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철

냉이로그 2017. 5. 27. 02:33

 

 

 존경할만한 친구를 가졌다는 건, 복받은 일이겠지.

 지들이야 민망해할 소리겠지만, 나이를 하나둘 더 먹어가고 있어 그런가, 그런 친구들이 더러 있다. 아니, 문득 친구를 곁에 두고 있으면서, 그애가 들려주는 얘기들을 듣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하지만 그 감탄이 어쩌다 한 번쯤이 되는 단발성이 아니라, 이 애를 만날 때면 나는 늘 이렇게 감탄을 하곤 했구나, 하는 게 떠올라. 고맙게도, 내게 친구가 되어주다니.

 이웃동네에 사는 말랴가 그러하고, 요 며칠 제주에 다녀간 이동철 선생이 또한 그러하다. 이것들이 아마 생물연식으로 따지자면 나보다 하나둘 아래 나이겠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구를 먹어, 오히려 격없이 친구를 먹어주는 게 고마웠다.

 

 

 

 경북 상주에 있는 내서중학교. 제주로 수학여행을 왔다는데, 전교생을 여덟 모둠으로 나눠, 모둠별로 알아서 여행을 한다던가. 모둠마다 아이들 스스로 주제를 정했다는데, 어떤 모둠은 제주의 아침, 어디는 제주의 자연, 어디는 제주의 사삼, 어디는 제주의 방언. 다만 버스를 타고 움직이기 너무 불편한 외지 같은 곳들인 경우, 한 번씩 교사에게 차량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던데, 그러니까 친구는 차량지원을 하는 운짱으로 들어온 것. 다른 교사들은 모둠마다 한 명씩 '그림자 교사'라 하여 함께 다니지만,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던가. 버스를 반대방향으로 타더라도 그저 따라다니기만 하는. 학교의 교감도 한 모둠을 맡아 그림자교사로 들어갔다 하니, 풍경 참 좋았다. 고맙게도 교장도 이번에 괜찮은 사람이 왔다던가. 그래서 이 수학여행 경비가 이천사백만원 가량 드는데, 모두 학교 예산으로 하고 있다고.

 행복하겠다, 녀석들. 이런 여행을 다 해보다니.

 

 

 감자는 삼촌의 휴대폰 속 온갖 동물들이 신기했지만, 나는 친구가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가 전혀 지루하질 않았다. 무슨 얘기를 하던 끝에, 지금 학교 한 쪽에다 대장간을 짓고 있다던가. 보은에 있는 어느 대장장이 분을 모시고 아이들에게 대장간 수업도 하고 있다며. 웃음이 났다.

 지 하고 싶은 거 다 하는구나! 
 직장생활을 아주 동아리 활동하듯이 하네 ㅎㅎ

 언제였더라, 남도에서 적정기술에 대한 연수가 있다 해서, 대장간수업을 들으러 가있었다 해서, 그건 또 배워서 어쩌려 그러나 싶었더니, 하하, 그렇게 아이들이랑 행복해지는 데 쓰려고 그랬구나. 나도 생각나는 게 있어 피네 아저씨 블로그에서 본 어느 대장간 얘기를 했더니, 친구도 이미 거길 알고 있더라. 거기 대장장이 분이 연수 때 강사로 내려왔었다면서.

 대장간 뿐이 아니라, 친구는 학교 자체를 재미난 삶의 체험장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진로교육이라는 게 잡혀있다지만, 우리 아이들 현실과는 늘 동떨어진 그 어떤 목표가 아닌, 세상에서 성공이라 가리키는 어떠어떠한 것들이 아니라, 내 삶이 가장 소중하고, 주변 이웃의 삶이 가장 귀한,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행복에 대한 꿈을 꾸게 하는.

 

 

 이튿날엔 한 모둠을 한라산 어리목 탐방로 입구로 배달해주어야 한다고 하기에, 마침 나도 한라산국립공원 감독부서에 들어갈 일이 있어, 점심시간 만났다. 밥먹으러 바로 움직일까 하다가, 거기까지 갔는데, 윗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승생악이라도 한 번 올랐다 가자며, 산을 올라.

