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

굴 속의 시간 2010. 8. 9. 05:30

공책 한 권이 보이질 않아 쇼를 했다.잃어버린 줄 알고 정말 울기 직전까지갔더랬어. 열어본 가방 몇 번씩 다시 뒤져보고, 책꽂이를 다 뒤집어 엎어. 폐지에 섞여들지나 않았나, 어디 냄비 받침으로 썼나, 나중에는 양말 서랍에 씽크대 문까지열어보며 이 새벽에법석을 피웠다. 제발 나와라, 제발. 아무래도어딘가에다흘리고왔을 것만 같아 머릿속이 하얘지고 심장이 쿵쿵, 어지럼증이 이는 것 같기도 했다. 기차 등받이 어디에 꽃아놓고는 잠에 덜깨어 그냥 내렸던가 싶기도 했고,툭하면 길에서저기요, 가방 문이 열렸는데요, 소리를 듣곤 했으니그러다가 흘렸는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했고.결국 두 시간만에 요 놈의 노랑 스프링 공책을 찾았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지, 그렇게나 찾아도 보이지 않던 것이 너무나도 거짓말처럼 방 문 앞 옷가방 위에 다소곳이 있는 거였다. 미쳐요, 내가. 아마 방마루 여기저기로 풀린 나사들이 뒹굴고 있을지 모른다.달걀을 삶겠다고 시계를 담그지 않는 게 다행이지. 머리까지 빡빡으로깎았으면 좀 똘똘해보이기라도 해야지.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게 공부인지 모르겠다. 아니,공부가 아니라 시험.오늘내일도 폭염이 계속 될 거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밤이 되고 새벽이 되면 제법 시원, 쌀쌀하기까지 하다. 입추, 말복이 지났다. 아무리 계절이 제멋대로라지만 그래도 한 발짝씩 오고 있는가 보다.허덕거리던 여름, 무더위가 어서 풀리기만 바랐건만, 막상 여름이 다 간다 하니 큰일이다 소리가 먼저 나온다. 벌써 가을이라니. 난지도네 집 팔월 달력 그림에 적혀 있던 말이 뭐였더라. 뜨거운 여름, 너마저 가버리면 쓸쓸해서 어이할까……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대충 그런 말. 하여간 정말 다행이다, 토끼 그림이 있는 저 노란스프링 공책.그럼, 다시 세수 한 판!

끈 / 한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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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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