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사이 비가 촉촉히 내려. 달래의 생일. 새벽에 눈을 떴을 땐 비가 잦아들고 처마 끝에서만 빗물이 뚝뚝. 줄넘기를 들고 나가 씽씽 삼천번을 뛰고 들어와서는 그때부터 미역국을 끓이고, 버섯을 살짝 데쳐 무치고, 콩나물도 무치고, 미리 해두었던 감자조림이랑 가지나물, 취나물, 두부조림 같은 것들로 아침 생일상을 준비해. 아침에 눈을 뜨는 게 시계처럼 정확한 감자에게, 감자야, 오늘은 엄마 생일이야! 를 말해주었더니 감자도 방긋.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해요!

 

 

 

 

 시와 이모야도 감자네로 내려와 아침 미역국을 함께 먹자고 할까 하다가, 아침은 그냥 산방에서 편안하게 쉬라고. 아침을 같이 하려면 일부러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해야 할 거고, 밥을 먹으러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고, 얼마 뒤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해도 그렇게 일어나고 내려오고 올라가고 하는 것만으로도 번거로운 일이 될 테니. 아침은 그냥 어제 까페에서 싸온 빵이랑 샐러드랑 그런 걸로 간단히, 그러면서 오전 시간에는 여유있게 쉬기도, 뒹굴뒹굴 그러다가 얼추 충전을 해놓고 만나자며 말이지.  

 

 

 

 

 어머나, 그런데 이모야가 생각보다 일찍 감자네로 내려왔네 (와, 신난다!) 지난 밤 산방에는 다른 손님들도 묵었는데, 그 아저씨 손님들이 밤새 홍도야 우지마라부터 꽃피는 동백섬을 찾으며 고래고래 노래에, 즐겁게 떠드는 소리로 잠자리가 조금 불편했던가봐. 아침이 되고 오전이 되어도 혼자 여유롭게 쉬기에는 다소 편치 못한 ㅠㅠ 밥상을 다 차리고 났을 때쯤 이모야에게 전화가 지지지지징, 감자네 집으로 갈래요 ^ ^ 하는 목소리. 

 

 그런데 말이지, 정말로 놀라운 건 시와 이모의 노래 선물.

 

 어젯밤, 기타를 두고 올라갔더랬는데, 이모야는 감자네 집에 내려오자마자 기타부터 찾아. 시와 이모야가 오던 첫날, 레기덩 형님이 그린 만화책 <개뿔>을 선물했더랬거든. 짬짬히 재미있어하며 읽던 이모야는 지난 밤에도 그걸 읽다가 선물을 생각하게 되었대. 만화책 어딘가에 보면 이 마을 사람들은 제 손으로 만든 무언가를 선물하기 좋아한다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보다가 그럼 나는 달래 언니에게 노래를 만들어 선물해야지! 했다는 거야. 그렇게 하여 만든 엄마 생일을 축하하는 이모야의 노래 선물.

 

 기타를 감자네 집에 두고 간 터라 코드를 잡고 연주를 하는 거는 연습도 못했다면서, 전화기 메모장에 적어온 노랫말을 보며 노래를 부르는데, 와아아 좋아라, 세상에나, 노래를 짓고 부르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이런 것도 되는구나. 달래에게는 정말로 세상에 단 하나 뿐인 특별한 선물! 아하하, 오늘은 아무리 내가 잘 못하더라도, 이것만으로도 이미 아주 특별한 생일이 되어.   

 

 

 

 이모야는 이렇게 연습도 없이 엄마 선물로 만든 생일 노래를 불러.  

 

 

  

 

 엄마도 행복해하고, 아빠도 행복하던, 아마 이모야도 행복해했겠지. 그리고 감자도.

 

 

 바로 이 노래.

