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냉이로그 2017. 5. 18. 10:30

 

 

 오월 십칠일, 빌뱅 언덕 너머 하늘, 그 아래 조그만 오두막을 기억하게 하는 날이었다. 벌써 열 바퀴, 십 년이 되는. 그러나 또 다른 십 년이 되는 줄은 몰랐다. 구럼비 기억행동주간을 알리는 포스터를 문자로 받기 전에는. 강정. 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대책위를 든 것이 이천칠년 오월 십팔일. 강정의 싸움이 십 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그 십 년들. 강정에선 십 년의 싸움, 눈물, 웃음,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을 기억하는 자리.

 

 

 

 감자품자에게는 그 십 년째의 날들이, 할아버지들을 만나는 시간이 되어. 조탑 할아버지를, 강정 할아버지를.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강정에 대해 그렇게까지 잘 알지는 못하고, 그동안 어떤 일들이, 어떻게 해왔는지 잘은 알지 못하지만, 기자회견문을 다 읽어내릴 즈음, 달래는 눈물이 나오더라고. 그 십 년을, 어떻게 살아왔을지, 어떻게 싸워왔을지, 그리고 끝내 무엇이 남았는지, 그럼에도 이토록 이 자리를 지키며 떠나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 또한 그랬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해군부대 정문 입구에서 잔치판을 벌여 밥을 먹고, 그 뙤약볕 길바닥에서 문화제를 열고, 다들 일어나 헌병이 지키고 선 정문 앞까지 춤을 추며 뛰어가는, 그 앞에서 강정삼종땐스라는 그 춤판을 펼치는 걸 보면서. 할아버지는 문화제 막바지, 마지막 노래가 한참 고조될 즈음, 흐느적흐느적 춤이 몸으로 흘러들었다. 내가 보아온,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춤. 분명 몸이 움직여 춤을 추고는 있었지만, 근육이라거나 관절이 아닌 다른 것, 일테면 영혼이랄까, 슬픔, 절망이거나 희망, 그런 것이 몸의 옷을 입고 절로 너울거리는 것만 같은. 아스팔트 바닥에서 할아버지의 몸이 너울거리기 시작할 때, 나는 마치 어떤 귀신이거나 영혼, 그런 것이 슬금슬금 일어서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어. 그 싸움에 몸을 던져, 이미 육신은 혼이었고, 그 뙤약볕 아래에는 상처를 받을수록 더욱 단단해져온, 영혼들이 모여 있었다.

 강정에 갈 때마다 늘 보아온 그 지킴이들, 주민들이 대부분이던, 얼마 되지 않던 사람들. 처음 그리로 갔을 때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 하는 생각에 서글픔이 휘감았으나, 모여앉은 자리에서 웃고 떠드는, 남 눈치 볼 것 없이 아무 대목에서나 눈물을 줄줄 흘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육신 아닌 혼으로 춤을 추는 그이들을 보며, 나로서는 알지 못할 저너머 세상의 시공간에 와 있는 것도 같았다. 선 자리가 다르면 풍경이 다르다던가,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다 한 번, 가끔 들러보고 있었을 뿐인, 외부자의 눈이었기에 그랬는지도 몰라.

 실컷 뛰고 놀던 두희 샘과 마주쳤을 때, "눈물이 나요" 하고 말을 하니까,
 그때까지 웃고 있던 샘이 그러시네. "자기가 그런 말을 하니까, 나도 눈물날 것 같네." 

 

 제주에 내려와 산지 벌써 사년, 어쩌다 한 번씩 찾아가보았을 뿐이지만, 어느새 다들 낯이 익어버린 얼굴들. 굳이 이름을 들어 말하지 않더라도, 거기에 있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 얼굴이 그대로 강정 십 년의 시간들을 전해주는 것 같아. 최근 강정을 담은 영화 <스물다섯번째 시간>에는 이런 나레이션이 나온다지. "고립된 내부에서의 시간은 외부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외부로 쫓겨난 사람들은 다시 그 고립으로 자진해서 돌아와 그 시간에 참여했다." 그 고립된 내부, 자진해서 들어간 그 고립의 시간.

 자리를 다 걷고 평화센터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을 때, 두희 샘이 웃으며 말을 해.

 아, 십년이네. 이제 앞으로 또 어떻게 십년을 준비하냐고오 ㅎ 

 

 

 

 

  - 2017년 5월 18일, 강정마을 해군반대투쟁 10년을 맞아 한겨레 전면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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