그때 입대하면서 제주도 주소를 못 적었다면서 급하게 카톡을 보냈었는데, 우리가 그 카톡을 뒤늦게야 확인해서 결국엔 여기 주소를 적어가지 못했겠네. 여기에 적어줄 테니까 이번에는 잃어버리지 말고 잘 적어둬. <제주시 애월읍 소길 1길 OO-O 감자네 집> 그리고 누나 전화번호는 <010 3OOO 7OOO>, 형 전화번호는 <010 4OOO 4OOO>야. 핸드폰이 없으니까 전화번호도 하나도 못 외울 텐데, 미리미리 적어서 지갑에 넣어줄 걸 그랬구나. 암튼 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하고, 무슨 일 없더라도 혹시라도 공중전화 같은 거 쓸 수 있으면 한 번씩 전화해. 수신자부담 전화로 해도 다 받을 테니까.
순녀, 병순 이모한테는 짧은 편지가 왔다고 하더라. 그리고 종이 반 쪽은 가연이한테 썼다며? 잘 했다. 군대에서는 시간이 되거나 기회가 될 때 있으면 그렇게 편지라도 보내주고, 공중전화라도 한 번씩 하고 그래.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들 얼마나 그리워하고 보고싶어 하고 있는지.
제주 감자네 집 마당 귤나무에는 귤꽃들이 한참이었다가 이제 지고 있네. 귤꽃이 활짝 피었을 때는 아침저녁으로 마당에 귤꽃 향기가 가득했단다. 감자를 안고 나가면 감자가 손목을 돌리면서 침을 질질 흘리며, 까륵까륵 웃고 얼마나 좋아하던지. 아, 그러고 보니까 감자랑 누나랑 다같이 장전리 벚꽃나무 길을 걸을 때가 떠오르네. 벚꽃들이 다 지고 나서 유모차를 밀고 나갔던 때도 생각나고.
훈련소에서 지내는 5주는 이제쯤 거의 끝나가려나? 신병교육대 주소를 보니까 거기가 삼척이더라구. 형네가 영월 집에 살고 있었다면 훈련소 마치는 날, 누나랑 감자랑 다같이 부대로 축하해주러 갈 텐데, 그러지 못해 너무 아쉽네. 감자네가 못가더라도 너무 서운해 하진 마. 그대신 휴가 나오고 제주도에 내려오면은 너 좋아하는 흑돼지 왕창왕창 먹게 해줄게 ^^
상근아, 너는 어디에서나 잘 적응하며 지낼 거라 믿어. 부디 몸 다치지 말고, 같이 훈련받는 동료들과 서로 돕고 챙겨주며 지내. 어디에나 사람 사는 곳이고, 어디에서나 사람의 정은 다 있는 거니까. 군대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 거야. 나만 생각하고, 내 몸만 편하고자 하면은 그때부터 안 좋은 일이 생길 거거든. 곧 여름이 오겠구나, 뜨거운 날 상근이는 어딘가로 자대를 배치받게 되겠네. 그럼 다음 번엔 새로 배치받을 자대로 편지를 보내야겠구나.
오늘은 갑자기 편지를 쓰게 되어서 이렇게 컴퓨터로 쓰고 있는 걸 미안하게 생각해. 다음 번부터는 예쁜 종이에다 손으로 쓴 편지를 넣어서 보낼게 ^^
==== 누나도 몇 마디 ^^ ====
햇볕이 많이 뜨거워졌다. 훈련소에 있는 상근이는 더욱 힘이 들겠다. 하긴 뜨거운 여름 달구어진 기름 앞에서 닭을 튀겨내는 것도 견뎌낸 상근이가 그깟 더위가 무서울 쏘냐!! 몸이 힘든 훈련쯤이야 거뜬히 이겨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새하얗던 얼굴이 거뭇거뭇해졌겠네.
훈련소도 이제 거의 끝나갈 무렵일텐데 니가 원하던 운전병으로 갈 수 있게 될지 궁금하다. 어느 곳이든 쉬운 곳이 있겠냐만은 기왕이면 상근이가 희망하던 곳이면 더욱 좋겠지. 내가 부처님, 하느님, 알라신, 달님에게 빌어줄게.