 

 

제목을 아직 짓진 않았지만, '생일이래'라고 할까 하며 웃던. / 시와, 감자네 집, 20150530

 

 

 

 부슬부슬 비가 내렸어. 이런 날엔 굳이 어딜 가겠다고 무리해서 서두를 필요는 없지. 우린 빗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시거나 그 전날 밤에 동영상으로 찍어둔 이모야 노래하는 모습을 함께 보거나, 그러다가 아아, 동요에 대한 얘기도 하게 되었네. 동요라기보다는 어린이 노래. 이모야가 어린이 노래를 만들어 부르면 참 좋겠다, 하면서 가네코미스즈의 동시들을 찾아 읽어주기도 하고, 피네 아저씨 동시를 읽어주기도 하면서, 이런 동시에 곡을 붙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면서…….

 

 아, 그러다가 <그 꿈들> 안에 있는 노랫말로 곡을 만든 쏭의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거든. 그랬더니 이모야가 핸드폰을 뒤적이더니 어떤 노래 한 곡을 들려줘. 아기 양 한 마리 길을 잃고 간다. 엄마가 보고 싶구나, 언니는 어디에 두고 왔니, 아기 양아 울지 마라, 엄마가 되어줄게, 언니들이 많이 있어……. 엄마야, 세상에! 이것도 <그 꿈들>에서 도하 언니가 마을 아이들이랑 노래를 부르던 그 노랫말.

 

 

 

 그랬다지. 군포에 북콘서트를 하러 가는 길에 입으로 흥얼거리다 바로 녹음을 했던 거래. 그러니 기타 반주도 없고, 그 무엇도 없이 이모야 목소리만 담겨 있어. 아, 그런데 얼마나 좋은지. 세상에나, 이런 노래를 왜 여태 들려주지 않고 두고만 있었을까! 이모야에게 파일을 받아 몇 번이고 들어보며, 누구에게라도 들려주며 자랑하고 싶지만, 아직 발표하지 않은 곡을 블로그에 올려놓거나 그럴 수는 없겠네. 언젠가 음반에 실려 나오게 되거든.

 

 이모야는 그렇게 엄마에겐 생일 노래를, 아빠에겐 그꿈들 노래를 선물로 주었어. 너무도 커다란 선물.

 

 

 

 점심 때가 되어 먼 길 나설 차비를 다 하고 집을 나섰어. 엄마의 점심 생일밥은 이모야가 사주었네. 이모야가 오던 첫날부터 먹으러 간다고 하다가 첫날도 둘쨋날도 다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버려 끝내 못먹고 있던 '꽃밥'의 강된장정식. 이제 밥 먹고 나면 저 멀리 섬의 동쪽, 하도리에 있는 까페 벨롱으로 가는 거.

 

 

 

한 시간 반 쯤 걸린 길. 가는 내내 비가 내렸고, 엄마야랑 이모야는 차 안에서 고개를 떨구고 잠이 들었네. 김녕을 지나고, 행원을 지나, 월정, 세화, 그 다음 하도. 공연장이 가까워지니 이모야는 어제처럼 살짝이 긴장을 하는 모습을 보였어. 어제처럼만 된다면 참 좋겠다며 말이지. 글쎄, 이모야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걸 걱정하는 것 같아. 시와 이모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걸 다 걱정을 할까 몰라.

 

 

 

 까페 벨롱에서 공연 전 리허설. 차라리 이 시간이 이모야 노래를 더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는지도 몰라. 걱정말아요, 이모. 오늘은 어제보다 더 좋을 거예요.