 오르는 길에는 헉, 헉 숨이 가빠 얘기나눌 그게 아니었지만, 내려오는 길, 다시 친구에 학교 이야기들을 물어.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교실 풍경. 친구가 맡은 과목은 과학, 친구네 학교에서는 과학시험이라 해도 모든 문제가 서술형이라던가. "이야, 그거 좋으네. 정말 아이들이 솔직하게,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그거 참 좋다." 그랬더니, 과학 뿐 아니라 국어도 수학도 모두 서술형 시험을 본다는 거라. 하하, 세상에 이런 학교가 다 있다니. 대안학교도 아닌 공립의 일반 중학교에서. 절로 상상이 되었다. 무언가 내 얘기를 원하는 서술형의 수학문제 앞에서, 그걸 한 글자 한 글자 내 얘기로 설명한다는 걸. 놀라웁게도 아이들은,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기도 하더니 이내 적응을 하고, 제법 답을 잘 쓴다던가.

 

 

  

 세상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그 학교 얘기를, 내가 놀라워하며, 신기해하며 듣고 있으려니까, 이런저런 얘기들이 더 풀려나와. 이를테면 새학기가 되면 과학시간에는 아이들하고 약속을 한다던가. 앞으로 한 달 동안 교과서는 펴지 않을 거라고, 배운다는 건 알아간다는 건데, 나와 너희들부터 먼저 서로를 알아가야하지 않겠냐며. 그래야 책 속의 과학이건, 세상의 과학이건 더 잘 알아갈 수 있지 않겠냐며. 그러곤 친구가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때껏 관심을 두고 해온 습지의 동물들 사진이며, 저 멀리 시베리아 호랑이 흔적을 보고 온 이야기며, 울진의 산양들과 함께 하던 시간들이며, 그러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던가. 과학이며 생명인, 세상 모든 것들.

 

 

 

 공교육 내에서 학교를 바꾸어가려는 일에만 애를 쓰는 게 아니라, 제도 바깥에서도 아이들이 제 삶을 행복하게 꾸려갈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어. '애프터스콜라' 라던가, 덴마크엔 그런 교육과정으로 되어 있다지. 그러니까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로, 고등학교를 마치면 대학교로, 쉼없이 짜여있는 스케줄이 당연하다는 것에, 그렇지 않아도 좋다는! 그러니까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그대신 '애프터스콜라'라 하여 1년을 쉬면서,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할 수 있는지, 하고싶은지, 진로를 고민하고 경험하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는 것.

 친구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어떤 걸 해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대안학교 모델보다는 오히려 애프터스콜라라는 그 모델이 더 필요치 않을까 싶었다던 거 같어. (작년에 들은 얘기라 정확하게는 기억이 가물가물) 그러더니 어느 날 텔레그램으로 메시지가 오기를 '쉴래'라고 이름을 지었다던가! 하하, 이름 좋다, 쉴래!

 

 

 교육을 고민한다면, 마을을 고민할 수밖에. 친구는 집을 짓고 들어가 살고 있는, 용수마라는 그 마을에서에서 공동체를 복원해내는 일에도 얼마나 열심인지. 요즘이야 플리마켓이라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그 난전이라는 데가 마을 구성원들의 생활과는 동떨어진, 요상한 상품들을 파는 도깨비장터처럼 변질된 느낌이 적지 않지만, 친구네가 마을에서 시작한 '백원장'은 그야말로 마을 식구들이 즐거워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멀리서 마을을 찾아오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장날이랄까.

 

 

 이건 친구가 찍어 보내주었던 거네. 한라산에서 만났던 어느 하루 말고, 또 어느하루는 내가 세계유산본부 쪽으로 수리보고서를 내러 갈 일이 있었는데, 마침 그날 낮에는 친구에게 배달이 안잡혀있다는 거지 ㅎ 그래서 그럼 동쪽으로, 오름 많은 데나 한 번 가자! 하고 달래와 품자까지 모두 함께 나선 길. 저기는 '아부오름'.

 

 

 

 학교에서 하는 일, 학교밖에서 하는 일, 그리고 마을에서 하는 일 들만으로 존경하는 마음 그런 게 드는 건 물론 아니다. 사람을 대하는 거, 몸을 움직이는 거, 갈등을 극복해가는 거, 언제나 사고의 중심에 두고 있는 거, 그런 것들이 조화롭달까.

 아마 동년배의 친구들 가운데, 존경할만 하다, 하는 친구들은 앞으로 더 많아지겠지. 설마 성장이 멈추기야 했을까만, 적어도 남들에 비해 성장의 속도가 팔분의일, 십육분의일로 느린 나는, 여전히 삼십 대 초반의 그 불안과 흔들림에서 제자리걸음인 채로, 비움과 채움을 조화롭게 성찰을 거듭해가고 있는 친구들에 비해, 한참이나 '어린' 사람으로 있게 되면서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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