위에서 형이 얘기했듯이 우리 세 식구는 감자 크는 것 보며 잘 지내고 있어. 점점 무거워져서 내 허리가 나을 날이 없지만. 그래도 쑥쑥 자라는 감자를 보면 대견하기만 하다. 여전히 “가~암~자!”를 연발하지만 그 때만큼 많이 하지는 않게 되었어. 새로운 것들을 자꾸자꾸 만들어내야 감자도 좋아하는 것 같더라구. 그러니 상근이도 연구해서 오도록 해. 크크. 감자가 삼촌을 기억해줘야 할텐데. 그 때처럼 얼굴 익히는 데 오랜 시간 걸리면 곤란하지. 흐흐. 아마도 금방 좋아라 할 거니까 걱정 말고 오도록 해.
여름이 코 앞이네. 아무쪼록 몸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고 휴가 때 보자. 만나지 못하면 전화상으로라도.
건강해.
2015년 5월 24일
제주도에서 누나랑 형이.
감자네 집에게
형 오늘은 5/28이야. 오늘 편지를 받았어. 드디어 주소를 알게 되어 정말 기쁘다. 내 부주의로 까먹고 안 적어 가지고 편지 한 통을 썼는데 못 보내고 바둥바둥거리고 있었는데 다행이야. 오늘 모든 훈련이 끝났어. 완전 잔치 분위기야, 형. 오늘 제일 힘들고 아프고 하고싶지 않은 각개전투를 했어. 오랜만에 흙을 엄청 먹고, 몸에 뒤짚어쓰고 뒹굴고 기고 해가지고 무릎 멍들고 팔 다 까지고 완전 지옥이었어. 그래도 오늘 끝나니깐 완전 행복해가지고 안 하던 청소도 애들이 합심해서 다같이 청소 완전 열심히 하고 몸도 깨끗이 씻고 나서 모두 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어.
여튼 감자가 드디어 뒤집기를 하다니 완전 감격이야 ㅎ 거기다 이제 웃음소리도 크고 ㅎㅎ 곧 말을 할 꺼 같아. 아마 내가 제주도를 가게 되는 날은 정기휴가를 받지 않는 이상 조금 힘들꺼야 ㅎ 정기휴가는 9박10일 지 정도로 휴가를 길게 주거든. 머 짧게 내도 갈 수 있지만, 좀 후다닥이라는 느낌으로 갔다오기 싫기 때문에!! 그리고 흑돼지를 왕창 먹으려면 하루를 자야 하기 때문에 ㅎㅎ 그리고 컴퓨터로 써도 괜찮아. 받기만 해도 좋다. 누나는 허리가 점점 아파진다니 걱정이네. 어서 지슬이가 빨리 걸어다녀야 허리를 조금이라도 안 아플 텐데 ㅎㅎ 형이랑은 이제 싸우면 안대!!
이제 곧 나는 6월 5일 운전병을 결정하는 야수교로 가게 돼. 거기서 교육을 몇 주 정도 더 받아야 나의 자대가 결정 돼. 어서 자대를 가야 PX도 이용하고 전화도 하고 인터넷도 좀 할 텐데, 그래야 약간의 민간인 같지 ㅎ
아.. 형이랑 누나도 보고싶은데 사실 감자가 엄청 보고싶어 ㅎ 이제 감자가 커지면 좀 어색해질텐데 하은이처럼 많이 같이 오래 있고 놀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는 힘드니깐 어릴 때 많이 봐둬야 하기 때문에.. 빨리 보고싶다, 큰 감자를.
편지를 너무 늦게 써서 편지받는데 좀 걸릴 꺼야. 여튼 나는 이제 곧 수료하니깐 아픈 데 없이 잘 수료하께. 몸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
from 상근이가
이 녀석, 감자 보고싶단 얘기만 하네 ㅎㅎ
삼촌, 감자는 엄마아빠가 이렇게 빡빡이로 만들어놓았어요 ㅠㅠ
삼촌 휴가 나와서 제주도 감자네 집에 오면은 아빠랑 이렇게 (쿨럭!)
누굴 닮은 거니 ㅠㅠ 감자는 이렇게 술병만 보면은 흥분을 하며 반응을 해. 그게 소주건, 막걸리건, 맥주건 ㅋㅋ
암튼 녀석 밝은 목소리 들으니까 마음이 참 좋았다. 일병을 달 즈음 정기휴가를 나오려나. 그럼 아마 겨울 즈음이겠구나. 감자는 돌이 지났을 거고, 아그작뽀그작 뒤뚱뒤뚱 걸음마를 시작할 즈음이려나. 건강하게 잘 있으렴. 자대로 옮기면 곧 또 연락할 수 있겠지. 반갑다, 니 목소리, 괴발새발 날아가는 니 글씨. 그 안에 담겨 있는 니 표정과 얼굴, 그리운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