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면

굴 속의 시간 2012. 7. 27. 23:09

장마가 끝나고는닷새 째 불이었다.더워, 뜨거워, 숨이 막혀.

아침 현장 법면으로 올라서면 채 여덟 시가 되기 전에 이미 속옷까지 다 젖어버려. 참 시간에 담배를 피우다가 노반장이 옷깃에 혀를 대보더니 앗퉤퉤, 기범씨도 맛봐봐요, 소금 지대로네. 누가 물었더라. 기범씬 휴가 어디로 갈 거냐고. 여기요, 숭례문. 날마다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되어버리는데요, 헤헤. 올록볼록 땀띠로 덮혀있던 목덜미는, 이젠 땀띠가 아니라 짓물려 터지는 것 같아. 첫날부터 커다란 돌덩이들을 목도로 옮겼더니, 엄살 한 번 없던 유씨 아저씨도 아구구구, 에구구구 죽겠다 소리를하더니아저씨부터 노반장, 나까지 모두 어깨에는 한 뼘을 넘는 피멍이 잡혔다.목도가 처음이라는 유씨 아저씨는 살갗까지 다 쓸려서 이제 겨우 딱지가 앉았다고.

하루가 저물면, 그날 저녁 뉴스에선 내일이 최고 기록을 올릴 거라는 일기예보가 나왔다. 테레비고 인터넷이고 암 것도 보질 않아 지내면서도 날씨 예보만 나오면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어지는 폭염주의보. 퇴근을 하고 잠들기 전, 밤하늘에떠있는 달이깨끗하게 보이면 한숨부터 절로 나왔다. 내일은 얼마나 더 뜨거우려고 저러나.눈을 뜬 새벽,여명 속으로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으면 겁이 나곤 했다. 한날저녁엔뉴스에 열사병, 일사병 얘기가 많이 나오니, 최고로 뜨거울 거라던 그날은 석장님도, 소장님도 걱정에 걱정을 하며 너무 뜨거울 때는 피했다 하라고, 일이 중한 게 아니라 쓰러지면 클난다고, 쉬어하라고, 조심하라고.

아주 가끔, 떠가던 구름이 해를 잠깐 가려주기라도 하면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그리고 아주 가끔, 불어주는 바람.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것들은 그야말로 아주, 가끔, 이었다. 일이 힘들수록 유씨 아저씨와, 노반장과는 실없는 소리를 더 해가며, 그렇게 웃기라도 해야 버틸 수가 있지, 우스운 소리를 해가며 덥고 숨이 막혀 죽겠는 거를 잠시나마 잊곤 했다.하하하.

* * *

그리고 요기부터는 사진 방출 ㅋ

오전 아홉 시 참 시간. 쥬스를 빨아먹고 있을 때, 보고서팀의 소연이가 찍어준 것들 ^^


이거는 오후, 잠깐 쉬는 짬을 가지면서 그늘을 찾아 계단 밑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말고 있을 때, 다시 또 소연이에게 잡혔다. ㅋ 오늘따라 노반장님이 하도 웃긴 말을 많이 해서 저러구 바보처럼 웃는다. ㅎㅎ


이거는 아마 월요일쯤. 한참 때릴판을 만들어 사면 흙을 다지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이차장님이랑 조과장 오과장이 현장 점검을 나왔는데, 그 때 조과장이 찍어준 거. 가운데가 찬종이(오과장), 그 옆이 용준이 형(이차장). 내게는 너무도 고마운 형과 아우가 되어.


그리고 요건, 목요일날 점심밥 먹고 나서 내가 찍은 기념사진 ^^

이제 숭례문에서 뻗어가는 동측 성곽의 법면도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간다. 오늘부터 잔디가 들어와 심어나가길 시작했어. 그러면 정말 다 되는구나. 저 법면에서의 일이야 그것으로 다 되겠지만, 그렇다고여유가 생길 것 같진않다. 일하는 건 일하는 거지만, 시험 준비를 이렇게만 하고 있어도 되겠는지. 안그래도 어제 집 앞에 와서 만난찬종이가 그래. 어떻게 합격한 일차 시험인데, 이제 한 번 남은 그 기회를 놓치려 그러느냐고. 일하는 거야 일하는 거지만, 그게 다가 아니지 않느냐고. 자기가 일차가 되어 이차를 준비하고 있다면 이렇게 손놓고 있지 않을 거라고.으응, 그래. 그 고마운 말을 해주는 아우 앞에서 얼마나 부끄럽던지.모르긴 몰라도 나는한동안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지쳐 있던 것이다.

어느덧 벌써 칠월도 다가고, 낼모레면 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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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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