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탑, 2010 봄

냉이로그 2010. 4. 12. 21:48

머리가 아파

기초공사를 하고 제재소로 치목을 들어가기 전며칠 시간이 떴다. 물목을 뽑고, 시공 방법을 정하고, 그에 맞춰 단가를 알아보고, 재료비와 인건비를 적정선 안으로 하면서 구조와 효율의 최대치를 뽑는 일은 복잡하고도 불안한 일이기만 하다. 기초공사 하나만으로도 그랬지만 목구조를 올리는 일이며 벽체공사, 지붕공사에서도 계속해서 부딪힐 일. 시키는대로 나무나 깎고, 들어나르고, 끼워맞추던 때는 전혀 생각지 않아도 될 것들이니 버겁기만 하다. 게다가 그 모든 판단에 자신이 없으니 이 말을 듣다보면 이리 기울고, 또 다른 말을 듣다보면 그리 기운다. 판단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 해놓고 나서도 이 말을 따라 해놓고 나면 한 쪽 귀가 가려운 것 같고, 또 다른 쪽 말을 따라 하고 나면 그 반대편이 그렇다. 덧서까래를 올리고 판자로 마감을 해 지붕 물매를 잡아오던 예전 방식과 달리 적심목과 흙을 채워가며 물매를 잡아 기와를 올리는 쪽으로 준비를 하자니 역시 애를 먹는다.예전 방식대로야서까래 다 걸고 난 뒤에 기와 주문 들어가면 된다 하지만 적심목을 채워 지붕 물매를 잡아간다 하면 제재소에 물목을 넣는 것부터 달리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기와시공을 맡겨오던 원당기와에서는 적심을 채워 시공을 하게 되면 일체형 시멘트 기와로 시공하는 것에 견줘 네다섯 배가 들 거라고 했다. 이천오백에 가까운 돈이 든다. 그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빨리 물목부터 다시 바꿔야 한다. 동해에 있는 한동기와에 알아보니 이단식 기와를 쓰면 전통토기와가 아니더라도 싼 값으로 적심목을 채우는 시공을 할 수 있다 했다. 평당 사십만 원 가량. 그렇다면 가능하다. 지붕공사를 계획하면서 그 정도로 예상해 계획하던 수준이다. 물론 합판물매 위에 상을 걸고 못으로 박아 기와를 올리는 방식보다야 시공비가 많이 들기는 하지만 물목에서 덧서까래를 빼고, 덧서까래를 올리고 합판 물매를 잡는 목수 공수가 빠진다 치면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는 정도의 값이다. …… 제재소에 들어가 치목을 시작하는 것은 제재소 사정으로 하루가 더 늦춰졌다. 하나하나 일을 잡아나가는 일들이 이렇게나 머리가 아플 줄을 몰랐다.

조탑, 2010 봄

몇 곳에서 원고청탁이 있었다.이 까칠하고 게을러빠진 작가에게 글을 보내달라는 연락이라니. 5월호를 준비하는 잡지, 할아버지의 그 봄날을 기리는 글.아무래도 쓸 수가 없을 거라 전화기를 귀에 대고 머리를 조아리다가 써 보기는 하겠노라고 말끝을 흐렸다. 쓸 말이 있어 쓰겠다 한 것도 아니었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어 그리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숙제를 빌미 삼아서라도 할아버지 앞에 다시금 발가벗은 채로 대면하고 싶었을 뿐. 그 봄날의 얼굴과 그 봄날의 목소리, 그리고 그 봄날의 햇살 속으로 다시. 적어도 한 닷새는 그렇게만 발가벗어 할아버지를 만나리라 생각했다. 그러고 난 뒤 거짓없는 고백의 말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다만. 그러나 갑작스레 일이 일주일이나 일찍 시작되었고, 가다를 짜고 철근을 엮는 일보다 더 복잡하게일의 공정을 짜는일들에 애를 먹으며도무지그럴 수 있는 시간은 가질 수가 없었다.한 이틀시간이주어진 듯 하기는 하지만 집에 와 있다 하여이미 온전히 내 시간일 수는 없는 노릇. 기와업체들을 알아봐야 했고,제재소로 물량확인을 하며 작업장을 쓰는문제 따위로 내내매어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그러던 와중에 다녀왔다, 잠깐. 어차피 돌아오는 오월에는 가보지도 못할 터.

정돈된 오두막은 어쩐지 낯설다. 겨울을 지나고도 손을 대지 못한 풀들이 수북, 해야 어쩐지 할아버지의 그 오두막일 것만 같아.하지만 어쩌면 그렇게 정돈이 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그것대로안타깝고 아쉬웠는지도 모르겠다. 맡아 일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것하나마음쓰지 않고 있나 하며 말이다.일을 보는 사람들만 이래저래 아쉬운소리를 먹기 마련이구나. 나름 애를 쓰며 일을 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오두막을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정말 그 작은 집만을 유심히 보았다. 물론 그곳을 찾는 이라면 누구라도 그 다섯 평 오두막을 보러간다. 그 낡고 허름한 오두막,가난한 삶, 아픈 몸…….아니, 이번에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숨결을 좀 더 가까이 다시금 느끼고자 그 앞에서 무언가를 불러낸 것도 아니었고, 그 어떤 상징을투영해보고자 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낡고 조그만 집, 그 집을 살펴볼 뿐이었다. 어떻게 지었니? 정면에서, 측면에서 그리고 뒷면에서. 앞쪽으로는 그늘을 더 깊게 만들기 위해 처마를 그런 식으로 더 뺐구나, 서까래 끝에 각재를 철물로 고정시키면서 그 바깥에는 아시바로 보조기둥을 대어놓고……. 전기공사는 집을 짓고 난 다음에 했겠구나, 처마 밑에 애자로 고정을 하면서 방 창으로 선을 넣었네……. 왼쪽으로는 조그만 창고를 덧다느라슬레이트가섭지붕을 내달았어. 그것 높이로 얇은 도리목을 대기는 했지만 종도리에서도 마치 걸어주듯이 나무를 두 줄로 내려…… 뒷간 문 밑에 환기구를 따로 내었다는 것도 이제야 처음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리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기분따윈 아니었다. 그저 쪼그려앉아 빨래를 조물조물 한 마디씩 받아주는 목소리가 떠올릴 뿐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다 그랬더라, 아마 내가 어디에서어벙하게 굴다가일어난 우스운 얘기를 해드렸을 거야. 그랬더니 아이큐가 나빠서 그렇다고, 너는 왜 그렇게 아이큐가 나쁘냐고 능청스레 놀리시던그장면이 자꾸만떠올라.하하하하.눈물이 살짝 배어나기도 했지만 웃음이 그쳐지지는 않았다. 안동 사투리의 억양에 아주 진지한 얼굴로 아이큐가 나빠, 아이큐가 나빠서 그래…… 맞아요, 맞아. 그러니 이다지도 사리분별이 어둡기만 해요. 세상사에 대한 분별은 그만두고라도내 안에서만이라도 흔들리지 않을 줄 알면 좋겠는데 그조차 맨날 흐리기만 하니 말이에요.

아아, 그래도 맑은 숨을 실컷 들이마시고 돌아오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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