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에이포

냉이로그 2010. 3. 31. 12:26

공포의 에이포

누가 그랬다더라, 공포의 에이포라고. ㅎㅎ 아저씨를 아는 사람들이면, 그리고 아저씨와 더러 만나는 사람들이면 그 말을 듣고 웃지 않을 수가 없을 거다. 만나면 늘 가방을 뒤적여 누런봉투들을 꺼냈고, 그 봉투들마다 복사되어 있는 글 한 부씩을 하나하나 꺼내 주곤 했으니 말이다.

조금 전에는 그 공포의 에이포를 직접 전해받지는 못하고, 전화 통화를 하면서 아저씨가 읽어주는 세 쪽의 글을 들었다. 내일이 풀무질 열일곱 돌 되는 잔치, 게다가 이번에 엮어내는 아저씨의 책 출간을 기념하는 잔치도 함께 한다는데……. 가보지는 못하고 멀리서나마함께 기뻐할 거라 했더니 아저씨는 크게 아쉬우신지 오늘 새벽에 썼다는 그 글이라도 전화기에 대고 읽어주고 싶다고 했다.내일 잔치에서 읽으려고 쓴 글이라면서,오지는 못한다니이렇게라도 미리 들려주시고 싶다면서.

2003년부터였다고 했다. 이라크 침공이 시작하고괴로운 마음을 가누지 못하면서 그 때부터 틈틈히 함께 나누고픈 생각을 글로 쓰고, 그것을 수백부씩 복사를 해 책방 길손들에게라도 나눠주기를 해온 것이.아, 그 때였구나. 나 또한 아저씨와 인연을 맺은 것이 그 때였다. 혜화역 사 번 출구 앞에서 천막을 쳐놓고 소망나무를 하고 있을 때, 그 때 처음 인사를 나눴다. 그러곤아저씨는 날마다 잠깐씩책방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놓고 짬을 내어 다녀가셨고,단식장에서 보라며 책을 한 권씩 가져다 주곤 했다.맨발의 겐이라는 만화책도 그 때 아저씨가 하루 한 권씩 갖다준 거였다. 그렇게인연을 맺으면서 아저씨의 에이포들을 차곡차곡 받아오곤 했다. 집회에서 만나도 아저씨는 가방에서 누런봉투를 찾아그동안 못 전해준 에이포들을 한 부씩 챙겨주었고, 문화제가 되었건 그 어떤 사적 모임이 되었건, 시끌벅적한 술자리가 되었건 아저씨는 가방을 열어에이포로 복사해 가지고 다니는 글을 나눠주기부터 했다.때로는 술자리에서 그 낭독을듣기까지.어떤 때는 너무 뜬금이 없어 당황스러운 적도 없지 않았고, 잘 모르는사람이보면서 싸이코 같다 해도 아주 이상할 것 같지가 않았다. 괴팍스러워서 괴짜가 아니라뭐랄까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것 같은 그런 괴짜 아저씨였으니 말이다.어느 자리에서나진지함이 넘쳤고, 진정을 주체못하는 모습.술자리에서 마구 웃고 떠들다가도 아저씨가 꺼내는 공포의 에이포 낭독을듣게 되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솔직히 대략난감이아닐 수 없었으니 말이다. ^^;

그러나 아저씨는새벽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일곱 해가 지나도록 아저씨 가방에는 늘 새로 쓴 글들을 복사한 누런봉투가 몇 개씩 담겨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면 오랜만에 만나는대로, 자주 보게 되면 자주 보게 되는대로 이 글은 줬던가 하면서아저씨가 손수 써서 복사한 글들을 챙겨주었고, 읽어주곤 했다.그러나 그렇게 나누어주는 종이들이 쉽게 버려지는 것도 보곤 했기에 슬며시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이렇게 쓴 글들 더 많은 사람도 볼 수 있고, 멀리 있어도들여다 볼 수 있게 인터넷 같은 곳에 올려두면 어떻겠느냐고, 아저씨 글을 더 보고 싶어도자주 못 만날 때는 받아볼 수도 없지 않느냐고……. 하지만 아저씨는아날로그 방식만을 고집했다.복사한 글 뭉치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더 좋은 듯 했고, 그러다가 만나지는 이들에게 한 부씩 빼서 주는 것에서 더 의미를 느끼는 것같았다. 그것은 아저씨나름의 질기고도 오래된 작은 실천이었고,그 글쓰기가 아저씨를 지키고, 아저씨 둘레의 관계를이어주는 끈이 되어 온 것.

