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이일

냉이로그 2017. 3. 7. 02:24

 

 삼월 이일. 감자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던 날, 마침 그날은 내가 맡은 현장에서 야간작업을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 그날이 목요일이었으니, 목요일, 금요일, 그리고 주말에는 품자 돌을 앞두고서 서울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러 다녀왔으니, 월요일이던 오늘은 감자가 어린이집엘 나간지 사흘째 되던 날. 오늘로 사흘째라고는 하지만, 그래봐야 엄마랑 함께인 거고, 그것도 오전 시간에만 있다가 점심밥 먹을 때까지 겨우 두 시간씩. 이틀을 그렇게 나가고 난 뒤에, 사흘째인 오늘은 한 시간을 늘려 점심밥까지 먹고 돌아오던 날이었다. 

 사무실에서 나와 정실에 있는 **사라는 사찰로 지붕공사 견적을 보러 나가던 길, 달래에게 문자가 들어왔다. 

 

  지슬이 최선을 다해서 적응해가고 있어. 오빠도 힘내.

 

   

 

 

 운전대를 잡고 신호를 기다리며 전화기를 열어보았다가 눈물이 왈칵, 이었다. 감자가 최선을 다한다는 그 말이 왜 그리도 안쓰럽던지. 최선을 다해, 라는 그 말이 감동스러워 마음이 짠한 건가 했는데, 아무래도 울컥은 그말고 다른 마음인 것도 같아. 저 어린 것이, 저 어린 것들이 왜 최선,씩이나 다해야 하는지, 어쩌자고 최선,마저 다해야 하는지. 최선을 다한다는 그 말은 어쩐지 내게는 슬퍼.

 글쎄, 아마도 요즈음 내 상태가 그래서 더 그랬을까. 견디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꾹꾹 눌러참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잠시도 떠나지 않는 긴장의 연속, 도대체 이 부당과 불편을 언제까지 감내하고 살아야 하는 건지, 아니,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급기야 지난 주던가, 해남에서 지선이 다녀가면서 오랜만에 말랴도, 한동안 소식을 모르던 이발사와 정란도, 남원으로 이사간 늘보까지도, 감자네집에 모이던 날. 얼굴들이 반가웠고, 그랬으니 막걸리를 마셨겠지. 감자네집 1차를 마치고 말랴네로 2차를. 술을 그리 많이 마셨던 것 같지도 않은데, 그 즐거운 자리에 있다가 돌아와서는, 나는 오랜만에도 술주정이라는 걸 해버렸다. 꺼이꺼이 울고, 소리치고, 방바닥을 내리치기까지 하면서.

 왜 그랬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어. 하지만 술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 이젠 임계점에 다다랐기 때문일까. 참고 버티고 견디고, 그걸 위해 최선을 다하기에는, 내 맷집의 한계가 여기까지여서일까. 아님, 싫어서였을까. 참고 버티고 견디는, 그걸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그 자체가 너무나도 싫어서. 그날 만난 친구들, 가난하고 자유로운 삶을 스스로 선택해 떳떳하고도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그 친구들과 함께 있다보니 더 그랬을까. 더 참담했을까, 고개를 찧고만 싶었을까.  

 최선을 다해야지, 하는 다짐을 참 많이도 하곤 했다. 감자의 눈빛, 품자의 웃음을 보면서, 그리고 달래를 보면서, 힘을 내야지, 최선을 다해야지. 하지만 요즈음 들어 얼굴빛이 더 새카매져만 가고 있어. 그나마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은 감자품자와 함께 행복한 시간이었건만, 이즈음엔 집에 돌아와서도 일 걱정을 놓지를 못해. 떠나지 않는 긴장, 스트레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부당에서 온다 여겨지니, 도무지 무얼 붙잡아야 할지 모르겠는.

 감자는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아직 혼자서는 숟가락질조차 제대로 할 줄을 모르건만, 그거에 많이도 능숙한 친구들 틈에 끼어, 친구들처럼 숟가락질을 따라하고 있어. 아빠도 최선을 다해야지. 최선, 이라는 슬픈 그 말, 하지만 최선을 다할게. 아무리 힘들다 한들, 감자가 겪고 있는 긴장보다 아빠가 더하지는 못하겠지. 감자도 그렇게 잘 해내고 있는데, 순간순간이 다 눈물인 것을. 

 그랬나보다. 달래가 보낸 카톡을 보면서 울컥이던 건, 감자가 기특하고 대견하고 안쓰러운 그런 마음에 동시에, 감자만도 못한, 못나빠진 내 모습이 보여 그랬을.  

 

  

 

 

 삼월 이일, 감자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한, 그날부터 현장에선 야간작업을 시작했다.

 

 

감자가 좋아하는 저 오리폽포. 나는 다시 또 이 말을 되뇌이고 있네. 감자야, 아빠도 힘낼게. 품자야, 아빠가 힘낼게.

 

 

 

 

 

 그러나 아빠가 바라는 세상은 최선, 같은 건 다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세상. 최선을 다하는 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서나 그러면 되는 것. 견디기 위하여 다하는 최선이 아니라, 그러지 않으면 못견디겠어서 온힘을 다하게 되는, 그러고 싶어 어쩌지를 못하는, 그 즐거운 일들에 최선일 수밖에 없는. 아, 그러나 저 강자들은 우리를 갉아먹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 세상인지,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도록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결국 그들의 룰 안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는, 끝내 벗어나려면 그들과 다른 룰을, 그들이 침범할 수 없는 다른 삶을, 그야말로 내 삶을 살아내는 것만이 답일 텐데.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세상, 내가 좋아하는 일에만 최선을 다해도 좋은 세상, 감자에게 품자에게 선물하고 싶은 건 바로 그런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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