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굴 속의 시간 2011. 12. 22. 18:22

-이런이런, 이번엔 발표 날짜를 잘못 알고 있었다.작년 남의 자리에 앉아 시험을 치던 그 엄청난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아무튼 못말린다, 정말. 그리하여 어제 현장에서 서까래를뜯다가문자를 받았다.마음의 준비란 걸 전혀 못하고 있었기에 그저멍멍하기만 했다. 최종면접에서 불합격.하루가 지나고 났는데도 여지껏 멍멍하다.대인배인 척, 겸허하게 또는 담담하게, 여기저기 걸려오는 전화에 그런척 흉내를 내며 웃어보이기는 했지만, 아니, 속이 많이 쓰리다. 합격자 명단을 보면서 어떤어떤 이름들을 보며, 아닐 텐데, 내가 더 잘했을 거라고 그랬는데,시험을치고 난 뒤에도 이렇게 칼바람을 맞으며 현장에서 몸을 굴리고 있는데, 왜일까, 왜 안되었을까, 왜.왜.

-그나마 일차 관문은 넘었으니 내년에 한 번 더 일차 시험없이 이차 시험을 볼 기회가 남아있기는 하다. 올해는천명 남짓이 치른 일차에서 스물둘을 걸렀고, 그 스물둘과 이러저러한 일차 면제자 쉰여섯 명이 함께이차 시험을 보아 스물넷이 기술자가 되었다. 올해 일차를 통과한 스물둘 가운데에는 열 명이 최종합격. 지난해 일차에 합격했다가 이차에서 고배를 먹었던 스물넷 가운데에서는 열넷이 이번에 합격.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어 쌩으로 이차만을준비하는 일은 더욱 똥줄이 탈 수밖에 없다고 한다.도무지기준이무언지, 무엇이 모자라고무얼 더 채워야 하는지 막막한 상태에서, 그것도 십분에서 십오분 남짓의 면접을 위해 일년을 준비하는 일은 그 일년을 온전히 불안과 싸워야 하는 일이라 한다. 내년의 그 기회에서마저 또 되지를 못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일차 관문부터 새로시작해야 해. 지난해이차 불합격자로한 번 더 면접을 본스물넷 중에도 열은 투아웃에걸려 그 도면들을 다시싹 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포의 투아웃.

-그래, 안다. 내가 얼마나 현장의 경험이 모자란지, 기껏해야 나무를 만지고 흙을 만진지 육칠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내가 먹은 현장의 흙밥, 톱밥이라 해야고작 한 줌도 되지 않을 것이다. 더 굴러야 하는 거지, 더 고생을 하고 오라는 거겠지, 아직 충분히 두들겨지지 못했고, 아직 필드에서 흘린 땀이 얼마 되지 않는다.처음 이 시험을 준비하면서, 굴 속의 시간에 들어가며 마음먹기를, 삼년을 바라본다고, 그 이상은 더 하지 않을 거라 했는데결국은 예정했던 그 시간을 꽉 채워야 하는가보다.문턱에서 간발의 차이로 떨어지는 일이 되풀이되면 될수록,중독처럼 끊지 못하고 그 늪에서허우적거리게 되기 마련. 아, 그래봐야 아니긴 하겠구나. 문화재법이바뀌어전공학과 출신자로 응시자격이 제한되면서어차피 나는 두 해 뒤에는 더 해볼 수조차 없으니.

- 그러니 내가 밥 사주는 거, 술 사주는 거 기다렸던 사람들은 일 년은 더 기다려야 되겠시다. 그것도 그때 가 봐야 알겠으나, 으쨌건. 그나저나날은 왜 이렇게 추운지.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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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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