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까페에 접속해 있을 때 느티나무 아저씨가 쪽지로 시 한 편을 보내주었다.


반성 100


연탄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조그만 쪽지 상자에 담긴 시를 보며 시인의 따스한 눈길이 가슴에 진하게 와 닿았다.

그리곤 시인의 다른 ‘반성’들이 궁금해졌다. 안타깝게도 시인의 시집들은 대부분 절판이거나 품절이 된 상태였다. - 인터넷 서점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들을 다 찾아봐도 구할 수 있는 건 <<미안하고, 죄송하고, 사랑하고>> (한림, 2005), <<무소유보다 찬란한 극빈>> (나남, 2001) 뿐.

관련 글들을 좀 찾아보다 보니 고종석 선생은 어떻게 김영승의 <<반성>> (민음사, 1987)같은 책을, 그것도 민음사에서 절판시킬 수 있는지 어느 칼럼에 쓰기도 했는데, 정말 그렇다.


인터넷에 올라 있는 시인의 시들을 찾을 수 있는 대로 찾아 모았다. 편수를 세어 보지는 못했는데, 다 뽑고 보니까 종이 46장이 들었다.

시인의 작품에는 거의 ‘술’이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을까.

김영승


1959년 출생.

성균관대 철학과 졸업.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반성> <차에 실려가는 차> <권태> <몸 하나의 사랑>

<오늘 하루의 죽음> <취객의 꿈> <심판처럼 두려운 사랑> <아름다운 폐인> 등



반성 16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반성 21


친구들이 나한테 모두 한마디씩 했다. 너는 이제 폐인이라고

규영이가 말했다. 너는 바보가 되었다고

준행이가 말했다. 네 얘기를 누가 믿을 수

있느냐고 현이가 말했다. 넌 다시

할 수 있다고 승기가 말했다.

모두들 한 일년 술을 끊으면 혹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술 먹자,

눈 온다, 삼용이가 말했다.




반성 39


오랜만에 아내를 만나 함께 자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왔다.

아내는 갈비탕을 먹자고 했고

그래서 우리는 갈비탕을 한 그릇씩 먹었다.

버스 안에서 아내는

아아 배불러

그렇게 중얼거렸다.

너는 두 그릇을 먹어서 그렇지

그러자 아내는 나를 막 때리면서 웃었다.

킥킥 웃었다.



반성 83


예비군 편성 및 훈련 기피자 자수기간이라고 쓴

자막이 화면에 나온다

나는 훈련을 기피한 적이 없는데도

괜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어제나 그저께의 일들을 생각해본다

나 같은 놈을 예비해 두어서 무얼 하겠다고

어김없이 예비군 통지서는 또 날아 오는가

후줄그레한 개구리옷을 입고

연탄불이나 갈고 있는 나같은 놈을

나는 문득 자수하고 싶다

뭔가를 자수하고 싶다




반성 97


어깨동무 개동무 미나리밭에 앉았다.

어릴 때 우리는 그렇게 노래부르며 어깨동무하고 가다가

노래가 끝날 때마다 둘이서 함께 앉았다.

그리고는 또 일어나서 노래를 부르며 갔고 노래가

끝날 때 또 앉곤 했다.

한 여나무 번쯤 앉았다 일어나면

우리는 집에 올 수 있었다.

이젠 어깨동무도 개동무도 미나리밭도 없다.

술에 취하여 하루종일 넘어졌다 일어나도

나는 집에 올 수도 없다.




반성 99


집을 나서는 데 옆집 새댁이 또 층계를 쓸고 있다.

다음엔 꼭 제가 한 번 쓸겠읍니다.

괜찮아요, 집에 있는 사람이 쓸어야지요.

그럼 난 집에 없는 사람인가?

나는 늘 집에만 쳐박혀 있는 실업잔데

나는 문득 집에조차 없는 사람 같다.

나는 없어져 버렸다.




반성 108


나는 또 왜 이럴까

나는 또 어릴적에 텔레비전에서 본 만화 영화를

생각한다.

벰, 베라, 베로 그 요괴 인간을 생각한다.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외친 그 주제가를 생각한다.

정의를 위해서 싸움을 한 그 흉칙한 얼굴들을 생각한다.

하필이면 왜 정의를 위해 싸웠을까

하필이면 왜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빨리 요괴인간이 되고 싶다 아무래도

그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은

저 예절 바른 사람들을 생각한다.

반성 156


그 누군가가 마지못해 사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할 때

그는 붕어나 참새같은 것들하고 친하게 살고 있음을 더러 본다.

마아고트 폰테인을 굳이 마곳 훤턴이라고 발음하는 여자 앞에서

그 사소한 발음 때문에도 나는 엄청나게 달리 취급된다.

그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도 사실 끔찍하게 서로 다르다.

한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도

살벌할 만큼 다른 의미에서 거래된다.

그들에게 잘 보여야 살 수 있다.




반성 163

코끼리들이 문득 가엾다.

코끼리 발바닥엔

어느 정도 두께의 굳은살이 박혔을까.

그 거대한 몸뚱이를 지탱하며 먹이를 찾아

뛰어다닌 벌판.

굳은살이라곤 입술과 유방과 성기밖에 없는

불행한 남녀들이 다투어 몰려온다.

귀족적이려고 매력적이려고 그리고

지성적이려고 무지무지 애를 쓰고 있다.

가엾다.




반성173


어릴 때 본 검객영화를 생각한다.

악당들이 미리 칼을 뽑고 삥 둘러싸도

주인공은 태연하다.

할 수 없이 끙 하며 술을 마셔 버리는

그 고독한 주인공을 생각한다.

악당들의 쫄개들이 하도 찝쩍대면

할 수 없이 젓가락을 집어던지는

그리하여 악당들의 눈에 가서 팍팍팍 박히게 하는

그 탁월한 솜씨의 주인공을 생각한다.

악당들의 두목이 나타나면

할 수 없이 술을 마시다가

할 수 없이 칼을 뽑는

정말 할 수 없는 그 주인공을 생각한다.




반성 190


쓸쓸하다.

사생활이 걸레 같고 그 인간성이 개판인

어떤 유능한 탈렌트가 고결한 인품과

깊은 사랑의 성자의 역할을 할 때처럼

역겹다.

그리고 보통 살아가는 어리숙하고 착하고

가끔 밴댕이 소갈딱지 같기도 한 이런저런 모습의

평범한 서민 역할을 할 때처럼.

그보다 훨씬 똑똑하고 세련된 그가

그보다 훨씬 자극적이고 도색적인 그가

수줍어한다거나 이웃에 대해서 작은

정을 베풀고 어쩌구저저구하는 역할을 할 때처럼.

