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니 바람 소리가 잦았다. 며칠 죽변에는 무섭도록 바람이 불어댔다. 위 아래로 울진읍이나 부구만 해도 그 정도로 바람이 불지 않는다 하는데 죽변은 바로 바닷가를 곁해 그런지 빗속에 우산을 펼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집에 있는 내내 마음이 뒤숭숭했다. 아침이고 낮이고, 오후, 저녁, 밤, 새벽 할 것 없이 들이치는 바람으로 문이며 창틀이 흔들흔들, 게다가 괴괴한 소리는 또 어떠했던지. 집에 누구 식구라도 있어 얘기를 나눈다거나 텔레비전이라도 있어 아무러이 틀어놓거나 하면 좀 덜할 듯싶은데, 그런 것 아무 것도 없으니 바람 소리에 온 종일 휩싸여 있어야 했다.

며칠이나 악몽을 계속해서 꾸어 대었다. 가위에 눌려 꼼짝 못하고 버둥거리다 깨면 몸이 땀에 흠뻑 젖어들었고, 겨우 다시 잠들면 또 다른 악몽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나중에는 악몽 꿀 걱정에 잠들기가 겁이 날 정도로.


그렇게 때리는 비와 휘감는 바람 속 며칠 동안 쉬엄쉬엄 고전소설 몇 권을 읽었다.




전해지는 여러 판본들을 살펴, 그 안에서 내용을 알뜰히 살리면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해 최소한 만큼만 요즘 말로 풀어가며 쓴 것들이다. 참 재미나게도 읽었다. 저마다 탄생의 신비한 비밀을 가진 어린 아이들이 무예와 도술을 익히고, 학문을 닦으며 자라나 탐관오리와 역적, 요괴 따위를 물리치기도 하며, 백성들의 바람을 이루어가는. 용이 날아오르고, 오색구름이 휘감고, 도술을 부리고, 신비한 명약을 쓰고……. 지금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이처럼 대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하는 바람들이 불쑥 불쑥 들곤 했다. 그리곤 머릿속으로 이야기들이 뒤엉켜 지나가는 듯 했다. 그렇게 머릿속을 맴돌아 지나가는 이야기들마다 붙잡아 내어 글로 옮겨낸다면야 좋겠지만, 늘 게으름만 탓하곤 한다. 그러나 읽는 내내 몹시도 즐거웠다. 온전히 독자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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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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