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서울에서 살만큼 살았는데 어째 창덕궁을 아직 한 번도 가 본 일이 없을까. 어쩌면 가 봤는데 기억을 못할지도 몰라. 아, 이런 곳이 있었구나, 서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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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존덕정

1644년에 만들어진 육각형을 가진 정자. 이 건물은 창덕궁 후원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겹지붕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지붕을 두 겹으로 올려놓은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을 중층건물의 구성원리에 빗대어 보자면 중층건물 구성의 온칸물림 방식과 동일한 벙법을 사용했다고 할 수 있다. 중층건물 가운데 온칸 물림 건물의 원리라는 것은 이 건물과 동일한데, 단지 이 두 겹의 지붕 사이에 높이를 줘서 창을 내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창덕궁 존덕정은 지붕은 두 겹이지만단층 건물로 두 지붕 사이에 벽체라든지 창따위는 있지 않은 채 위에 올린 지붕이 밑의 지붕을 그대로 내리누른 형식이다.지금은 일단 이 정도로 창덕궁 존덕정이겹지붕을 이뤘다는 것만 염두에 두고 지나가는 것으로 한다. 그 구성방식이 온칸물림과 동일하다, 단지 중층건물이라면두 겹의 지붕 사이에 벽체가 수직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존덕정에서는 그것이 생략된 형식이다 하는 정도로만 말이다. (중층건물의온칸물림 방식 공부는 다시 자세히.)

사진 옮겨온 곳

창덕궁 존덕정은 육각형 건물이기 때문에 추녀 뒷뿌리가 들리는 힘이 굉장히 강하다. 지붕 위를 보면 절병통이고 그 위에 옥신주가 있어 내리누르는 힘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꽤 높이 쌓아올려 추녀뒷뿌리가 올라오려고 하는 힘을 내리누르고 있다.

절병통 - 모임지붕에서는 지붕 꼭지점에 마디가 여러 개인 항아리처럼 생긴 특수기와를 올리는데 이를 절병통(節甁桶)이라 한다. 수원 화성의 방화수류정, 창덕궁 상량정 등을 포함한 모임지붕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다.<한국건축용어사전, 203쪽>

창덕궁 존덕정은 퇴칸이 있는 구성인데 당연한 말인 것도 같지만 안에 있는 칸에 좀 더 권위를 뒀다. 안칸에는 난간을 따로 둘러쳐주었고, 퇴칸 공간에서 아무데서나 바로 드나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칸으로 가기 위해서는 군데군데 있는 개구부를 통해 들어갈 수 있게 했다. 그러니까 퇴칸은 말하자면 하나의 복도, 안칸을 빙 두르고 있는 복도와 같은 개념으로볼 수 있다.

지붕만 보더라도 겹지붕에서 가장 위에 있는 지붕이 덮고 있는 공간이 가장 위계가 높은 곳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정자에서 가장 위계가 높은 곳은 안칸이 되고, 바깥 부분은 퇴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한 공간의 위계를 이 건물에서는 지붕으로도 표현을 하고 밑에 있는 난간으로도 영역을 나누어 표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보면 정자는 주로 가운데에만 천정을 한다.

아무래도 추녀뒷뿌리들이 모이는 쪽이 복잡하게 되니 가려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운뎃 부분으로 천정을 가설하는 것 역시 이중의 효과를 노리는 거라고도 볼 수 있다. 바깥쪽의 퇴칸은 연등천정으로 두고, 안에 있는 칸에는 보개천정을 둠으로써 내부공간의 권위를 표현해줌과 동시에 복잡한 상부구조를 가려주는 역할 또한 하게 되니 말이다.

보개천정 - 궁궐 정전에서 임금이 앉는 어좌 위나 불전에서 부처님 머리 위 정도에만 설치되는 특별한 천정이다. 일반적으로 우물천정 일부를 감실을 만들 듯 높이고 여기에 모형을 만들듯 작은 첨차를 화려하게 짜 올려 장식한 다음 가운데는 용이나 봉황을 그리거나 조각해 장식한다. 조선시대 사찰에서는 차츰 닫집(唐家)이 생겨 보개(寶蓋)천정을 대신했으나 조선 초 무위사 극락전이나 봉정사 대웅전에는 보개천정의 원형이 잘 남아있다. 보개천정의 기원은 귀한 사람 모리 위에 씌웠던 우산인 산개(傘蓋)에서부터라고 추정된다. <한국건축용어사전, 275쪽>