그렇게 틈틈히 써온풀무질 아저씨의 찌라시,공포의 에이포가 내일이면 책으로 묶여 나온단다.그 공포의에이포에 적지않게 시달려온 나 또한 무지하게 반갑고 설레는 소식.오늘 새벽 썼다는, 오랜만에 듣는 아저씨의 최신판 에이포 낭독은 참으로 감동스러웠다. 축하드려요, 아저씨.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

: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이 바라본 세상 이야기

은종복 저 | 이후 | 2010년 04월 01일 | 346쪽|12,000원


책방 「풀무질」을 아시나요?

저자는 자신의 모교 앞에 책방을 꾸리고 그곳 「풀무질」에서 책만이 아니라 평화와 희망, 새로운 삶을 퍼트리는 전도사로 살고 있다. 2003년부터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책방 손님들에게 글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고, 아이 형근이를 대안초등학교에 보내면서 겪은 이야기도 들어 있었고, 책방 일을 도와주시는 아버지와 형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적었다.

그렇게 써 오기 시작한 쪽지 글이 이제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그동안 책 내라는 사람도 많았고, 넌지시 출판 의향을 물어 오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때가 아니다 싶기도 했고, 그때그때 생각을 쓴 것인데 굳이 책으로까지 펴내야 하는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 「풀무질」 열일곱 돌을 맞아 작은 기념물이라도 남기자 결심하게 됐다.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이 책을 위해 스물한 사람의 손님이 글을 보탰다. 글에는 책방과 인연을 맺게 된 까닭이며 「풀무질」에 자꾸만 오게 되는 까닭, ‘은종복 형’ ‘종복이 아저씨!’라 부르면서 마음을 나눈 시간들이 담겨 있다. 책 표지와 날개에 실은 책방 사진을 찍어 준 이도 「풀무질」을 아끼는 손님의 솜씨다. 그래서 이 책은 「풀무질」 일꾼 은종복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저자 : 은종복

1965년 여름에 서울 휘경동에서 태어났다. 중랑천이 흐르는 그곳에서 서른 해 가까이 살았다. 아내와 혼례를 치르고 두 해 가까이 부모님과 살다가 1993년에 책방 「풀무질」 옆으로 집을 옮겨서 살았다. 그때 시작한 책방 일이 올해로 18년째다.

지금은 아이가 다녔던 대안 학교 「삼각산재미난학교」가 있는 4.19 국립묘지 가까이에 살고 있다. 아들 형근이는 올해 「제천간디학교」에 들어가서 떨어져 살고, 저자는 삼각산 아래 살면서 살맛나는 마을을 만들려 한다. 아이가 중고등 과정인 「제천간디학교」를 마치고 6년 뒤에 다시 마을에 돌아왔을 때, 돈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풀무질」 일꾼 은종복에게 “꿈이 무엇인가요?” 물으면 그 대답은 한결같다. “내 얼굴이 맑고 밝아지고,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는 날을 맞는 거예요.” 얼굴이 맑고 밝아지려면 마음밭에 평화 씨앗이 자라야 하고, 온 세상 아이들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려면 어른들이 돈 욕심으로 세상을 더럽히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저자는 그 길에 자신은 물론 책방 「풀무질」과 「풀무질」에서 책을 사는 사람들이 함께 서 있어서 참 기쁘다고 말한다.

