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

냉이로그 2017. 5. 21. 10:47

 

 

 똘배 이모야가 선물을 한 보따리 보내주었다. 두툼한 봉투 안에는 책이 다섯 권. 모두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주는, 이제껏 세상에 없던 책 다섯 권. 그 가운데 한 권은 똘배 이모야가 자료들을 수집하고 찾아 공부하면서 찾아낸, 아직 단행본으로 묶인 일이 없던 할아버지의 단편동화들을 묶어낸 동화집 <<복사골 외딴집>>. 모두 세 권으로 준비되던 그것은 지난 해에 첫 권 <<새해 아기>>가 나왔고, 올 십주기에 맞춰 두번째 권이 나오게 된 것. 이 책에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사이사이를 종숙이 언니가 그림으로 살려내어. 그리고 또 한 권은 그간 <똘배어린이문학회>에서 할아버지 책을 읽고 공부하며 써온 글들을 가지고 뽑아엮은 <<그리운 권정생 선생님>>이라는 문집.

 

 

 내가 '똘배' 모임을 알게된 게 언제쯤부터였을까. 아마도 이름을 듣기로는 그보다 먼저이긴 하겠지만, 제대로 기억하는 건 이기영 선생님의 <<작은사람 권정생>>을 만난 다음부터라 하는 게 맞을 것 같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로, 할아버지 이름을 내건, 할아버지의 삶을 포장한, 여러 책들이 쏟아지다시피 했더랬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앞뒤 몇 문장들만 보아서도 더는 보고싶지 않은 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한 권 한 권 다 찾아읽어. 그러던 중 만난 것이 이기영 샘의 책이었고, 그 책 앞에서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작품들 뿐 아니라 할아버지가 남긴 자투리 글조각까지도 꼼꼼히 찾아 읽고, 할아버지의 삶과 마음에 비추어 몇 번이고 곱씹었을 정성. 그 고마움에 '똘배' 모임 또한 궁금해졌고, 인터넷에 찾아보니 어렵지 않게 다음 카페로 접속이 되어. 회원가입을 하지 않아도 글을 읽어볼 수 있는.

 똘배 이모야들은 더 오래 전 어린이도서연구회가 모이는 자리에서 뵙던 분들이었다. 십몇 해 전, 어떤 사정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도연 모임 분들이 조금씩 나뉘었다 했고, 그 가운데 몇 분이 똘배 모임으로 공부를 해오지 않았나 싶은데, 오래된 글부터 찾아 하나하나 읽어보니 참 정성이었다. 할아버지의 책 한 권씩을 정해 함께 읽고 글을 써 나눠온 것이 벌써 십 년. 해마다 똘배 이름으로 손님들을 초대해 추모식을 이어왔고, 그렇게 한 편 한 편 쌓여온 글들로, 이번에 낸 문집 이전에도 <<내 삶에 들어온 권정생>>이라는 문집을 이미 내기도 해. 지금 감자품자네 집으로 온 꾸러미 안에는 지난 겨울 '똘배' 모임 십년을 기념하는 책도, 올 해 열 번째로 맞아 진행한 할아버지 추모식 자료집이 함께 들어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아주 귀한 자료. 삼십년 전 카톨릭농민회 교리서에 실려 있던 할아버지가 지은 노래들을, <<농민노래>>라는 조그만 책으로 제본해주신.

 똘배 라는 모임을 떠올리면 정성이란 말이 생각난다. 할아버지가 참 기뻐하실 것만 같은.

 

 

 . 

 실은 그 책꾸러미를 보내오기 전, 똘배 이모에게 받은 카톡 메시지는 이 사진이었다. 

 

 

 

 모란공원, 래전이 형이 누워있는 자리.   

 

 

 

 

 

 

 

 

 

 

 

'냉이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월 어느날  (0) 2017.05.31
이동철  (0) 2017.05.27
십년  (0) 2017.05.18
빼떼기  (6) 2017.05.11
꼭 한 번은  (0) 2017.04.26
Posted by 냉이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