각자 아버지고 어머니고 선생이고 아내고,

어쨌든 이 무수한 탈렌트들과

나는 살아야 한다.




반성 207


우리는 아주 배고픈 나라로 여행을 갔다

배고픔밖에 없는 나라가 그저 아득한

배고픔의 나라로 손잡고 갔다

비인도적인 처사도 야만적인 행위도 없는

황홀한 쾌락도 따분한 무료함도 없는

그곳에서 우리는 감사한 저녁을 먹었다

우리가 나눠먹은 저녁은

그날 저녁분의 배고픔이었다




반성 463


너보다는 내가 더 외롭다

왜냐구?

너보다는 내가 더 아름다우니까


너보다는 내가 더 괴롭다

왜냐구?

너보다는 내가 더 심오하니까


너보다는 내가 더 슬프다

왜냐구?

너보다는 내가 순결하니까


어때?

똑 같지, 너와 나는




반성 505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다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벌써 오래 전에

나는 그렇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술 마시다

그렇게 발광하다

죽어간 것 같다

그렇게 그리워하다.




반성 547


소리가 멀어져 간다


멀어져 가는 소리를 들어본 자는

이미 죄인이 아니다


이미.




반성 563


형이상학적 사고 체계가 완벽한 나는 가끔

여자의 성기를 가리키는

우리나라 말 <보지>를 발음했을 때의

그 전무후무한 공명을 숙고해 본다.


생각해 보았는가

아무도 몰래 묵묵히 <보지>를 발음해 보며

고개를 끄떡거리고 있는 불타나 예수의 모습을

그대의 아버지나 대통령이나 그대의 스승을


생각해 보았는가

마하트마 간디를.


"지 에미 속을 얼마나 쎅혔을까

대가릴 저 지랄도 해야만 글이 나온다던?

저 드러운 저 똥 콧수염 저 으......"


신문에 난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라는 수필집 광고에 나온

李外秀 사진을 보며 어머니는 또 그러신다

그러더니 또 별안간 "야 저 새끼 장가갔냐?" 하신다


히히.


<보지> 건

<태멘> 이건

<아훔> 이건.




반성 569


술 마시면

家屋으로 들어가고 싶다


내 所有의

家屋으로 들어가고 싶다


正立方體가 아닌 球形의

내 家屋으로

영원한 家屋으로


보증금도 月稅도 없는

계약서도 영수증도 없는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수도요금도 청소요금도 없는

무엇보다 전기요금 없는

완전 투명하고 완전 불투명한

완전 경계 없고 완전 독립된

담도 없고 문도 없는


마을같고 도시같고 국가같은

쥐구멍같은 집

子宮같은 집 膣같은 집

집게(蟹)의 집같은 집


술 마시면

主人이 되고 싶다.




반성 570


어머니는

나 하고 단둘이뿐인데도

들을 사람 아무도 없는 데도

남의 얘기를 할 땐

음성을 낮추어 쉰 목소리로 만들어 얘기한다


--뒷질 며느리 바람나서 도망갔대

--목사님네 쌀이 떨어졌대

--구멍가게집 땅개가 큰 개한테 물려 죽었대


당신은 아나운서요 ?

제물포고등학교 졸업하고 외대 스페인어과 나온

KBS1 TV 의 이윤성 뉴스 캐스터요?


사랑한다는 말도

못돼먹었다는 말도

또박또박 발음 하는 당신은.




반성 602


나는 이제 <술>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절제>라고 부르겠다.


어제는

<절제>를 무절제하게 마시고

뽀옹

입으로 방귀 뀌는 소리를 냈다


액체의 속성은 흐름이다

그리하여

액체는 다 무절제하다


물도 눈물도 땀도 정액도

그리고 술도 피도.


수도꼭지처럼 자지(cock)를 달고

계량기를 달고


한 달에 한 번씩 검침하여

돈 받아 가라


눈물도 땀도

정액도.




반성 606


마늘을 까다보니

마늘은 어느새 알몸 같다

너무나 고운

천상의 여인의 알몸 같다


투박한 것에 싸여

숨겨진 것은

다 곱다


나는 이제 옷을 벗지 않으리라

나는 나를

까리라




반성 608

어릴 적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그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주(主)는

나를 놓아주신다




반성 641


당신은 고독을

식후에 피우는 담배 정도로 생각합니까?


피곤해 뵌다고요?

그래서 좀 쉬어야겠다고요?


저에게 있어서

충분한 휴식은

충분한 고독을 의미합니다


충분치 못한 고독 때문에

욕구불만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상한 갈대들을 혹

당신도 보셨는지요?


저 불공평한

불평과 불만 속에서




반성 673


우리 식구를 우연히 밖에서 만나면

서럽다


어머니를 보면, 형을 보면

밍키를 보면

서럽다


밖에서 보면

버스 간에서, 버스정류장에서


병원에서, 경찰서에서…

연기 피어오르는

동네 쓰레기통 옆에서




반성 740


어둠-컴컴한 골목

구멍가게 평상 위에 난짝 올라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옛날 돈 2만원 때문에

쫒아다니면서 내 따귀를 갈기던

그 할머니가

어떻게 나를 발견하고 뛰어와

내 손을 잡고 운다


머리가 홀랑 빠졌고 허리가 직각으로 굽었고……


나도 그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맥주까지 마시니 돈 좀 생겨지나 보지 하면서

웃는다


이따가 다른 친구가 올 거예요 하면서

나도 웃었다.




반성 743


키 작은 선풍기 그 건반 같은 하얀 스위치를

나는 그냥 발로 눌러 끈다


그러다 보니 어느날 문득

선풍기의 자존심을 무척 상하게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나는 선풍기한테 미안했고

괴로웠다


-너무나 착한 짐승의 앞이빨같은

무릎 위에 놓인 가지런한 손 같은

형이 사다준

예쁜 소녀 같은 선풍기가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어린이 동화극에 나오는 착한 소녀 인형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아저씨 왜그래요' '더우세요'

눈물겹도록 착하게 애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얼 도와줄 게 있다고

타임머까지 달고

좌우로 고개를 흔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더운 여름

반 지하의 내 방

그 잠수함을 움직이는 스크류는

선풍기


신축교회 현장 그 공사판에서 그 머리 기름 바른 목사는

우리들 코에다 대고

까만 구두코로 이것저것 가리키며

지시하고 있었다


선풍기를 발로 끄지 말자

공손하게 엎드려 두 손으로 끄자


인간이 만든 것은 인간을 닮았다

핵무기도 십자가도

콘돔도


이 비오는 밤

열심히 공갈빵을 굽는 아저씨의

그 공갈빵 기계도




반성 744

너는 왜 그렇게 티를 내냐

너는 왜 그렇게 기어코 티를 내야 하냐

술 취하여 쓰러져 가는 나를

너는 왜 연탄집게로 때려야 하냐

왜 갈빗대를 부러뜨려야 하냐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밤

너는 왜 그 순결함을 더럽히게 했냐

왜 눈 위에 나의 핏방울로

술 취한 나의 핏방울로

너를 절대로 해치지 않는 나의 핏방울로

너의 그 고운 이름을 써놓게 했느냐.




