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대기

굴 속의 시간 2012. 10. 31. 22:16

 

 오늘은 지붕 꼭대기에 올라 있는 시간이 많았다. 상륜부에 설치된 비계를 타고 호이스트 위로 올라가, 그 호이스트를 타고 덧집 지붕의 작은 구멍이 있는 서쪽 끝으로. 그러곤 마지막 사다리를 타올라, 덧집 지붕 구멍 바깥 그 너머로 (지붕뚫고하이킥!) 올라선다. 막상 그 구멍을 지나 덧집 지붕 위에 서니 얼마나 가슴이 시원했는지. 더 가까워진 하늘 예쁘고, 나무와 산 좋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그 꼭대기에선 몸을 한 바퀴만 돌려도 경내에 있는 주요 건물들을 다 알아볼 수 있다는 거였다.

 어제도 그 위에 올라 일을 했는데, 주머니에 사진기를 넣어가지 않았던 게 얼마나 후회되던지. 그래서 오늘 또 그 위로 올라가서 할 일이 있을지 몰라 내내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런데 웬걸, 어제 설치했던 걸 방향 바꿔 다시 해야 한다고. (아싸!) 게다가 두 분 형님은 그 위로 올라가질 못하시겠다고, (그것도 아싸!) 그래서 다시 또 호이스트를 타고, 사다리를 타고, 덧집 지붕 꼭대기에 올라갔다. 예전에 집을 지을 때도 창방 위로, 도리 위로, 서까래 위로, 그 위를 타고 다닐 때가 기분이 좋아. 그러구보면 나는 그런 데 올라가는 걸 디게 좋아하는가바.  

 하하, 내일은 어제오늘 설치했던 거를 하나 더 설치해야 한다 했으니, 으하하 내일도 올라간다, 석가탑 꼭대기 그 위를 씌운 덧집 지붕 위로, 야호!

 

                     뒤돌아보면 바로 대웅전 지붕이 보여. 그 뒤로 무설전, 그리고 그 뒤로 조그맣게 보이는 팔작지붕은 비로전, 저 맨 뒤에 있는 모임지붕이 관음전. 이 건물들이 이렇게 한 눈에 다 들어오다니.

                     서쪽 끝으로 가서 내다보면 여긴 극락전 일곽. 극락전이 있고 그 앞에 석등, 그 앞에는 안양문, 그리고 그 문을 나서면 연화칠보교. 아, 귀퉁이에 추녀부만 보이는 수미범영루까지.

                       그리고 여긴 석가탑 꼭대기에서 동쪽을 내다봤을 때. 요 앞으로 다보여래상주증명탑이 있고, 석가탑과 다보탑 사이 남쪽으로 자하문이 기둥 두 개랑 지붕 일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자하문 밖으로는 청운백운교. (내가 사진을 찍을 줄 몰라 그렇지, 실제로는 이보다 백배는 더 근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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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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