 

 

 

 1집 음반에 있는 노래 <기차를 타고>도 불러주면 좋겠다, 했는데 리허설에서 그 노래도 부르네. 이따가 공연을 하면서 신청한 그 곡도 불러주려는가봐 ^ ^

 

 

 

 리허설을 마치고 나서는 엄마 생일 빵에 촛불을. 동쪽으로 가는 길에 시내에 있는 아라파파에 들러 엄마가 좋아하는 타르트 케잌을. 초는 네 개만 주세요, 이야, 엄마야도 4학년이 되었다, 하하. 그렇게 해서 엄마랑 아빠랑 이모야랑 감자, 넷이서 생일 촛불을 밝혀. 그리고 초가 타는 동안 이모야는 한 번 더 엄마에게 선물한 생일 노래를 불러주어 ♡ 

 

 

 

 생일이라 생각하니 오늘은 무슨 날인 걸까 ♪

 

 

 

 축하한다 행복해라 모두들 인사를 전하네 ♩

 

 

 

 뭐니뭐니 해도 내가 태어난 오늘의 가장 좋은 점은, 오늘부터 나의 새로운 일년이 시작된다 ♬

 

 

 

 엄마에겐 정말 특별한 생일 ^ ^ (그러고보니 작년 엄마 생일엔, 엄만 영월에 있고, 아빤 제주도에서 일을 하느라 가보지도 못하고, 엄마 혼자서 지냈었구나 ㅠㅠ)

 

 

 

 아, 맞다! 이건 첫날에 알게 된 건데, 포항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시와 이모야한테는 고등학교 때 울진이 고향인 친구가 있었다지. 친한 친구여서 그 친구가 학생회장 선거에 나갈 때 선거 구호 중에 "울진군 원남면 매화리의 딸~!"이라는 게 있었다는데, 엄마야, 깜짝야! 원남면 매화리라면 감자네 외갓집이잖아. 그 친구 이름이 누구라고? 아아, OO이! 하하하, 이모야의 친구는 바로 엄마랑 한 마을에 살던 한 살 밑에 동생이야. 그래서 바로 엄마는 이모야한테 언니야가 되었고, 아빠는 냉이 형부가 되었다는 ㅎ 감자한테도 진짜 이모가 되었지 모야 ㅎㅎ  

 

 

 

 엄마야랑 이모야는 케잌을 잘라 먹었어. 그런데 마침 다른 손님 한 분이 집에서 쪄온 감자 한 알을 주었는데, 감자 요 녀석 감자 알을 보더니 입을 벌리며 달려들지 모야. 감자는 감자가 먹고 싶어!  

 

 

 

 아빠가 한 입에 쏙, 했더니 감자는 고개를 돌리면서까지 감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네 ㅜㅜ 으앙, 내 감자~~

 

 

 

 아빠도 이모야랑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셋이 나란히 섰더니, 감자가 이모야 머리를 잡아 ㅎㅎ

 

 

 

 공연 시작하기 전, 감자의 기를 줄게요, 하면서 이모 어깨 위로 목마를 태웠더니

 

 

 

 

 이모야가 감자보다 더 신나하며 좋아라 해 ㅋ

 

 

 

  감자 기운을 듬뿍 받았어!

 

 

 

 저녁 일곱 시, 해가 저물어갈 무렵 이모야의 공연이 시작했지. 사람들은 어제만큼, 아니 어제보다 더 찾아주었던 것 같아. 고요하게 시작하는 노랫소리. 아! 그런데 노래가 시작하자마자 감자는 꾸아꾸아 꾸우우 이모야 노래를 따라부르네. 이걸 어쩌나 ㅠㅠ

 

 

 

 할 수 없이 아빠가 감자를 안고 뒷문으로 나가 화장실 앞에서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며, 저 안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바깥에서 감상할 수밖에 없었네. 그러나 그것도 좋았어. 이모가 노래하는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바다 너머로 해가 저무는 하늘을 보며 듣는 노랫소리. 이미 이모야 노래는 그 사흘 동안 쉴 새 없이 들었거든. 감자네 집 콘서트에, 오가는 길에 차 안에서도, 이모야가 목을 푸느라 부르는 노래도, 어제 공연에서는 첫곡부터 마지막곡까지를 기적처럼 모두 다. 게다가 오늘 공연의 리허설까지. 