반성 745


죽기 직전에 자기 아들에게만

알았느냐? 하고 죽었다는

옛날 장인들의 비법처럼

나도 그런 거 하나쯤은 갖고 있는가


반관에 450원

국수를 삶으며

고려청자의 비색 같은

내 아픔의 연원

그 아득한 고대 문명의 발상지를

생각해 보며


시계를 차고도 늘

지각을 하는

노예들과


그리고 그렇게

입 다물고 오래 참을 순 없는가


당신을 사랑해요 혹시

텅 빈 구멍을 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결국

음흉하고 비열한 고백 속에서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는

재림한다고 하지 말고 해결한다고 하라

재혼한다고 하지 말고 해결한다고 하라

글쎄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해결한다고 하라


이력서엔

뒷간에 갖다 붙여 놓으면

왼갖 잡다한 잡귀는 다 물러갈 것 같은

잡귀 쫓는 부적 같은

내 반명함판 사진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정성껏

결국 삐뚜로 붙여 놓고


자기소개서엔 '나는 천재다'

나는 왜 그렇게 쓸 수 없는가


신문에서 오린 사원 모집 광고 문안에 왜

식욕 있는 남녀, 성욕 들끓는 남녀

라는 자격 ──


그 자식들은 왜 나에게

자기네들의 소개서를 써서 보내지 않는가


아니면 '나는 미친 놈이다 으하하하하─'

아니면 숫제 '나는 나는 갈테야 연못으로 갈테야

동그라미 그리러 연못으로 갈테야……'


더러운 놈들.




반성 783


차라리 원시인들이 땀 삘삘 흘리며 굴리고 다니던

도나스같이 생긴 그 커다란 돌덩어리를

돈으로 사용했으면

참 많은 게 탄로날 텐데


간통도 개수작도

그대가 생각하는 사랑도


노동생산성 상승률과 실질임금 상승률이

하등의 관계없이 겉도는

그 모든 노예 시장,

인신매매조차도 독점한

1,2,3 ……n차 시험 합격자에 한하여

면접시험 치르는

부실한 유령 회사도


앗!

돈이 보이지 않는다.


부피도 질량도 없는

보혜사 성령 같은

관념이


모든 현상을 은폐시키고, 쉿 !


박 과장 최 부장

김 실업자


다 굴리고 다닌다




반성 825


언제나 손이 떨렸던 나는

뜨거운 물을 옮길 땐

신중에 신중을 다 해 무척 조심스럽게 옮겼었다

그 물을 내가 끓인 것도 모르면서


나는 이제

주전자 정도는

한 손으로도 자유자재로 옮긴다


니나노집 찌그러진 주전자 같은

내 심장의 물도.




반성 828


TV 엔 아시안 게임

110kg 급 용상 역도 경기에 나와 195kg 들다 실패한 콧수염 기른 배불때기

이락 선수를 보더니

지랄하고 교만 떨더니 떨어뜨리네 하며

어머니는 또 깔깔깔 웃으신다


교만스럽게 생긴 것하고

무게를 못 드는 것하고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나도 깔깔깔 웃었다.


52kg 에서 48kg에서 38kg까지 떨어졌던

나의 체중


나는 교만하고

그리고 우습다

깔깔깔.




닭똥집


포장마차에서 닭똥집 두 개를 안주로 해서 소주 한 병 마심.


퍼떡이고 꼬꼬댁거리던 닭 두 마리의 몸속에서 끄집어낸 닭똥집 두 개.

바닷물에서 끄집어낸 소금 몇 톨.

쌓이고 쌓인 사람들 속에서 끄집어낸 나라는 사람 한 마리.


그 나라는 사람 한 마리에서 끄집어낸 현금 820 원과 담배 및 성냥.

담뱃갑 속에서 끄집어낸 담배 세 가치.

성냥갑 속에서 끄집어낸 성냥 열두 개비.


소금 몇 툴. 현금 820 원, 담배 및 성냥, 담배 세 가치, 성냥 열두 개비는

모두 제자리로 다시 집어넣을 수 있음,


제 자리로 다시 넣을 수 없는 건

닭똥집 두 개

퍼떡이고 꼬꼬댁거리던 닭 두 마리의 몸속으로 다시 집어넣을 수 없음.


쌓이고 쌓인 사람들 속으로 다시 집어넣을 수 없는

나라는 사람 한 마리.

쌓이고 쌓인 사람들 속에서 끄집어낸 나라는 사람 한 마리.

한때는 쌓이고 쌓인 사람들 속으로 다시 집어넣을 수 있었음.


그런데도

쌓이고 쌓인 사람들 속으로 다시 집어넣을 수 없는

나라는 사람 한 마리.

한 개의 닭똥집.




반성 902


하나님 아버지

저는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날이 갈수록 머리가 띨띨해져 갑니다

고맙습니다




희망 939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아이는

아버지의 주검을 곁에 두고

라면을 끓여 먹으며 며칠을 지냈다고 한다.

고아원으로 보내지는 게 싫었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오, 죽음보다 더 무서운 외로움.

외로움이 죽음보다 무섭다는 사실을

아이는 너무 일찍 깨달아버렸구나.

아버지의 몸 썩는 냄새가

오히려 정겹고

그 곁에 누워 오히려 행복했을

아이의 고요한 밤이 깊어가고 있다.


외로움,

죽음보다 무서운


희망 989


과일을 잘 먹는 당신

과일을 잘 먹어서, 고맙습니다

낮잠을 잘 자는 당신

낮잠을 잘 자서, 고맙습니다

옷을 공산당 같이 입는 당신

옷을 공산당 같이 입고 다녀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픈 당신,

아파서, 고맙습니다






내가 돌았을 때


내가 돌았을 때


어 너 돌았구나 참 잘 돌았다 도느라고

얼마나 애썼니

칭찬해 준 사람도 없었고, 위로해 준 사람도 없었고

아니 멀쩡한 새끼가 왜 돌아 지금이 돌 때야

욕해 주는 사람도 비판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다음부터는 돌지 말아라


개과천선할 기회를 주지도 않았고

왜 돌았을까 그 원인을 분석해가며


그래 네가 돈 것을 이해한다 수긍하는

사람도 그 예리한 지성 다 어디로 가고

이렇게 되었을까 끌어안고 흐느끼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돌았을 때

나를 돈 사람 취급 안 한 사람도 돈 사람이고

또 나를 참 비범하게 돈 사람이라고 추앙한 사람도

돈 사람이다 나는 내 아들이

구태여 돌지 않아도 되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도록 노력할 것이다 아들이

너무 많다…


자, 나는 또 <내가 돌았을 때>라는 시를 쓰다가 말았다.

