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이 시원할 수 있는 까닭. 그래, 마당은 폼으로 두는 것도 아니고, 주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는 것도 아니다. 마당과 마루 밑, 그리고 벼락창 뒤의 응달진 자연.그래서 한옥은 집이라는 덩어리만 보는 것이 아니라 터를 보는 것이고 더 넓게는 풍수를 보는 것이고, 건축 계획부터 바깥 공간까지 함께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라는 걸 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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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당 (1560)

혼합지붕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지붕 양식이 섞여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도산서당은 옆으로 달아낸 부분만 빼고 보면 맞배지붕 집이다. 도산서당은 도산서원 안에 있는 건물들 가운데에서도 퇴계 이황 선생이 생전에 실제로 사용을 했고, 본인이 직접 설계를 한 건물이다. 건물 자체가 우리 한옥을 상징하는, 상징적인 공간을 최소한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청마루와 온돌방, 부엌으로 이뤄진 이러한 건물을 '삼재' 또는 '삼칸지재'라고 얘기를 하는데, 삼칸지재라 하는 것은 각 칸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한옥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그래서 지붕도 가장 간단한맞배지붕이다. 대청마루는 고상식 주거로부터 발전이 된 것이고, 온돌방과 부엌은 움집에서 발달이된 것이다. 도산서당은 이렇게 삼칸지재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가장 기본적인 한옥의 구성요소를다 갖추고 있는 건물인 것이다.그런데 이 도산서당 뒤편으로 만들어진 건물들은 모두가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제자들이 도산서원을 만들면서 후대에 증축한 것이다. 그전에는 도산서당 건물 뒤로는 모두가 자연이었다.

건물의 구성을 보면 대청마루 뒤에 벽체가 있고, 그 벽체에 조그만 판문이 있어서 필요에 따라 벼락창 같은 것을 열 수가 있다. 여기에서 한옥의 원리를 보면, 앞마당으로는 여름철 직사광선이 내리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앞마당의 공기가 계속 달궈질 것이고, 그렇게 덥혀진 공기는 올라가게 될 텐데 자꾸 올라가게 되면 그 자리는 공이가 비게 된다. 그러면 대청마루 뒷벽에 있는 벼락창을 열면 앞마당의 공기가 비니까 그 뒤에 있는 공기가 빈 자리를 채우러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뒤에는 숲이기 때문에 공기가 서늘한 상태로 있다. 그 찬 공기가 빈 곳을 찾아서 앞마당 쪽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렇게 앞마당으로 공기가 들어오게 되면 대류 현상이 발생하여 직사광선에 다시 더워지는 공기가 올라가고, 건물의 뒤편에 있는 공기는 계속해서 들어오고…. 이러한 대류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등 뒤에서 시원한 공기가 들어와서 아주 신선한 기운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이게 일반적으로 한옥의 대청마루가 시원하게 되는 원리라 할 수 있다. 그러면 뒷벽 창을 아예 더 크게 내면 바람이 더 시원하게 들어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건 그렇지가 않다. 사실 앞마당에서 더워진 공기가 올라가게 되면 가장 먼저공기가 움직여 채우게 되는 곳은대청마루 밑이다. 마루 밑의 공기 또한 이미서늘한 공간이기 때문에 공기가 시원하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그곳의 공기부터 마당으로 나오게 되고, 그러다보면 대청마루 밑이진공상태가 된다.이래서 건물 뒤의 시원한 공기를 빨아들이게 되는 것인데, 만약에 대청마루 밑이 큰 공간이면그처럼집중적으로 건물 뒤의 공기가 유입되지 않는다. 진공상태가 되어야지만 공기를 확 빨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개구부가작으면 작을수록 빨아들이는 힘은 더욱 강하게 된다. 마치 물이 흐르다가 갑자기 좁아지는구간에서 물살이 빨라지는 것처럼, 똑같은 유량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이 작을수록 빨리 나가게되는 원리인 것이다. 그래야 들어오는 유량과 나가는 유량이 맞을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여기에서도마찬가지 원리로 대청마루 밑에 있는 서늘한 공기가 앞마당으로 쉽게 빠져나가게 하기 위해 그곳에는 큰 개구부를 두고,빠져나가는 공간으로 인해 생긴 진공은 뒤에서 그만큼의 공기를 빨아들이려 하게 된다. 다시 말해 대청마루 밑에서 빠져나간 공기만큼 빨아들이려한다는 것이다. 이 때 뒷벽에 있는 개구부가 크면 들어오는 흐름이약할 것이다. 그래서 개구부를 작게 하는 것인데, 대청마루 밑에서 나가는 공기의 양은 많고 들어오는 양이 적기 때문에 공기가 더 세게 빨려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앞에 있는 개구부와 뒤에 있는 개구부의 크기를 달리하는 것이다. 뒤에 있는 개구부를 작게두어 진공의 상태에서 더욱 급속한 공기의 유입을 하게끔 하려는 장치가 된다는 것. 이러한 원리를 극도로 이용해 만들어진 건물이널리 알려진 해인사의 장경판고인 것이다. 거기에도 뒤쪽과 앞쪽의 개구부 크기가 다르다. 이미 이러한 원리를 적용한 건물로는 해인사 장경판고가대표적으로알려져 있지만, 그 똑같은 원리를 민가에서도 적용해서 써온 것이다.

여기에다가 퇴계 선생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미 도산서원은 대청마루의 나무바닥 공간, 온돌방의 돌바닥 공간, 부엌의 흙바닥 공간으로 공간마다 바닥재료를 다 다르게 쓰고 있는데, 퇴계 선생은 이 나무바닥 공간에서도 한 번 더 나가게 한다. 그래서 대청마루 바깥 측면으로 퇴칸을 내달고 그 위로 눈썹지붕 혹은 가섭지붕이라 하는 지붕을 내고, 그렇게 낸 퇴칸에는 나무를 듬성듬성 깐다. 이미 대청마루만 해도 땅바닥에서 올라와 있어 시원한 공간이 되게 했는데, 나무를 듬성듬성 깐 퇴칸까지 마련하여 한층 더 시원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 위로 등을 대고 누우면 공기가 흐르는 것을 직접 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무튼 여기에서 살피고자 한 것은 퇴칸 위쪽으로 달아낸 눈썹지붕, 가섭지붕이라 하는 것인데, 이것은 혼합지붕 양식 가운데에서도 아주 간단한 양식이라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기존의 맞배지붕에 어느 쪽으로든 퇴칸을 내면서 지붕을 덧단 형식. 그러나 이러한 덧댐 형식이 꼭 맞배지붕 건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팔작지붕 건물에도 적용하는 경우가 있다. 안동의 옛집들이나 하회마을 같은 곳에 가보면 적지 않게 볼 수 있는데, 팔작지붕 건물에서는 합각부가 조성된 아래에 있는 측면부의 지붕을 연장시키는 것으로 덧붙이곤 하는 것이다.

도산서원 그리고 도산서당은 분명 여러 차례 다녀온 곳인데도 이렇게 기억이 없다.아마 그냥옛집이겠거니 하면서 집이 예쁘다 하고는 돌아나온 것이전부였을 거다. 하다못해 천 원짜리를 낼 때마다이 건물들을 보아왔을 텐데그조차 한 번도 유심히 들여본 일이 없는 것 같아.이미 내용 설명에는 위에 있는 사진들만으로도 충분하겠으나 그래도 다시금 눈에 익히며 친해지고 싶어 사진들을 여기 저기에서 몇 개퍼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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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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