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선생님

냉이로그 2006. 12. 3. 10:12

이불에 누운 채 전화를 받았다. 기범이야, 하는 힘없이 떨리는 할아버지의 목소리. 네, 선생님. 몸이 먼저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엊그제 편지와 함께 조그만 상자에 이것저것 담아 보냈는데, 어제 쯤 그걸 받으셨나 보다. 아직 자고 있었구나, 아니요, 이불 속에 누워 책을 보느라 목이 잠겼는가 봐요. …… 이내 몸과 마음에 드는 긴장을 풀리고 마주 앉은듯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지에 원 선생님 수술이 잘 되었다는 얘기며, 얼마 전 병수 아저씨가 몽실언니를 읽다가 안동에 한 번 같이 가보았으면 싶다 했다는 얘기들도 담았는데, 그에 대한 얘기들. 그리고 날씨 얘기, 세상 얘기……. 기범이도 끼니는 거르면 안 된다, 건강해야 해. 네, 선생님. 선생님도 겨울 잘 나세요. 따뜻해지면 찾아뵐게요.몸 괴로울 만큼 세상 걱정 너무 하지 마시고요. 그래, 그래. 나는 이제 능그렁이가 다 되어서.. 너무 속상해하고그러면 안 돼... 네, 선생님...

작은 상자를 부치면서, 혹 열어보지도 않고 되돌려 보내실지 모르겠다 걱정했다 하니, 안 그래도 그 안에 폭탄이 들었나 해서 안 열어볼라 했다 하시네. 헤에.


선생님 맑게 떨리는 목소리가 내내 귓가에 남아 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어느 해 봄, 조탑 마을 들머리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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