쓰다가 말다니 얼마나 슬픈가, 죽다가 말다니.


겨울, 봄, 여름…


1996 년 2월 2일(금)부터 1996년 8월 7일(수) 까지의 일이다.

그 세월이 꼬박 '20년'이다.


이제 '가을'이다.




새벽비


오늘 새벽도 뻐꾸기 울음은

들린다

닭장 속의 수탉도 여러 차례

목청 큰 울음을 울었고

참새떼가 날아와 소나기처럼

시원한 울음을 부어놓고 갔다.


아닌게 아니라

새벽비가 후득후득 듣고 있다.


언제였던가 그 어느 때였던가

그 새벽비처럼

그렇게 맑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아직 살아있어도 되리라.


창문으로

빗방울이 들이친다.




통곡의 강


꽃이 더는 피지 않는 계절이 나에게도 다시 오면

나는 나가리라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

하얀 서리가 반짝이는

강의 상류 그 모난 자갈이 있는 곳

게서 무릎을 꿇고

찢어진 무릎에서 핏물이 흘러 그 강 하류를 물들일 때까지

감읍을 지나 통곡하리라

나는 죄인이올시다 나는 죄인이올시다

퇴폐의 이방인이 아닌

찌들은 염세주의자가 아닌 감상주의자가 아닌

나는 구체적이고 명백한 죄인이올시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을 난도질했고

그래도 좋다고 그래도 헐레벌떡 독주나 푸고

그의 가슴에 한이 될 엄청난 죄를 지었소이다

다시 살게 하소서

당신은 나를 다시 살게 하소서

내 가슴의 심연에 들어와 가시 철책을 치고

뒤돌아 볼 때마다 기웃거릴 때마다

깊숙이 깊숙이 찔리우게 하소서

피흘리게 하소서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반도의 경기도 또 성남시 그 어느 범부의 딸입니까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팔레스타인의 유대땅 그 어느 목수의 아들입니까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앞에 있어 바라보면 홀연 내 뒤에 있네

내 너덜거리는 가슴 속 그 떨리는 곳에 있네

거대한 강으로 흘러 하얀 돛단배 하나 띄우고 있네

당신은 나를 싣고 어디로 그 어디로 흐르십니까.


아름다운 폐인


나는 폐인입니다

세상이 아직 좋아서

나 같은 놈을 살게 내버려둡니다

착하디 착한 나는

오히려 너무나 뛰어나기에 못미치는 나를

그 놀랍도록 아름다운 나를

그리하여 온통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나를

살아가게 합니다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자신있게 나는 늘 아름답습니다

그러기에 슬픈 사람일 뿐이지만

그렇지만 난 갖다 버려도

주워 갈 사람 없는 폐인입니다



어떻게 살까


어떻게 할까

설거지 하면서 생각해 보니

찬물에 손이 시려운 것처럼

참아낼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살까.

눈물이 흐르는데

눈물이 왜 눈물이냐고 또 묻고 있는데

아무리 추워도

얼어붙는 눈물은 보지 못했는데


눈물은 우리 몸에서 나오는 게 아닌데

눈물이 흐른 내 눈가가

또 시렵다.




'있음'에 대한 참회


그저 곁에 함께 있는다는 것, 그

'있음'이 대류하는 스트레스, 폭력을

참회합니다 그저

마주보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가공할만한 불안,


긴장, 초조, 폭력일 수 있었음을

참회합니다 저는


그저 함께 있다는 것, 그

'있음' 자체가 가호입니다


만경창파 그 해변의

묵송도 그러할진대 너무


가까이 그렇게 지속적으로

있었다니


함께 밥 먹는 것도, TV보는 것도

섹스도 그저


상처투성이 피범벅의

공인된 고문일 수

있었음을


이 겨울

산꼭대기 암벽을 타고 넘으며

냉이는, 달래는 저

아득한 지상에서 뾰족뾰족

돋고 있겠거니


생각하며


나, 사정하듯 쏟아지는 달빛, 별빛

허공중에 산화하니


그저 죄송합니다, 나와 함께 있었던, 있는, 있을

여인이여,


그 종신형의

나의 아내여,

그 푸른 하늘 은하수, 산꼭대기에서


일생을 전광처럼, 파바박!

참회 다 해버렸습니다.




키스


부부간에 키스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부부는 키스가 없다. 옛날엔

많은 여자들과 키스를 해서 그런지, 下體만 집어넣고 그저 고진감래

겠거니 생각한다.


결혼 지 어언 8년차, 나는 단 한 번도 아내와 키스를 해본 적이 없다.


무슨 놈의 주둥아리가 그저 먹고 중얼중얼 기도나 하는 주둥아린

도대체가 '철毋流聲'*이다.


"아, 키스나 성교합니다으∼"

트림하듯, 옛날 채권 장수마냥, 그렇게 가방 하나 들고 걸어다닐까

굴뚝청소하는 사람처럼, 아, 뚫어~

'징'하나 들고

이 골목 저 골목

역시 옛날

아이스 께끼 장수처럼

꽝꽝 얼어붙은 겨울밤


메밀묵 장수처럼

찹쌀떡 장수처럼


"아저씨, 성교 한 번 해주세요"

드르륵 드르륵

창문을 열고 여자들은 말하리라


"2人分요…"

돈을 건네며 발을 동동 구르리라


그런데…

그런데 그까짓 키스 안 하고 살면 안 되냐

내가 언제부터 키스를 하고 살았다고 무슨

키스키스, 이 늦은 밤, 아니 새벽

주접을 떨고 있느냐


그렇다면

cunninlingus?


釋某 스님은 守口庵이라는 암자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가서 보니까 어쩌면 내 房도 守口庵


입을 벌리면

獅子吼같은 天地間의

형형색색 萬뢰가

短調의 和音을 이룬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무슨 화장품 가방 같은 네모난 가방을 든

독일군 여장교 같은 복장의

글래머가 음험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입을 벌리고 싶어서일까


하긴…


똥개들이 길거리에서

흘레나 붙을 일이지

서로 키스를 하고 자빠졌다면

그건 또 얼마나 징그러운 일인가


雜種 개 한 쌍이

거꾸로 붙어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결국 길을 건너간다


아주

'莊嚴'해 보였다.


* '철毋流聲' 물을 빨아 마실 때에 목구멍을 지나가는 소리를 내지 아니함 - 박지원, <양반전>




북어


옛날

아주 먼 옛날

유동 살 때

7 , 8년 전

결혼 초기


출산하고 난 후였을까?

