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

냉이로그 2010. 4. 13. 22:41

하루종일을 앓았다.차라리 다행이지, 일판으로 나가기 전에이렇게된통 아파버리는 것도, 제재소 사정으로 일이 하루 늦게 시작하게 된 것도.기운이 감해서 감기라더니,이제 그만 쉬라고 몸이 보내오는 신호, 선물 같은 거라더니 그런 말들이 과연 맞기는 한가 보다. 만들어 파는 죽을 사다 겨우 떠 먹어가면서 <<죽을 먹어도>> 책장을 뒤적이거나 했다.글자가 눈에 들어올리가 없지.아픔이라는것에 대해,몸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정신이라는 것에대해연기같은 생각을 가물거리기나 했을 뿐이다. 끄응끙거리면서. 바람은 왜 그리도 미친듯이 불어대는지.

안이 궁금했나 보다. 누군가 문창호를 살짝 찢어놓았다. 들여다본댔자 이미 그 안에는 예전 모습이 하나도 남아있질 않아. 어울리지 않는 새 씽크대에 새 책꽂이, 그리고 하얀 벽지와 노란 장판. 지난 해에 찾았을 때던가 문을 열어 보여주는 그 방이 너무도 낯설어 못내 속상한 마음이었다. 쥐똥과 오줌내가 퀴퀴하고 흙이 떨어져내리던모습과는 전혀다른 공간이 되어 있을 뿐.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하지. 그 안이 어떤 줄을 뻔히 알아 실망스러울 거라는것 또한모르지 않으면서도구멍이 있으니들여다보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그 찢어진 문창호 틈으로 찍은 사진

"거지가 글을 썼습니다. 전쟁마당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얻어먹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어찌나 배고프고 목말라 지쳐 버린 끝에, 참다못해 터뜨린 울음소리가 글이 되었으니 글다운 글이 못 됩니다. 하기야, 세상 사람치고 거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답니까? 있다면 "나 여기 있소." 하고 한번 나서 보실까요? 아마 그런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좀 편하게 앉아서 얻어먹는 상등거지는 있을지라도 역시 거지는 거지이기 때문입니다.……." (1980. 6 <<강아지똥>> 머리말 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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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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