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답사

굴 속의 시간 2012. 4. 23. 14:24

삼박사일의 짧은 여행에서 한나절만큼은 시간을 내어 굴속의 시간으로. 일부러 답사를 나서기도 하는데, 이렇게 간 길에서나마 보고는 와야겠기에, 다들 한 번쯤 가보라는 애월해안도 뒤로하고, 중문 주상절리도 뒤로하고, 성산 일출봉도, 다랑쉬 오름도, 한라산도 다 뒤로 하고 제주의 민가가 보존되어 있다는 성읍 민속마을엘 찾았다. 집 공부를 하면서 가장 알고 싶은 것들이 일반 서민들이 살아온 집들이건만, 문화재로 남아 있는 백성들의 집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를 않아, 사대부집이나 절집, 관아 건물들이야 그나마 보존이 잘 되어 있지만, 난리통이면 가장 먼저 불살라지는, 새마을운동이며 주택개량 같은 사업이면 가장 먼저 헐려버리기 마련이기에 낮은 자리에 살던 이들의 가난한 살림집들을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아. 게다가 백성들의 민가는 당대 삶의 조건과 양식을 그대로 반영해주는 것들. 사대부가의 기와집들이야 주자가례에 따른 예법이거나 나름 지위 높은 자들의 권위나 상징들이 건축 계획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에, 그 시대 백성의 삶이나 그 지역 삶의 문화를 들여다보기에는 민가만큼 좋은 것이 없다.

제주는 물이 없는 지역이라 벼농사가 되지를 않아, 그래서 초가라 하더라도 볏짚이 아니라억새를 비롯한 새풀로 지붕을 잇는다.여느 지역보다 바람이 세기 때문에 겉고샅을 매는 방식도다를 뿐더러, 집의 층고가 여느 지역보다 낮다.기단이 낮고,기둥을 짧게 해 최대한 지붕을 낮춰. 뿐 아니라 실내공간을 이중으로 만들어바깥으로는 아예 한 칸씩을 돌담과 같이 벽을 둘러바람으로부터 방 안을 지켜준다. 여기까지가 내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제주 민가에 대한아주 초보적인 상식.

입면으로 다섯 칸 초가이지만 실제 실내공간은 가운데 세 칸이나 다름 없다. 양쪽 퇴칸들은 불을 넣는 아궁이이거나 독립적인정지로 사용하며, 전후퇴에도 퇴칸을두는 것이 대부분. 전면에는정칸과 협칸으로툇마루를 내는 것이 보통이지만, 뒷면의 퇴는 외부로 열려있지를 않고 돌담으로 둘러져 있는 것이 보통.

장초석을 보면 마루귀틀이 끼워지는 부분부터 아예 초석을 따내었다. 귀틀 높이 이상으로 초석이 올라오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지만, 이렇듯 초석 중간부분부터 귀틀이며 귀틀 하부 벽체 자리를 가공한 모습도 처음보는 것.

이 역시 비슷한 구조의 다섯 칸 초가. 정칸과 협칸의 앞퇴에는 역시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고, 이처럼 차양 비슷한 보조 지붕을 내건 집들이 대부분이더라.

이게 전통방식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전퇴 부분으로 따로 덧달아낸 차양은, 처마도리에서 끈을 잡아매어차양의 연목 뒤뿌리 지지대를 고정시켰다. 그리고 차양의 평고대 중간중간에는 비스듬히 받쳐댄 보조기둥들을 세워.

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도리들 사이로 방형 구조로 창방을 돌려매고 있지만 모서리 부분에서는 마치 중층건물에서 귀잡이보를 쓰듯이 45' 가새들을 한 번씩 더 대어주고 있다는 거. 그러한 가새들은 구조물의 뒤틀림을 잡아주는데 유리하다. 바람이 많은 지역이라 필요했던 것인지, 아님 부재를 튼실한 것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민가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보강방식인 건지.

일관헌이라는 건물은 보수 공사중. 오른쪽 퇴칸 부분만을, 기와를 내리고, 추녀 양 옆 선자연들이 해체된 상태까지를 보았다. 아무래도 추녀쪽 문제가 생겨 귀처마의 부분보수 중인 모양. 합각도 그대로 둔 채 귀처마 부분의 기와를 걷고, 연목들을 뜯어낸 상태였는데, 하중의 균형이 흐트러지거나 구조의 빈공간으로 인해 따를 수 있는 추가 변형에 대한 보강이 되어 있는 것은 보질 못했다. 이 건물은 조선초기 때 것 그대로는 아니고, 1975년에 복원한 것에 문제가 생겨 다시 수리 중인 것. 도지정문화재 7호.

그건 그렇고, 보수 공사에 대한 것보다 이 건물을 둘러보며 내 눈길을 더 끌었던 거는 화방벽을 쌓으며 쓰인 돌들이 구운 전돌이 아니라 현무암을 그대로 쓴 것 같았단 말이지.

정의현 객사에 들어가니 과이연 초석도 현무암을 그대로 갖다 썼어.

일관헌에서는 화방벽에 줄눈이라도 들어가 있었지만, 여기 정의현 객사에 동서 익랑 건물 바깥쪽을 두르는 화방벽은 줄눈 같은 것도 없이 아주 대놓고 현무암을 쌓아. 마치 축대나 성벽의 단면을 볼 때와 같이. 그 뿐이 아니야, 기단을 이루는 장방형의 장대석도 화강암이라기에는 너무 구멍이 많은, 현무암은 아니더라도 이 지역에서 나는 화산석의 어느 종류인 것 같다. 방문 앞 댓돌은 물론 기단 윗면을 덮은 마감 또한 화산석 계열의 석재로 박석을 만든 것 같아.