남들은 그게 뭐 그렇게

오랜 옛날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옛날

아주 먼 옛날

아득한


술 취해서 자고 있을 때

부엌에서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 가보니


“뭐 씹는 게 먹고 싶어서요...“


다락에 두었던

먼지 쌓인

어머니가 갖다주신

북어를 방망이로 두들겨

뜯어먹고 있었다


이제 아내는

나와 함께 늙어

몸도 아프고 _


“그럼 오징어라도 사다 먹지...”

말이 없었다


“돈이 없어요...”


그 유동집

열 평 남짓한 무허가 2층 건물의

아래층을 빌려 살 때


방보다 낮은 부엌

그 연탄보일러 옆

쌓인 연탄이


아주 환했다


흑인들 같이

아내를 윤간하고 있는 것 같았다.




꿈과 별


옳다 그르다

이것 저것 따질 때가 좋을 때


세살박이

아들에게 가갸거겨를 가르치다보니

우리나라말 그 한글 닿소리 이름도 몇몇

잘못 알고 있는 게 있구나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옷 이응 지읒 치읓 키읔

티긑 피읖 히읗


빨리빨리 그런 소리만 크게

꽥꽥대도


딴나라 사람들은

다 逃亡가겠다


아야 어여 오요 우유

으이


그렇지만

그것들이 만나 짝을 이뤄 집을 지으면


그리워…

기다릴게…


그런 말도 있단다


어린 벗이여, 나그네여

사는 동안 님은

이걸 배워

어디다 쓰리…


깊은 山

쪼갠 대나무 이어 만든 홈통엔

맑고 찬 溪谷물이 졸졸

큰 돌 깎아 만든 水槽엔

銀구슬처럼 또 찰랑찰랑


풀벌레 울음소리 도깨비불 같은 밤

푸른 대나무 엮어 만든 平床위에 올라앉아


아들아

誦如氷瓢*, 風磬소리

개구리 울음소리

언제 함께 들어보랴.




뻥튀기 장수


돈 많이 벌어서

아름다운 여비서도 하나 두고

심심하면 가끔씩 하고

그러고 싶은데

어느 하시절에 그 많은 돈을 버나

뻥튀기 장사해서……


"클린턴은 자지도 클꺼야

대통령이니까, 그치?"


나는

뻥튀기 장수,


詩를 쓴다네


밀짚모자 하나 쓰고

함박눈이 쏟아져도

뻥튀기 기계

돌리고 앉아 있다네


내 아내

一名 멀러리女史는

점심을 이고 나오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이

아무리 줄을 서도

내 뻥튀기는 쌀 한 줌뿐

그 만큼만 판다네


뻥튀기 떨어지면

만나처럼

한 알씩 주워 먹기도 한다네

사리舍利처럼


sack을 멘 소녀는

아름다워라

그 sack에도 하나 가득

뻥튀기를 넣어준다네

그 소녀는 나팔꽃처럼 입덧을 하고


그리고

또 한 계절을 보내버린다네


내 뻥튀기는 좋은 뻥튀기


비법秘法을 물을 사람

아무도 없다네.




가죽 장사


뱃가죽을 팝니다 보짓가죽을 팝니다

물려받은 뼉다귀에 두툼한 가죽을 덮어

피를 돌게 하면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참 착한 계집이 됩니다

밑천 없는 장사 만지고 주무르고 핥고 빨고

박았다가 뽑았다가

헐떡거리던 짐승들이 콧물을 싸고 나면

예쁘게 앉아서 뜨게질이나 할까

만화책이나 볼까

가랭이를 벌리고 내 보지를 보면

뜨거워진 보지에서 하얀 김이 피어 오르고

저 새끼 좆대 하나 크게 생겼다

지나가는 놈팽이들에게 그렇게 지껄이고 나서

까르르 까르르 울듯이 웃고 나면

당신네들의 인생은 참 길지요

나에게는 별 재미없는 이런 씹.




나는 이 가을에


풍년이라 작황 좋고

굶는 사람 기특하게

꾸준히 굶고 있고

맑은 눈빛 쓸쓸하겠네

그 엉덩이 만지고 싶어

송편 빚듯 빚고 싶은 나의 여인이여

나의 마음이여

들으라 그대는

나는 이 가을에 상춘곡을 쓰겠다.


하염없이 나뭇잎이 진다 해도

밤새워 또 하얗게 내 가슴에 쌓인다 해도

나는 이제 내 꿈의 씨앗을 뿌리고

진부하게 웃고

진부하게 울고

패기에 찬 거지가 되어

명백히 사람들 사이의 사람이 되리라.





우리는 이젠

그동안 우리가 썼던 말들을

쓰지 않을지 모른다

사랑한다는 말

외롭다는 말

그리고

그립다는 말

밤이면 기관포처럼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너의 애인

바라볼 수 있는 건

그 애의 입술

그 애의 가슴


하염없이 그냥

넋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건


그 애의 빨간 입술과

수줍은 가슴


바라볼 수 없는 건

그 애의 눈

그 애의 깊은 눈


어쩌다 한 번 보고 나서

괜히 나 혼자 술을 퍼마시게 하는

아름다운 눈

참 슬픈 눈

언제나 너만을 보고 있는

착한 그 눈.




처음이자 마지막


누가 내 옆구리를 곡괭이로 콱 찍었다고 해보자. 갈빗대 서너 개가 부러져서 근육을 뚫고 삐져나오고, 한때는 죽은 짐승의 시체와 죽은 식물의 잎새로 채워졌던 나의 내장이 주르르 흘러나왔다고 해보자.


그리하여 시뻘겋게 부릅뜬 내 두 눈은 튀어나올 듯이 이글거리고, 태어나서 한 번도 내보지 못한 아니 내볼 수 없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괴로운 비명을 지르고, 고통에 이글거리던 두 눈이 서서히 풀어져 갈 때, 너를 쳐다보거나 죽은 이웃을 바라보는, 아아, 부드럽거나 서러운 그 나름대로의 명백한 눈빛이 아닌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의 눈빛이 지어질 테고, 너를 내 가슴에 안아 입을 맞추거나 허무와 절망에 찌들려서 내뱉던 신음소리가 아닌 그 또한 처음이자 마지막인 신음소리를 낼 것이고, 그리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누가 내 옆구리를 곡괭이로 콱 찍기 전까지는 나는 결코 옆구리를 곡괭이로 찍혔을 때의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런 것이다.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 여자 발


말간 소주

놋쇠 대야에 부어놓고

그 여자 발 하얀 그 발

조심스레 씻겨주며

내 한 잔씩 퍼마시면

아름답기에 잊은 번뇌

내 혀에 와 닿겠네.


