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바퀴

냉이로그 2017. 4. 18. 18:11

 

 

 천지가 꽃이던 제주의 봄, 그러나 올 봄에는 꽃 구경 한 번 제대로 나가질 못했다. 한참 벚꽃이 피고, 유채가 섬을 뒤덮을 때까지도 현장이 바빠 그러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잠시잠깐씩이나마 감자, 품자를 안고 벚꽃길을, 유채 들판을 찾아나가지 못했던 건, 감자가 아팠기 때문.

 아빠의 야간작업이 시작하던 날, 감자는 어린이집엘 나가기 시작하였고, 몸살을 먼저 달고 들어온 건 아빠였다. 그 몸살이 감자에게로, 품자에게로, 달래에게로, 온 식구들을 한 바퀴 다 돌고 나더니 감자는 어느 날 몇 번이고 먹은 것들을 게워내면서 설사를 시작해. 입으로 넘기기만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게워내기를 수 차례. 장염이라는 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적어도 육개월은 이런저런 병치례를 달게 될 거라는 말들이 있었지만, 설마 그정도일까 싶기도 했고, 그러려니 흘려듣기도 했건만, 두 달이 되어가도록 감자는 아직도 제 컨디션을 되찾질 못하고 있다. 암 것도 먹질 못한 채 물만 넘기기를 열흘 남짓. 이제 되었다 싶었더니 다시 감기. 콧물이 떨어지질 않고, 밤이면 노인들 천식 같은 가래 기침으로 괴로워하기를 벌써 스무날 가까이. 아빠는 마치 선무당처럼 사혈침을 가지고 감자의 몸 여기저기를 찌르며 피를 빼보기도 하였고, 한의원으로, 양의원으로 사흘이 무섭게 들어안고 다녔지만, 원인 제거가 되지 못하는 증상 처방이야, 약을 먹을 때만 그 뿐.

 찬바람이 불어대던 겨울 밤에도 아무 때고 집을 나서 뛰어다니던 바닷가에도, 벚꽃길을 보러 비행기를 타고 사람들이 찾아드는 집 가까운 벚꽃길에도, 이 봄에는 감자품자와 함께 걸어보질 못해. 

 꽃으로 하늘을 뒤덮던 벚나무들에는 연둣빛 잎새들만 남아. 이 섬 어디를 가더라도 노란 물결로 출렁이던 유채밭들도 그 싱싱하게 빛나던 노랑이 빛을 잃어. 꽃구경 한 번 못한 채로 봄을 흘려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집 바깥에는 바람이 얼마나 불어대던지, 오늘만큼은 아가들과 봄햇살 아래로 나가자며 마음 먹었건만, 바람이 어찌나 불어대던지. 어쩌랴, 하다가 그래도 나가보자, 한라산 동서남북으로는 날씨가 늘 다르니, 저기 산 아래 쪽으로는 바람이 덜할지도 몰라.

 하여 찾아내려간 산방산 봄 나들이.

 

 

 과연 한라산 아래는 감자네가 있는 애월이랑은 날씨가 아주 달라.

 

 

 돌만 보면 환장을 하며 좋아하니, 돌많은 제주에 사는 게 다행인 걸까. 감자는 돌을 만지며 살아도 좋겠구나. 다행히 아빠가 아는 석수쟁이, 석공 삼촌들이 많이 있거든 ㅎ  

 

 

 산방산 아래 용머리 해안으로 내려가던 길.

 

 

 노랑으로 가득했을 유채나물들은 이미 꽃대가 세었고, 노란 꽃잎보다 연두가 더 많아. 너무 늦어 아쉽지만, 이렇게나마 감자품자와 함께 꽃나들이를.

 

 

 품자야 아직 아빠 품에 매달려있거나 유모차에 실려 다니지만, 감자와 함께 걷는 길은 그게 어디라도 다섯 배, 열 배는 더 걸려야 해. 두어 발짝을 떼고 나면 멈춰서서 발밑을 살피고, 다시 또 두어 발짝이면 감자에겐 또 새로운 세상. 그러니 그만 가자, 거나 어서 가자, 빨리 가자, 같은 말을 감자에게 한다는 건 ㅠㅠ  

 

 

 나비 한 마리에도 발을 뗄 수가 없어. 팔랑하늘거리는 나비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버릴 때까지, 혹은 날개를 접고 있는 바람에 눈에서 놓칠 때까지.

 

 

 표류하던 하멜의 배를 본떠 모형으로 만들어논 거였다나. 그거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이날 파도가 높은 바람에 용머리해안 산책로가 통제되는 바람에, 멀리 바다를 내다보려 그 배 위를 올라.

 

 

 어린이집을 다닌 뒤로, 감자는 하루 일곱 시간을 엄마아빠와 떨어져지내기 시작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노란 빵빵이 올 때까지 맘마를 먹고, 세수를 하고, 옷을 입혀 버스 기다리는 데로 나가기에도 빠듯한 시간.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그 또한 저녁 맘마에, 집안 일을 하는 엄마아빠 곁에서 한두 시간을 놀다 잠자리에 들어야 해. 하루종일 엄마아빠랑 함께 하던 시간, 그러나 더는 그럴 수가 없어.

 오랜만이었다. 엄마 손을 잡고 햇살 아래를 실컷 걸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엄마랑 함께 장난을 치며 노는 즐거운 시간.

 

 

 행복하였다.

 

 

 제 키를 훌쩍 넘어버린 유채밭, 마치 밀림 숲을 헤치듯

 

 

 

 

 

 산 아래로 다 올라왔을 때 나온 계단. 그 앞에서 지나던 관광객 아주머니에게 사진 한 컷을 부탁하였다. 그 계단 앞에 섰을 때, 달래도 나도 동시에 기억했던 건, 5년 전, 우리가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으로 여기를 다녀갈 때, 그 계단에 서서 쎌카라는 걸 찍었더랬거든. 마침 그날은 달래 냉이가 결혼 5주년을 하루 앞둔 날.

 "저희 내일이 결혼 기념일이에요. 오년 전에 여기에서 사진을 찍었었는데, 사진 한 번만 부탁드릴게요."

 지나던 아주머니는 우리보다 더 크게 웃어 좋아하며, 기꺼이 사진사 모드가 되어주었다. 계단을 앞뒤로 막아 다른 관광객들이 이리저리 피해다니건 말건, 오히려 우리보다 그 아주머니가 더 적극적이 되어 한 번 더 찍어주고, 다시 한 번 더, 또 한 번 더 찍어, 용량 제한에 걸릴 때까지 찰칵찰칵찰칵찰칵. 찍어주신 사진들을 보니 가로세로도 맞질 않고, 죄대 흔들린 사진들이라, 그나마 이 사진 하나 건질 수 있었지만, 이렇게 비뚤어진 사진이 오히려 더 정겹고 좋아.

 그렇게 하여 갖게된 결혼 오주년 가족사진. 다섯 해 전 둘이 섰던 그 계단을, 이제는 넷이 되어 다시 찾게된. 

 

 

 그날 산방산 아래에선, 품자가 내내 아빠 품에 매달려 있느라, 사진들이란 죄다 감자 형아 것들 뿐이었지 모야. 그래서 그 다음 날, 집 앞에 있는 카페 마당에 앉았을 때 찍었던 품자의 얼굴.  

 

 

 

 

 

 이렇게 올 핸, 봄이 다 지나가는 끝물에서야, 겨우 지각 꽃나들이를 하였다. 계획하진 않았지만, 그게 엄마아빠가 결혼식을 올리고 다섯 바퀴를 꽉 채우던 그날이었어.  

 이렇게 우린 또 봄을 떠나 보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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