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굴 속의 시간 2010. 7. 31. 19:16

남영동 칙칙한 건물에서의 여섯 달 공부는 이제 모두 마쳤다. 오늘 푼 거는 작년 기출문제. 시공 시간에는 우주가 침하된 팔작집의 보수 방법, 성곽 보수 계획, 산간과 평야, 해안 지방의 초가지붕 물매 비교에 대한 논술을 했고,구조 시간에는 숭례문과 풍남문의 구조 특징 비교, 백제계 석탑과 신라계 석탑의 적심 구조 비교, 그리고 귀솟음이 적용된 귓기둥의 치목 방법에 대한 문제들이었다. 아, 이로써 지난 팔십사 년부터 나왔던 모든 기출문제 풀이를 다 했구나.하지만 아직 아무 것도 자신이 없어. 각자의 책상 위로 합격 떡을 돌리며 나누어 먹는데뭔가 텅 비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싶기도 하고 마음이이상했다.교실에서 일어나서는회식 비슷한 자리로 옮겨갈 차례였는데, 꾹 참아 그냥 돌아나왔다.

아직 한참 겨울이던 때,어리둥절하기만 하던 첫 수업을 듣고났을 때도바로 길 건너편 피씨방으로 기어들어갔더랬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이 떠다니기만 하던 말들을, 인터넷에 대고 찾아보기라도 하고 싶어. 첨차가 뭐야, 살미가 뭐야, 도대체 무슨 말을 떠드는 거야……. 생각하면 참, 그 때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까막눈.그 뒤로 정말 숨이 가빴다.아마 혼자 머리 싸매고 했더라면 거기에서 몇 발짝 떼지 못한 채 아직도 가물, 눈 못뜨고더듬거리고만있었을 텐데.여섯 달을 함께 한오 교수를 만난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그래서 지금 피씨방으로 기어든 건,회식에는 참석치 않았지만 고맙다는 메일이라도 한 통 쓰고 들어가자 싶은 마음에.


그러구러 이제 그만 컴퓨터를 접고 일어나려다 보니 고양이와 통한 날 까페에뭐 재미난 게 있다. 요기를누르고 들어가 제 이름만 치면 미래의 집이 나온다나.아니 언니가 이미 이 사람 저 사람 이름들쳐 본 거를 써놓기는 했다.무슨 동굴 같은 게 나왔다는데,대체 어떻게 생긴 거니, 하고 들어가봤더니 그게 이거. 목수 집에 비샌다더니 ㅠㅠ. 결국 니네 집은 못짓는구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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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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