술 얘기


제 버릇 개 주랴만

술이 좋아 좋구도 남지 좋아서 마신다

술은 그냥 술이로되

술 속에 사는 사람에게 있어서

술은 그냥 술이 아니다

술은 액체로 된 꿈

떠올리고 싶을 때 떠올려지는

잃어버린 것들

사라져버린 것들 그런 것들

흐르고 흘러서 모여진

강의 하류와도 같은 것


흰 돛은 달 작은 배가

술잔 속에 어우러지면


여자들이 어머 너 예뻐졌다 하는 말처럼

지나가는 말로 흘려버리듯

자네 취했구먼

그럴 수 있어서 좋다




비오는 밤 술집에서


어둠 속에 전등불 불빛 적시며 튀기며

비가 내리고 있다.

소줏잔 만큼만 그 비를 받아

조금씩 마시고도 싶은

마시면서 아무 표정도 짓고 싶지 않은

이 밤

흐린 눈빛으로 無心히

의자 뒤로 한쪽 팔을 늘어뜨린

목이 긴 女子를 바라본다.

내 어머니의 웃음이나

그와 비슷하게 슬픈

그밖의 모습이 눈에 어리거나

꽹가리 치는 사람들

가만히 보면 출렁이는

긴 눈썹.

순대와 삶은 돼지대가리가 널려 있는

原色의 赤裸裸한 술집에서

나는 술을 마시고 있다.

비가 더 오기 전에 가야 하는데

비는 더 올 것만 같은데

미아리에서 서울역까지

발검음도 强하게

도장처럼 낙인처럼 꽝꽝꽝꽝

젖은 땅을 찍으며 가야 하는데

나보다도 옹졸하게

누군가가 울고 있다.

빗물에 발을 담그고 비를 맞고 싶은 이 밤

울고 있는 그 사나이

나는 결국 그를 만나고 싶어진다.




내 척박한 가슴에 온 봄


우리 동네 향긋한 들길 걸으면 두엄냄새

상큼히 코끝 찌르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학동들

등에 맨 예쁜 가방 위에 쌓인

변두리 황토 흙먼지

과수원 나무 사이사이 쥐불은 검게 타고

목장 젖소들 음매음매 되새김질 하는데

작은 교회 지붕에 숟가락처럼 걸린 십자가도

눈물겹고 이제 다시 돌아온 탕자의

무거운 발길 또 무섭다

무슨 변고가 또 있을까

나 같은 죄에 물든 미물도 다 살아가는데

새싹이 돋을 거라고 꽃이 또 필 거라고

그 무슨 못다 기다린 슬픈 사람이 남아 있다고

봄비가 내리듯 술로 적셔야겠다

썩은 고목에 버섯이라도 돋게 해야겠다.




괴로우냐?

괴로우냐?

더 괴로워 하여라.


소뿔에 낀 때처럼

알게 모르게 반질반질

닳다가 닳은 채로 반짝이다가

처음 같은 끝


얻은 것 다시 돌려 주고 땜땜

발 구르듯 애타는 거.


그 그림자 아쉬워라 무슨

까닭으로 내 눈매에 얼음에 물 번지듯

물 그림자 엷게엷게 지는 것이냐.


헤아릴 수 있는 건

헤아릴 수 있기에 섧다.


바닷속 깊은 건 깊다고만 해야 된다

들어가 보면 끝이 있는 밑바닥이 드러날 테지만

끝이 없는 것처럼 놔두어야 한다.


괴로우냐?

더 괴로워 하여라.




情든 女子


곰보 女子와 살아도

오랜 歲月 함께 지내다 보면

곰보 그 구멍구멍마다 情이 담뿍 담겨

모든 게 다 아름답고 사랑스럽게만

보인다던데


머리털을 태워

따뜻하게 해주고 싶을 만큼

내 마음을 안타까왔는데


떠나간 사람.


나는 왜 술만 마셨을까

아아, 나는 왜 그토록 술만 마셨을까

울어야 하는데

이리처럼 새끼 잃은 野獸처럼

밤새도록 울어야 하는데


盞을 쥐고 또 히죽히죽

나는 웃고 있다.




그냥 술집


나는 내 곁에 남아 있는

巨大하지만 외롭고

그림처럼 풀잎처럼 다만 있기 때문에

있을 뿐인

多數일 수 없는 나의 心友와

술집을 내고 싶다


나의 詩처럼

題하여 그냥 술집

人生을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냥 술을 마시다가

日沒처럼 그냥 또 돌아가 주었으면 좋겠다.


아쉬움이나 서러움이나

한때의 醉興이나

모두모두 그냥 가져가 주었으면 좋겠다.

권태


아빠인 내가, 아니 '아빠'인지 '아비'인지 '아버지'인지 '嚴父'인지 'papa', 'father', 'daddy'인지 잘 모르겠는, 여하튼 그를 이 세상에 생겨나게 한 공범, 남성측 피고로서의 내가 특별한 장난감을 사주지 않아서 그런지, 이제 19개월 된 내 아들 인겸이는, 부국사료주식회사 다니는 대머리가 지난 추석 선물로 갖다준 참치 세트의 참치 통조림을 갖고 노는데, 요즘은 그걸 아내의 화장대 위에 네 개씩 쌓아놓고는 박수를 치며 발을 구르며 그렇게 까르르까르르 좋아라 웃어서 나는 그것을 보고 譽之曰,


"多歪堂 吝醒軒 혜이室 主人詩人어人堂 金榮承之子吝謙天使菩薩四層사조 로하이 참치깡통寶塔"


이라 命名하고 나도 역시 박수를 치며 발을 구르며 그렇게 까르르까르르 좋아라 웃어본다. 그리고 나서

'아 고년들 참 되게 이쁘다'하며 신문을 들여다보는데 으잉? 동아일보 1991년 11월 8일 금요일자엔 '서울경찰청 여자 기동대는 7일 밤 이태원 등지의 <게이바> 3곳을 덮쳐 여장 남자 접대부 28명을 적발해 모두 즉심에 넘겼다 <石東律 기자>'라는 설명과 함께, 늘씬한 다리에 하이힐 영락없는 여자 같은 호모새끼들이 죽 서 있는 사진이 나온다. 또 보니까 역시 동아일보 1991년 11월 일요일자 사설엔 <12살짜리 접대부를 둔 사회>라는 제목의 사설이 나온다.