정의현 읍성의 성곽을 봐도 성돌부터 성곽로의 상면마감, 미석까지 모두 현무암이 사용되고 있어.

우리나라 어느 성곽에서도 특징으로 볼 수 있는 옹성과 치는 이곳 정의현 읍성에서도 볼 수 있어.

여기는 정의향교. 향교나 서원은 지역별 배치 특성이나 대성전 및 명륜당과 그 부속 건물들과의 건물 위계에 따른 구성 등에서 몇 가지 관건이 되는데, 이곳 제주의 정의향교는 여러가지 면에서 특징이 보인다. 우선 위의 건물은 대성전 앞뜰에 있는 동재 건물인데, 우진각으로 지어져 있다는 점.

그리고 이 건물은 동재의 맞은편에 있는 서재 건물인데,이렇게 보면 동재와 서재의입면이 전혀 달라보이지만, 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남향을 하고 있기에 이렇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까가운데에 놓여 있는 어도에서 바라볼 때 동재는 전면이 보이는 반면, 서재는 뒷면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서재도 저쪽으로 돌아가서 전면을 보면 아까 동재 사진에서 보던 모습과 같아.


이건 동재 건물 앞의 기단부를 조금 크게 찍은 사진. 기단과 초석, 갑석이 모두 현무암계열의 화산석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기둥 초석을 보면 초석 사이로 인방재가 가로질렀는지, 결구 홈 같은 것이 있기도 해.

동재와 서재 가운데로 어도가 지나가고 그 뒤로 대성전이 있다. 향교나 서원 건물에서는 가장 위계가 높은 건물.여기에서는 대성전이 동향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례적이며, 대성전과 명륜당이 앞뒤로 놓여있질 않고병렬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또 하나의 특징.전형적인 배치형식이라면강학공간인 명륜당 앞으로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며 있고, 그 뒤로 제례공간인 대성전 앞으로 동무와 서무가 마주보며 있는꼴일 텐데, 여기에서는 대성전과 명륜당이옆으로, 그리고동재와 서재가 명륜당 앞이 아닌 대성전 앞에서놓여 있단 말이지. 아, 그리고 이 건물 초석을 보면 둘도 아니고 셋을 겹쳐 쓴 것이 보인다. 이렇게 초석을 쓴 것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어.

얘가 명륜당. 명륜당 하면 가운데 세 칸을 대청으로, 양 옆 퇴칸을 스승의 방으로 꾸미는 게 일반적인데, 이곳 정의향교 명륜당은 초가가 아님에도 지역 특성이 뚜렷이 배어 있다. 대청없이 가운데 다섯칸을 실로 구성하고 맨 끝 한 칸씩의 퇴칸으로는 돌담을 둘러.

여긴 성읍마을이 아니라 제주시에 있는 관덕정. 이 건물은 전통건축 공부를 시작하던 초반부터 사진과 도면, 자료들을 찾아 공부를 했더랬다. 팔작지붕 구성 방식의 특이한 사례로 측면 서까래와 합각부의 하중을 지지하는 독특한 기법 가운데 하나로 찾아본 것. 보수공사의 역사로 보아도 1924년 일본인들에 의해 처마가 두 자 정도씩 짧아지고, 벽체를 두른 건물로 되었던 것을, 2006년에 비로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원형을 살려 복원해놓은 것.직접보니 좋았다. 어떤 건물이든 이렇게 직접 보고 나서야 비로소 남다르게 느껴져.

여기가 문제의 그독특한 측면하중 지지구조.퇴칸에 접한 내진기둥 사이에는 대들보 대신 중도리와 같은 치수의 외기도리가 직접 놓여있다. 이것이 측면 서까래와 합각의하중을 받아 내진기둥으로 전달하는 것.그러나 도리 춤으로는 그만한 하중을 지지하기가 어려우니, 내진기둥의 창방 아래 춤이 굵은 부재를 한 번더 두르고, 가운뎃 기둥까지 한 번 더 받치게 하여 보강을 해준 것.

출목도리와 주심도리 둘을 함께 받쳐주는 부재가 쓰이기도 했구나.

* **

이렇게 하여 삼박사일의 제주도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막상 가면 할 게 뭐가 있나 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다니다 보니까 참 짧더라. 보는 눈에 따라서는 신혼여행치고 되게도 시시하고 그렇다 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둘이서는 딱 좋았다, 하며 만족스레 돌아왔다.

아,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면, 제주도엘 가서는 한옥학교에서 함께 목수일을 배운 동생네를 만났다. 우리가 남산한옥마을에서 식을 올리던 날, 그 아우는 왜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둘이 똑같이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간 거. 그래서, 첫날 저녁에 술이랑 밥이랑을 함께 먹었더니, 이 녀석들이 둘쨋날에는 저희가 밥을 사겠다며 이틀을 내리 그 부부와 술이랑 밥이랑을. 그러고는 셋째날에는 강정에서 송경동을 만나 그 숙소에서 한라산 소주에 꼬르륵 했으니,푸하하단 둘이서는 저녁 한 끼도 먹지를 못했다는 거. ㅠㅠ 이게장가를 들었다 해서 잘 달라지지가 않더란 말이지. ㅎㅎ



'굴 속의 시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시  (9) 2012.05.25
이게  (2) 2012.05.03
문턱  (4) 2011.12.22
대마  (0) 2011.12.09
어디  (4) 2011.11.21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