지붕쪽의 육각형은 어떻게 구성했는지를 보면, 일단 대들보 두 개가 같은 방향으로 지나간다. 그런 다음 그 대들보 둘을사이로마치 하나의대들보 같은 부재를 양쪽으로 건너지른다. 그렇게 대들보와 건너지른 것들 위로 동자주를 두 개씩 올리고, 그 동자주들을 연결하면 육각형이 나오게 된다.이 건물보다 먼저 살핀 창덕궁 청의정에서는 사각의 평면 기둥이 올라가 팔각형을 이루는 것을 보았는데, 거기에서는 대들보라는 개념은 아예 없이 기둥 선 바깥에서 창방 뺄목들 위로도리들이 얹혀지면서 팔각을 이루는 모습이었다.

* 아래는 인터넷에서 찾아본 자료 사진들인데 부분들을 잘 보여주고 있어 사진 아래에설명을 달아놓은 것들까지 통째로 모두 옮겨왔다.

사진과 글 옮겨온 곳 -여기

반도지 북쪽조금 높은 곳에 반월지(反月池)가 보인다. 반월지 남쪽에 이중지붕을 한 육각형 정자가 눈길을 끄는데 존덕정이다. 인조 22년(1644)에 세워져 처음에는 '육면정(六面亭)'이라 했다가 나중에 이름을 고쳤다.

반월지(反月池)란 이름으로 보면 반달 모양의 연못이어야 하는데 한 눈에 보아도 그렇지 않다. '동궐도(東闕圖)'에는 존덕정 북쪽에 네모난 연못과 반달 모양의 연못이 묘사되어 있다.

관람정 쪽에서 개울을 건너 존덕정으로 드는 돌다리이다.

존덕정에서 올려보면 궁궐 정전의 보개천정처럼 화려한 육각형 천정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에 황룡과 청룡이 쌍을 이뤄 여의주를 희롱하는 모습이 마치 승천하는 것 같다.

존덕정 내부에는 '만천명월주인옹자서'라는 정조의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다. 옛날에는 다리 남쪽에 일영대를 설치하여 시각을 측정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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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 반도지 일대.

존덕정 - 반도지 주위에는 정자와 작은 건물이 네 개 있다. 반도지의 동쪽가에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 서쪽 높은 지대에 승재정, 북쪽에 온돌과 마루를 함께 갖춘 폄우사, 더 북쪽 두 연못 사이 왼쪽 연못의 남쪽에 존덕정이 있다.

'만천명월주인옹'이라는 나무판이 붙은 존덕정 - 1644년(인조 22)에 지어진 이 건물은 처음에 육면정이라고 부르다가 존덕정으로 바뀌었다. 이 건물과 이어진 다리 남쪽에 시간을 재는 일영대(日影臺)가 있었다고 한다. 존덕정은 본 건물을 짓고, 그 처마에 잇대어 지붕을 따로 만들어 지붕이 이중으로 되어 있다.바깥 지붕을 받치는기둥은 하나를 세울 자리에 가는 기둥 세 개를 세워 이채롭다. 존덕정 천정 중앙에 그려진 쌍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은 왕권의 지엄함을 상징한다.

존덕정 안 지붕 아래에는 '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 쓰인 나무판이 걸려있다. 정조가 재위22년(1798년)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세상의 모든 시냇물이 품고 있는 밝은 달의 주인공)'이라는 호를 스스로 지어 부르고, 그 서문을 새겨 존덕정에 걸어놓은 것이다. 그 요지는 '뭇 개울들이 달을 받아 빛나지만 달은 오직 하나이다. 내가 그 달이요 너희들은 개울이니 내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태극, 음양, 오행의 이치에합당하다'라는 것으로 신하들에게 강력하게 충성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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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덕정(尊德亭) 일원 -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

이 일대는 후원 가운데 가장 늦게 갖춰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모습은 네모나거나 둥근 3개의 작은 연못들이 연이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하나의 곡선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관람지라 부른다. 연못을 중심으로 겹지붕인 육각형 정자인 존덕정, 부채꼴 형태인 관람정(觀纜亭), 서쪽 언덕위에 위치한 길쭉한 맞배지붕의 폄우사, 관람정 맞은편의 승재정(勝在亭) 등 다양한 형태의 정자들을 세웠다. 폄우사는 원래 부속채가 딸린 ㄱ자 모양이었으나 지금은 부속채가 없어져 단출한 모습이고, 숲 속에 자리잡은 승재정은 사모지붕의 날렵한 모습이다. 1644년(인조 22)에 세워진 존덕정이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관람정과 승재정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세운 것으로 추정한다.