나는 딸이 없지만, 내 딸을 어떤 인신매매단이 납치해 갔다면, 나는 백사를 물리고, 나의 門徒 100만과 함께, 일제히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기관단총과 수류탄, 石弓, 毒針, 무반동砲 등으로 무장을 해서, 기관단총과 실탄은 첼로 박스에 넣고 수류탄은 산타클로스 그 선물 보따리 자루에 넣고, 전국 방방곡곡의 영계 술집을 찾아 다니는 게 아니라, 청와대, 경찰청, 대법원, 검찰청, 대기업, 병원, 신문사, 백담사, 송광사, 조계사, 국회의사당, 명동성당, 여의도순복음 교회, 독립기념관 등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아웅산을 만들어버릴 것이니, 찔리는 놈들, 그런 줄 알고 있어라.




봄, 희망


일곱달째 신문대가 밀려

신문도 끊겼다

저녁이면 친구인 양 받아보던 신문도

이젠 오질 않는다

며칠 있으면 수도두 전기도 끊길 것이다.

며칠 있으면

이 생명도 이 몸에서 흘리던 핏줄기도

끊길 것이다


은행의 독촉장과 법원의 최고장

최후통첩장

수많은 통고장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아내가 보낸 절교장도

그 위에 놓여 있다.


진달래가 피었노라고

아내에게 쓰던 편지 위에

핏방울이 떨어진다.

가장 빛나는 것을

나는 한 장 집어 들었다.




가을 새벽

- 떠나간 아내의 생일


새벽 바람이 벌써

차다


라면을 사야할 돈으로

소주를 마셨던 지난 날


포근한 아내의 품이

그립다


올해도 내 가슴엔 먼저

눈이 쌓였다.


교회당 톱밥 난로 같은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

덜컹거리는 소리……


물에서 건진 듯

전깃줄이 깨끗하다.


슬프도록 아늑한 게 뭘까

생각 안 날 땐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춥다.




겨울 슬픈 겨울


동창이 밝았느냐 동창이 밝았으렴

굶는 늙은이 우지진다 굶는 늙은이 우지지렴

개 잡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개 잡는 아이는 푹 쉬렴

쓰레기 더미 속 야윈 똥개는 잡아 무삼 하리요

태평가를 부르거나 절명시를 쓰거나

세상은 제멋대로 웃고 울고 개판인데

길은 미끄럽고 눈발은 흩날리는데

보따리 든 내 어머니 뇌진탕 걸리시겠네

술 취한 젊은 시인 또 돌아가시겠네

동창이 하염없이 끝없이 천 번 만 번 밝았으렴.




몸 하나의 사랑


몸 하나의 생김

몸 하나의 흔들림, 몸 하나의 쓰러짐


하늘로부터 굵게 꺾어진

꺾어져서 땅 위에 박힌

펄떡 펄떡 뛰는 이 부드러운

빛나는

몸 하나의 나뉘어짐, 몸 하나의 흐트러짐


그 치솟는 힘에 짓눌리어

찢어져 가는

몸 하나의 노래


아무 까닭 없이 꿈틀거리는

비비 꼬이다가 다 풀어질 때까지

그냥 그러기만 하는

몸 하나의 시뻘건 자국


땡볕 속에 모래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몸 하나의 그림자


몸 하나의 없어짐




나팔꽃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은

뒷뜰 나무담장에서도 보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은

밤새도록 하늘은 썩고

하늘은 물이 되고

물이 되어 맺힌다 눈물이 되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이 되어

빨간 살점 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 위에

그리고 웃는다

찢어진 나뭇잎 새로

햇살은 방울방울 구비구비 흐르고

내가 입술을 대기 전에

벌써 떨린다

내가 입술을 대면

주르륵 흐르는 눈물

그러나 나는 먼저 울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은

빨갛게 타오르다가

내가 입술을 떼기 전에

내 발에 밟힌다

그리고는 또 언제나 그랬던 여름을 보내 버린다




취객의 꿈


댁은 뉘시요?

그저 일개 초개와 같은 과객이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가 또 아쉬워 예서제서 숨을 찾는 뿌려진 꽃잎 같은 취객이올시다. 내 앞에서 흐르는 이제는 슬픈 한 여인을 바라보며 바닷가에 앉아 모래처럼 부서진 내 영혼을 세며 기나긴 세월 쉽게쉽게 보내지요. 하얀 조가비 그걸 집어 내 몸 어디부터 가릴까요? 하얀 조가비 그 예쁜 잔에 맑은 술을 따라 출렁이는 바닷물 같은 이 식은 대지를 마셔 버리고 그리고 스스로 설 땅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래서 댁은 무얼 하십니까?

남들처럼 외롭고 마셔 버리고 싶어도 마실 수 없는 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아득한 생각에 잠겨 있지요. 내 손이 닿아보지 않은 그리고 노형의 손도 닿아보지 않은 저 하늘을 처녀막처럼 찢고 그리고 피를 흘리겠습니다. 하늘의 푸른 빛 그건 바로 내 핏줄 속을 흐르는 내 피의 빛이고 싶습니다.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신사처럼 내 머리에 쓰고 다녔던 저 하늘을 벗고 그리고 정중히 죽어야지요. 죽음은 이 무례한 놈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인사입니다.




그대 없어진 지


그대 없어진 지 한 해하고도

이레가 또 지났어도


그대 반짝거리며

보드랍거나 까칠까칠한

날카로운 눈빛

내 얼굴에 고개 너머 검바위에

묻히고 바르고 하였다가


시냇가 봄날 졸음 오는

볕드는 버들강아지 곁에

살얼음 둥둥 뜬 물살 바라보며


그 송사리

물 거슬러 올라가는 걸 바라보았던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얘기에서 슬그머니

웃음과 한숨과 낮은 목소리 챙겨

훌쩍 떠나버렸지


그대는 이제 없어졌지만

옛날 그때 그때에도

자주 자주 없어지곤 했었지

긴 애기 거두고

그 눈빛 풀잎처럼

어느 들판에 돋아나리오


그대 없어진 지 한 해가 지나고

이레가 지났어도


그것으로도 벌써

나는 너무 오래 살았나 싶네

두루두루 온 누리

온 누리 제 모습으로

있는 것

다 알겠네


당신은 아름다워요


방바닥에 털푸덕 앉아 양말을 신는




당신은 아름다워요


거울을 들여다보며 크림을 바르는

당신은 아름다워요


나 때문에 웃고 나 때문에 우는

당신은 아름다워요


내 곁에 누워 곤히 잠든 당신.

아침에 부산히 일어나는

당신은 아름다워요.


술 취해 쓰러진 나에게

다음날 라면을 끓여주는

당신은 아름다워요.


욕하고 저주하고 떠난 당신은……

당신은 아름다워요.




비에 젖은 밥


식당에서 남은 밥을 보따리에

싸서 가져오신 어머니

이 태풍 부는 밤 빗물에

흥건히 젖은 밥을

마른 번개가 나를 비웃던 여자의

미소처럼 스쳐가는 하늘 나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고등동물답게

숟가락을 쥐고

어머니 퍼렇게 삭은 육신

그 무덤을 삽질하듯 푹 떠 본다


빗물에 말은 밥을 감사하게

밑으로만 깔리는 어둠을

감사하게.