 

 엄마도 몇 곡을 안에서 듣다가는 감자를 보러 바깥으로 나왔어. 감자랑 아빠가 밖에 있으니 공연을 보면서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대. 그래서 결국 오늘 공연엔 감자네 식구는 바깥에서 노래를 듣다가, 바람이 너무 불어 차에 들어가 이모야 씨디를 듣는 걸로 대신하였네. 그치한 크게 아쉬웁거나 그러지는 않아. 우린 사흘을 내내 이모야의 노래를 들었고, 게다가 첫날엔 감자네 집 콘서트, 둘쨋날엔 그곶 공연을 기적처럼 다 볼 수 있던 데다, 오늘은 이모의 특별한 노래 선물들까지 받았으니. 

 

 사실 어제 공연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감자가 잠들어 있던 게 기적같은 일이었지 모. 오늘처럼 감자가 소리에 반응하고, 따라 부르고, 옹알이를 해대는 게 자연스런 모습이었을 거야. 미안, 감자야. 조용히 있어 달라고 부탁한 아빠가 잘못이었지 모야. 까페 바깥에서 이모야 노래를 듣는 걸로도 충분히 좋아. 지난 사흘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아, 그래도 까페 벨롱 블로그에 그날 공연 모습을 유튜브에 담아 올려놓은 게 있네 ^ ^

  

 

처음 만든 사랑노래 / 시와, 까페 벨롱, 20150530

 

 

 

길상사에서 / 시와, 까페 벨롱, 20150530

 

 

 

나의 전부 / 시와, 까페 벨롱, 20150530

 

 

  하하, 공연이 다 끝날 즈음에 들어갔다가 아빠도 앵콜곡 한 곡은 들을 수가 있었어 ^ ^

 

 

화양연화 / 시와, 까페 벨롱, 20150530

   

 

 

 공연을 마친 이모야도 기분이 아주 좋아보였고, 공연을 보고 가는 사람들도 다들 행복해보여. 시와 이모는 이제 동쪽에 있는 어느 잠자리에서 묵게 될 거라, 감자네 식구하고는 인사를 해야 할 시간. 거기 공연장에 찾아준 이모야의 다른 지인 분들이 뒷풀이 같은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는데, 그런 자리에서 함께 놀 수 있다면 물론 좋기야 하겠지만, 이미 늦은 시간인데다 잠든 감자를 안고 거기까지 가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워. 그랬더니 이모야가 먼저들 가 계시라 하고는 저녁 밥은 간단히 감자네 식구랑 먹고 들어갈 거라 얘기를 해주네. 아, 고마워라!

 

 그래서 사흘을 함께 보낸 시간을 마무리 하면서 오붓한 시간을 한 번 더 가질 수가 있었어.

 

 

 

 이모야는 감자 목마 태우는 거에 재미가 들었네. 감자야, 다음에 비행기 타고 서울에 오면 이모야네 집에도 놀러가자 ^ ^

 

 

 

이모야도 감자네 집에 또 놀러오세요. 다음 번엔 공연말고 그냥 놀러, 감자 기저귀 빨래도 해주고, 맘마도 물려주고, 아무렇게나 뒹굴면서 같이 놀아요 ㅎㅎ

 

 

 그렇게 사흘이었네. 시와를 하도리 어느 집 앞에 내려주면서, 달래는 감자를 안고 있느라 차 안에서만 손을 잡아 인사를 나누는데, 눈물이 나더래. 공연을 보면서 뮤지션 시와가 더 좋아졌지만, 함께 지낸 시간 동안 인간적인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면서. 나는 그저 여전히 신기하기만 ^ ^ 그 사흘 동안에 상상도 못했던 일, 기대할 수 없던 일이 너무나도 많이. 아니, 그런 특별한 일들이 아니었다 해도, 그냥 같이 밥을 먹고, 거닐고, 우리 집 이불 위에 눕고, 씻고 그러던 별 거 아닌 하나하나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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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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