글 정리, 사진촬영 / 김형민


관람정

폄우사

승재정

존덕정

존덕정

존덕정 옆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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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의 정자(10) -존덕정(尊德亭)

존덕정은 인조 22년(1644)에 건립되었으며 지붕 구성이 독특하며 부재 조각이 섬세하다. 당시 국내 정자가 대체로 4각이나 8각인데 반해 이는 6각이므로 처음에는 육면정(六面亭)이라고 불렀다. 존덕정은 이중겹처마 지붕인데 이는 중국 고건축 목조 조영기법 중 육각형 평면의 정자를 짜는 방법인 쌍으로 기둥을 두르고 처마를 이중으로 만드는 방식 쌍위주중첨육각정(雙圍柱重첨六角亭)의 영향을 받았다. <참고 : 대한건축학회 학술발표대회 논문집>

이 건물은 6개의 원주 중 2개가 연못에 떠있으며 본 건물을 짓고 그 처마에 잇대어 지붕을 따로 만든 툇간을 한 겹 돌려서 마치 지붕 두 개가 겹쳐 있는 형상을 띤다. 이 건물은 주심포계의 공포로 짜였는데 주두가 평굽이면서 원형이고 주칸에는 화반을 놓아 주심도리를 받게 했다.

대량은 전후 각 2본씩 기둥 주두 위에 놓였고, 대량 사이에는 전후로 2본의 뜬보형 부재를 가로질러 육각중천장(六角重天障)의 포대공을 받도록 했으며 나머지 좌우의 두 기둥으로부터는 충량이 휘어올라가 대량 가운데 몸에 꿰어 맞추도록 하였다.

툇간은 가늘고 작은 부재로 좁게 꾸몄으며 각 귀마다 3본의 원주가 연립하고 각 기둥마다 공포를 짜고 도리를 받았다. 본 건물의 주칸 창방 아래는 빗살문과 꽃무늬의 교창이 반반씩 만들어졌는데 꽃무늬 아래에는 낙양각을 내었다. 난간은 본 건물에는 풍혈판을, 툇간에는 완자 헌란(軒欄)을 둘렀다. <발췌 : 서울의 궁궐 건축 / 김동현 / 시공사>

존덕정은 관람정에서 조금만 북쪽으로 올라 개울의 석교를 지나면 사각의 연못과 반달형의 연못을 합성한 연못이 나타나는데 이 연못에 두 다리를 담그고 서 있다.


석교와 조형물. 석교를 건너면 겹지붕 조형물인 존덕정이 나온다.

시각을 재는 일영대(日影臺)

연못의 모양이 위쪽은 반달형이고 아래쪽은 네모이다.

두 개의 석주가 물 속에서 받치고 있다.

바깥 기둥의 원주는 본 기둥의 원주보다 가늘며 각 모서리마다 세 개씩 모두 18본이 세워져 있다.

초석의 각을 육각형에 맞추었다.

완자난간

안쪽의 마루는 우물마루, 툇간의 마루는 장마무로 설치하였다. 안쪽의 난간에는 풍혈판을, 바깥쪽에는 완자의 난간을 둘렀다.

초익공이며 주두가 원형이다.

박쥐모양의 낙양각

각서까래를 사용했다.

추녀

대량 위에 뜬보를 놓고, 그 위에 포대공을 얹어 육각중천장(六角重天障)을 받게 했다.


대량과 대량 사이에 정조가 직접 지은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천정에는 청룡과 황룡이 여의주를 갖고 희롱하는 그림이 곱게 그려져 있다.

암막새에도 용이 그려져 있다.

아래의 처마는 홑처마로 각서까래를 사용, 그 위의 처마는 겹처마로 둥근 서까래와 각재의 부연을 사용.

추녀 끝에는 토수를 씌웠다.

절병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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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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