슬픈 국


모든 국은 어쩐지

괜히 슬프다


왜 슬프냐 하면

모른다 무조건


슬프다


냉이국이건 쑥국이건

너무 슬퍼서


고깃국은 발음도 못하겠다.


고깃국은……

봄이다. 고깃국이.




눈이 오면


눈이 오면 알리라

눈보다 더 흰 것은 어디에도 없음을

눈만큼 흰 것은 곧 사라져감을


하얀 종이 위에 하얀 물감으로

그대의 얼굴을 그릴 수 없듯이

밤하늘이 깜깜하면 깜깜할수록 별빛이 밝듯이


눈이 오면 알리라

내리는 그것 때문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음을


나무도 사랑도 하늘도

우리들의 마음도,


눈이 올 때

내리는 저 눈이 그 하얀 빛이

새롭지 않은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노라

내 마음은 총천연색

그리하여 서럽고 죄많은 사람


나는 저 눈을 바라볼 수 없도다.

눈이 오면 알리라

나를 사랑하는 그대의 마음도

나를 용서하는 그대의 마음도


끝없이 하염없이 더러움을.




꽃잎 날개


밥을 먹어도 이 여름

얼음 띄운 맑은 물에 반듯하게 썬 오이지

그렇게 먹고 있는 한낮


채송화 노란 꽃 빨간 꽃

봉숭아 흰 꽃 빨간 꽃 이름 모를 蘭

별같이 총총히 핀 작은 꽃 흰 꽃

양귀비 흰 꽃 빨간 꽃

분꽃 그 빨간 꽃 환한 호박꽃

주렁주렁 달린 파란 고추 빨간 고추

그 흰 꽃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는 걸 보니

노란 나비 흰 나비 큰멋쟁이나비

고추잠자리 실잠자리 밀잠자리 또 왕잠자리

말벌 호리병벌 풍이 풍뎅이

다 날아드는구나


인천에서도 배다리 그 도원고개

그 기찻길 옆 길 건너 대장간 철공소 붙어 있는 동네


初伏 지난 이 痛快한 날

닭 한 마리 사다가 놓고 아내는 마늘을 까고 있구나


어린 아들은 부엌에서 목욕을 하고

나는 어느 꽃잎 어느 날개 속에

이들을 포근히 뉠꼬

생각하는데

强風에, 急流처럼

우리집 그 좁은 골목으로 새까맣게 휘몰아쳐 들어온다.




숲속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또 내 곁을 떠났다.

나는 그 새가 앉았던 빈 가지에

날아가 버린 그 새를 앉혀 놓았다.


많은 사람이 내 곁을 떠났다.

떠나간 사람

죽은 사람

나는 아직도 그들이 앉았던 빈자리에

그들을 앉혀 놓고 있다.


그들이 없는 텅빈 거리를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말없이 걷는다

거리는 조용하지만

떠들썩하다.

그들이 웃으며 나를 부르고 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곁을

내가 떠나게 되었을 때

내가 없는 술집 그 구석진 자리에

나를 앉혀 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작은 새 한 마리가

아직도 슬픈 노래를 부르고 있다.




너 있는 곳


어디냐 거기는

거기 그냥 있어라

하늘 끝쯤은 내 눈에 와 닿는다

알 수 없는 너는

나무 열매 속이냐

쓰린 내 가슴 속이냐

코 끝 때리는 두엄

밀잠자리 엷은 날개 위냐 너는

아무 데나 다 있구나

나는 이 늦은 밤 추근거리는 비

술집에 앉아 있는 나는

아무 데나 있어야겠다

술이 내 가슴에 고이다 보면

아무 데나 있다가

너를 만난다

짧게 울고

너의 모습 꽃을 따듯

따서 담으리라.




어쩔거냐


문지르거나 긁거나 비틀거나

빨거나 핥거나 꺾거나 조르거나

누르거나 찌르거나 쑤시거나

움켜쥐거나 후비거나 하는 게 좋아졌다.


어쩔 거냐 살아 가는 일

몸뚱아리 살덩어리 남들처럼 이루고

소 갈 데 말 갈 데 질질 끌면서

목숨 붙이고 살아가는 일


그리고 사랑

그 모든 걸 죄다 어쩔거냐.




내 몸을 덜어가라


내 몸을 덜어가라

내 마음을 덜어가라

덜어갈 게 어디 있냐고 하지 말고

나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려 한다

내 몸과 마음을 덜어가라


땅이나 돌이나

종이 위가 아닌

그대들 가슴 속 그 깊은 곳에

자취를 남기면

나는 그대들을 사랑했다고 말하여질 것이냐


내 몸을 덜어가라

내 마음을 덜어가라

내가 그대들을 사랑했다는

그 앙상한 말조차 나오지 않게

그대들 가슴 속 그 깊은 곳에조차

자취를 남기지 않게


그 더러운 몸과 마음을 덜어가서

무엇하겠냐는 말을 들을 수 있게

그리하여 나는

나를 이루고 있던

그 모든 몸과 마음을 다 버리고

자취 없이 산뜻하게 사라져야겠다


처음에는 모두들

갖고 있지 않았던 것들이다

나에게 얼마만큼의 거짓이 더 있어져야

그대들은 내 몸과 마음을 덜어갈 수 있단 말인가

다 내놓고 다니는

나의 몸과 마음을


아아, 얼마만큼 내가 그대들을 더 속여야

내가 그대들을 사랑하는 까닭으로

내 몸과 마음을

부서뜨리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그 아름답고 슬기로운 그대들의 몸과 마음을

서둘러서 바삐바삐

헐떡거리며 덜어가고 있다


웬만해선 보이지도 않는

그대들의 몸과 마음을




술과 외로움


나는 외롭기 때문에

너무나 외롭기 때문에

술을 마심으로써 내 자신에 대한 인기를

유지하려 하나 보다

내 자신에 대한 인기

두려운 건

너무나 아름다운 내 눈매

내 몸 붉은 피로 녹아날 때까지 술을 마시다가

그대의 조용한 사랑 같은 황혼이

내 눈매쯤에 그림자 지면

내 외로움도 또 끝이 나겠지.



Yuhki Kuramoto/Warm affection
이흥덕 그림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닥소리의 창작 판소리 음반  (0) 2006.11.29
재미있다, 우리 고전  (0) 2006.11.28
생태공부 모임  (0) 2006.11.24
한미 FTA 저지 범국민대회  (0) 2006.11.22
돌아오라 자이툰  (0) 2006.11.20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