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굴 속의 시간 2012. 7. 3. 21:21

하늘이 심상치 않다 했는데, 그래도 오늘은 땡볕은 아니니 뜨겁지 않아 좋다 하고 있었는데, 일을 마치기 한 시간쯤 남았을까, 우르릉 쾅쾅, 대포소리로 천둥번개에 폭포같은 비가 쏟아졌다. 급했다. 미리 준비를 하고 차근차근 덮어도 천막 덮는 일은, 일 가운데에서도 참 얄궂은 일인데,그폭포빗속에서 진창이 되어 갑바를 들고 뛰어다녔다.잠시도 채 되지 않아 다들 옴팡 젖어버리고,진창뻘밭에 뒹군 모습이 되어장막과 모래주머니를들고뛰어. 그러고나서야 샤워실에 가서 씻고 나오니 하늘은 말짱 거짓말인 것처럼내가 언제 그랬니, 하더라. 아, 이런 날은 어디지짐이 잘 부치는 집에라도 가서 날궂이를 했어야 하는데, 자꾸만 눈이 감겨, 그냥 집엘 돌아왔다.

요거, 요기가 내가 일하는 현장. 숭례문 동측 성곽의 법사면에 흙채움을 하고 있어. 보름 남짓 되었나, 그 사이에 저 흙을 다 채우고 다져올렸다.노반장님이랑 유씨 아저씨, 그리고 포크레인이랑 바보캣이랑 함께 우리 여섯이서 그동안 한 일. ㅎㅎ 아직다 되려면 얼마가 더 걸리기는 하겠는데,흙채움으로 경사면을 다 잡고 나면, 그 위로는잔디를 입힌다. 요 사진은 어제 남대문 시장 쪽으로 나가다가 길 건너편에서 찍은 거. 나는 맨날 저 여장 밑이나 경사면에 서서 이 아래 시장 사람들을 내다보기만 했는데, 바깥에서 올려다보니까 저렇게 훤히 보이네. 아, 그러면 중간중간 내가 녹초가 되어 삽자루 집어던지고 하던 거, 이 시장 사람들은 다 보고 있었겠다. ㅋ 하여간 오늘처럼 그런 폭포비가 내리거나 할 때 아직 자리잡지 못한 저 흙더미가 쓸려내려가서는 안 되겠기에, 저 성벽 뒤의 경사진 언덕을 모두 갑바로 뒤집어 씌워야만 해 ㅜㅜ갑바를 한 쪽 끄트머리씩 잡고서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내달리면서, 모래주머니들을 안고 뛰어. ㅋㅋ

저기에서 일을 하다보면사흘 건너 하루 꼴로 시위대들 지나가는 걸 만나곤 한다. 서울역이 가깝고 시청이 지척이라 그럴 테지. 한 날은 학교 비정규직 교직원들이 행진을 했고, 또 한 날은 화물연대와 금속산별의 시위대열을 저 위에서 내려다 보았고, 오늘은전국에서 올라온 농민들이선무방송과 함께 저 아래로 지나갔다. 마침 그 즈음 하늘에서벼락 소리로 천둥번개에 폭포비가 쏟아붓기를 시작했는데, 그 농민들은 그 빗속을 어떻게했을까 모르겠다.서울역이나 시청 앞에서 시작하는 그런 식의 집회와 행진 행렬 뿐 아니라, 바로 저 흙더미를 마주보고 있는빌딩에는날마다 오후 두어 시 쯤 확성기를단 봉고차가 와서 선전전을 하기도 해.사무직 노조라고 했던가. 삽질을, 함마질을, 콤팩트를, 나라시를 하는 틈틈이 그 아래를 내다보곤 한다. 마치너무도 낯선 어떤 것이기만 한 마냥.

ㅎㅎ 요거는 땀띠 인증.다른 사람이 폰으로 찍은 거는훨씬 징그럽게 나오던데, 내꺼는 디카인데도 전화기 사진기보다해상도, 뭐 그런 게 안 좋은지, 요렇게만보인다. 아무튼 올록볼록 엠보씽이 되어버린저따굽고 가루운 땀띠들. 아오, 증말. 애기들궁둥이에 바르는분이라도 발라야 하겠는지 ㅜㅜ 이래뵈도 나는 숭례문에서 일하다가 모가지에 땀띠 난 사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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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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