목차

여는 글: 나는 왜 책을 내려고 하는가

1부 책방 「풀무질」 일꾼 은종복이 흘리는 땀

책방 「풀무질」을 아시나요?
「풀무질」이 꿋꿋하게 걸어온 길
청년들아, 진보의 삶을 살자!
청년 은종복이 살아온 이야기
술을 끊고 세상을 맑고 밝게 살고 싶은 까닭
난 아직도 국가보안법으로 철창에 갇힐 수 있다
행복하게 다시 태어나고 싶다
나는 왜 책방 살림이 힘든데도 여러 모임에 돈을 낼까
길은 내 앞에 놓여 있다
내 아이를 아끼는 마음으로
돈에 눈먼 세상에 맞서려면
고르게 가난한 삶
이것도 시가 될까

「풀무질」에서 맺은 인연 1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안건모
「풀무질」 일꾼 은종복 형님께―손영익
「풀무질」의 추억―송찬섭
은행에 간 할머니와 「풀무질」 책방―구아름

2부 내 가장 좋은 벗들

아버지와 나
어머니 마음은 언제나 열여덟 살
아이를 통해 내가 다시 태어나다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배우는 학교
사교육 없이 아이 키우기
네가 얼마나 행복한 아이인지, 너는 알고 있니?
이런 큰 일꾼을 바란다
아이들을 자연에서 뛰놀게 하라
참새와 평화
어린이와 평화
아이들에게 지고 있는 마음의 빚
어린이 책은 어른이 읽어야 한다

「풀무질」에서 맺은 인연 2
「풀무질」과 함께 보낸 8년―김진규
마음속 따뜻한 단골 서점, 「풀무질」―이규석
오래된, 특별한 바람―최나리
「풀무질」은 추억이 아니라 현재다―임태훈

3부 내가 걷고 싶은 길, 평화로 가는 길

나는 살았고 그는 죽었다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전쟁에 반대한다!
송두율과 국가보안법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길
세상의 병을 고치는 사람들
그들이 북녘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끝나지 않는 빈곤
살아남은 자의 슬픔
평화를 바라는 기도

「풀무질」에서 맺은 인연 3
겨울이 온다―박장호
사람을 품는 사람, 희망을 담는 공간―김한민
땅 밑에서 피어나는 사람의 향기―이준영
「풀무질」과 꿈―이성범

4부 내 가장 좋은 벗들

내 마음의 고향, 「역사와 산」
내가 살고 싶은 삶, 변산 공동체
따라 살고 싶은 삶, 헨리 데이빗 소로우
우리 시대의 간디, 지율 스님
평화를 만들어 가는 「남북어린이어깨동무」
몸의 장애, 마음의 장애
사람이 망쳐 놓은 자연, 그리고 사람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한다
내 삶의 스승, 이용석

「풀무질」에서 맺은 인연 4
「풀무질」은 책방이 아니다―박영선
오래된 친구처럼 정답고 편안한 우리 동네 책방―김명숙
「풀무질」, 사람 · 마음 · 따스함―박성연
「풀무질」과 나―선아

5부 내가 사랑한 책, 「풀무질」이 사랑한 책

언제나 깨어 있는 삶―민중의 세계사
우리가 보듬고 나가야 할 씨알―뜻으로 본 한국 역사
삶도 죽음도 아름다웠던 권정생 이야기―죽을 먹어도
한국의 이주 노동자들―말해요 찬드라, 나마스테
기계문명을 멈춰라―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슬퍼서 아름다운 우리 백성들의 삶―한티재 하늘

「풀무질」에서 맺은 인연 5
작은 책방, 작은 일꾼, 작은 사람, 작은 마음―최종규
서점은 만물상이 아니다―조동일
조금 더 여유롭고, 조금 더 따뜻하게―성동권
사람 사는 공간, 「풀무질」―구슬아
「풀무질」 예찬―여은

출판사 리뷰

책방 「풀무질」을 아시나요?

