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굴 속의 시간 2012. 9. 27. 23:10

 

 오늘 석가탑 해체보수 착공식이 있었다. 우리건축을 하는 이들, 그리고 문화재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커다란 사건이 되는 일. 천이백년 만에 이뤄지는 전면 해체보수. 그 첫번째 부재를 들어내리는 작업이 오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먼 곳들에서 찾아왔고, 신문이니 방송이니 하는 곳들에서도 탑 둘레로 가득했다. 덕분에 어제는 밤 열두 시가 되도록 깜깜밤중까지 그 준비를 해. 

 실로 나로서도 엄청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 꼭대기 상륜부를 바로 코앞에서 보며, 그리고 각 층의 옥개와 면석을 바로 그 높이에서 보고 있어. 탑구와 지대석을 묻은 지면부터 저 위 상륜부의 노반과 복발, 앙화, 보륜, 보개, 수련, 용차, 보주에 찰주까지 그 꼭대기에서 볼 수가 있으니.

이거는 탑의 꼭대기에서 맨 첫 부재인 보주를 해체해 밑으로 내리는 작업의 한 장면. 오늘 착공 보고회 행사를 마치면서 맨 마지막에는 실제로 부재를 해체하는 시연이 있었는데, 그 때 기자들이 담은 장면 가운데 하나다. 요건 한겨레에서 가져온 거. 좀 전까지 함께 일한 분들과 한 방에 모여 테레비엔 어떻게 나왔나, 여기저기 채널을 돌려 보면서 놀고 그럴 때 이과장님이 스마트폰에서 찾아 보여준. 

 이렇게 경주에서 일이 시작되었다. 그저 바라는 건 몸 고달프고 힘든 거야 그래도 좋으련만, 부디 마음으로 부대끼는 일 없이 앞으로 남은 계절들을 잘 지낼 수 있기를. 이 천년도 넘은 탑 할머니와 이 둘로 무수히 많이 남아있는 옛 사람들의 손길이 닿은 돌과 나무들만으로 가슴 벅차하면서 그렇게. 

 날마다 내가 먼저 잠이 들곤 했는데, 오늘은 노반장님이 먼저 낮게 코를 곤다. 요 며칠 동안 노반장님과 같이 지내며 일을 할 수 있어 의지가 되고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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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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