대학로 성균관대학교 앞에는 벌써 이십 년 가까이 문을 열고 있는 작은 책방이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인문사회과학 서점 「풀무질」이 바로 그곳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중소 서점들이 문을 닫는데도 이 서점이 지금까지 운영될 수 있는 것은 모두, ‘사장’이 아니라 ‘일꾼’으로 살고 있는 은종복 씨 때문이다. 숨어 있는 좋은 책(잘 팔리는 책이 아니다!)을 골라 잘 보이는 자리에 놓아두고 그 책을 열심히 권했다. 새내기들이 꼭 읽었으면 싶은 책, 전쟁의 시대에 평화의 뜻을 새기기에 좋을 책, 생태맹을 각성시킬 수 있는 책 등 권하는 목록도 다양하다. 큰 서점에서라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놓여 있을 베스트셀러들은 「풀무질」에서는 홀대받기 일쑤다. 그러니 장사가 잘 되는 책방이 아니라 믿음이 가는 책방이 될 수 있었고, 돈 잘 버는 책방 주인이 아니라 손님들과 온갖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방 일꾼이 될 수 있었다.

손님 가운데는 지금의 책방으로 옮기기 전, 좁고 어두웠던 예전 「풀무질」을 기억하는 이들도 많다. 좁았지만 무척이나 소중했던 공간이었다고 그리워한다. 책방도 좀 넓히고 임대료도 아끼기 위해 지하 책방으로 이사하던 날은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이 무시로 들러 이삿짐을 날랐다. 책방에서만 쓰이는 화폐가 따로 있는가 하면, 십만 원쯤 아예 책방에 돈을 맡겨 두고 보고 싶은 책을 주문해 두었다가 일부러 들러 사 가는 손님이 있고, 대학로 가까이에 살지 않는데도 굳이 「풀무질」까지 와서 그 흔한 할인도 되지 않는 책을 사는 손님들이 있다. 이런 손님들이 있어 책방 「풀무질」은 앞으로도 이십 년, 삼십 년 굳건할 것이다.

세상을 풀무질하는 남자, 은종복

저자 은종복은 자신의 모교 앞에 책방을 꾸리고 그곳 「풀무질」에서 책만이 아니라 평화와 희망, 새로운 삶을 퍼트리는 전도사로 살고 있다. 2003년부터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책방 손님들에게 글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바라는 마음도 담았고, 아이 형근이를 대안초등학교에 보내면서 겪은 이야기도 들어 있었고, 책방 일을 도와주시는 아버지와 형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무엇보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적었다.

그렇게 써 오기 시작한 쪽지 글이 이제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그동안 책 내라는 사람도 많았고, 넌지시 출판 의향을 물어 오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때가 아니다 싶기도 했고, 그때그때 생각을 쓴 것인데 굳이 책으로까지 펴내야 하는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 「풀무질」 열일곱 돌을 맞아 작은 기념물이라도 남기자 결심하게 됐다.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책방 손님과 일꾼이 함께 만든 책

「풀무질」은 책방이면서 동시에 책방이 아니다. 공부방을 찾아 기웃대다 책방에 들른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는 세미나실이, 자료를 찾아보다 지친 대학원생에게는 짧은 낮잠을 허락하는 휴식 공간이, 길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는 ‘이런 삶은 어때?’ ‘이런 걸 같이 고민해 보면 좋겠어!’ 하고 제안하는 길라잡이 공간이 된다. 때로는 힘든 집안일을 털어놓는 상담소이기도 하고,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이의 놀이터일 때도 있다. 손님들에게 책방 「풀무질」은 바로 그런 곳이다. 십 년 넘은 단골이 있는가 하면, 「풀무질」을 만난 지 얼마 안 된 손님도 있다. 「풀무질」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마음 하나는 똑같다. 이 책을 위해 스물한 사람의 손님이 글을 보탰다. 글에는 책방과 인연을 맺게 된 까닭이며 「풀무질」에 자꾸만 오게 되는 까닭, ‘은종복 형’ ‘종복이 아저씨!’라 부르면서 마음을 나눈 시간들이 담겨 있다. 책 표지와 날개에 실은 책방 사진을 찍어 준 이도 「풀무질」을 아끼는 손님의 솜씨다. 그래서 이 책은 「풀무질」 일꾼 은종복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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