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달래에게 그런 얘길 한 적이 있어. 기차길옆작은학교, 글쎄, 나는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어 잘 모르지만, 나한테는 기차길이 그런 느낌인 것 같아. 그 조그맣고 가난한 공동체, 그 안에서 만들어가는 작은 세상, 그리고 그 힘으로 이 세상 속 또다른 세상을 열어가는. 내가 기차길에 대해 그런 마음인 건, 세상 속에 드러나있는 공부방의 공부방의 활동이나 역할, 그 때문은 아니. 주저앉게 되고 깨어지는, 때로는 약하고 못난, 그 모습들을 끊임없이 긍정하고 인정하며, 바로 그 자리에서부터 보듬어 일으키는 과정들이 눈물겨웁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도 가난과 평화의 원칙을 빗겨가지 않는. 아니, 원칙이라 말하니 뭔가 딱딱하고 얽매이는 느낌이네. 원칙이라기보다는 당연한 삶의 원리랄까, 각자의 몸 속에, 삶 속에, 모둠살이 안에 배어있고 젖어있는, 당연한 그것. 

 기차길옆작은학교의 큰이모큰삼촌, 그리고 단비 솔비가 제주로 가족여행을 온다고 연락을 주었다. 공동체로 살면서, 늘 내어주며 살면서, 가족끼리 함께 하는 귀한 시간. 제주에서 보내는 두 밤 중의 하룻저녁엔 감자네랑 밥을 먹기로 하다가, 마침 신부님도 시간이 되신다 하여 신부님이랑 강정의 평화바람 식구들까지 모두 함께 하기로 한 저녁. 

 어디서 만날까, 하다가 "그럼 감자네 집에서 만나요!" 하면서 있게된 엊그제 저녁 자리.  

 

그날 저녁.

 

 식구들이 많이 올 텐데 ^ ^ 바닥에 깔았던 매트도 치우고, 감자품자의 기저귀 빨랫대도 치우고, 아가들 장난감도 어느 한 쪽으로 다 몰아넣고 ㅎ 밥상이 모자라는 건 주인집에 먼지쓰고 있던 거 하나를 더 꺼내고, 수저 모자라는 건 식당에 가서 수저통 하나를 통째로 빌려와 ㅎㅎ

 

감자도 신이 나서 할아버지 신부님이랑 이모삼촌들 맞이할 준비를 하느라 자리마다 접시를 하나씩 ㅎ

 

 와아아, 할아버지도 이모삼촌들도 감자네 집에 다 모였어. 안녕하세요, 품자랍니다 ^ ^

 

 품자도 큰이모 기억나니? 지난여름 공부방 캠프에 깍두기로 함께 할 때 안아주던 이모야 ^ ^ 제주시청 앞 촛불집회 때마다 만나던 강정의 딸기 이모야도 이렇게 집에서 만났네.

 

 단비 이모야랑 솔비 이모야가 그렇게나 보고싶어했더라며.

 

 둘러앉아 밥을 먹고 놀 때 쯤, 감자에게 촛불을 들려주니 미끄럼틀 위로 올라 ㅎㅎ 그러고는 분위기를 조금만 띄워주니까 조그맣게 말아쥔 주먹을 번쩍! ㅎㅎ

 

 그 모습이 마치 단상에서 구호를 선창하기라도 하는 것 같아, 방바닥에 앉은 이모삼촌들도 감자를 따라 퇴진하라, 퇴진하라, 퇴진하라 ㅎㅎ

 

 따뜻하고 행복한 밤이었다. 길 위의 신부님, 평화 할아버지와 강정을 지키는 평화바람 식구들. 그리고 가난과 평화로 살아가는 기차길 공동체의 이모삼촌들.

 겨울을 지나면서 달래도, 나도 많이도 지쳐있었는데, 정말 숨이 열리고 힘이 되는 시간이었다. 달래는 달랟로, 이젠 품자도 행동반경이 커지게 되고 감자도 고집이 늘어가게 되면서, 감자와 품자 두 아가를 달래 혼자 케어하기에는 손이 딸리고 몸이 모자라. 나는 나대로 일터에선 회사일과 집안일을 겹으로 해야 하는데, 회사일이 곱으로 던져지니 눈감았다 뜨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를 몰라. 그러던 중에 찾아준 기차길 공동체와 평화바람 식구들.

 나도 나였지만, 달래는 큰이모와 긴 얘기를 나누면서 정말로 힘이 나는 것 같다 하였다. 김중미 샘은 정말 위로를 하실 줄 아는 것 같다며, 자신이 무엇으로 힘들어하는지,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아 자책하는 마음으로 괴로운, 그 지점을 어떻게 그리도 잘 알아 보듬으며 필요한 얘기를 해주시는지. 정말로 고맙다며, 김중미 샘은 참 다르다며. 내가 보기에도 어색할 정도로 얼굴에 화색이 돌며 기운이 나는 모습이었어.

 나 또한 할아버지를 보면서, 안나 샘을 보고 딸기와 오이를 보면서, 속깊은 이야기를 따로 나눈 건 아니었지만, 평화의 가장 고된 자리에서 활동가로 살아가는 분들의 존재를 다시 만나며 나를 또다시 돌아보게 되어. 쓸데없는 자기연민 같은 거에 허덕이지 않기를, 내 삶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볼 수 있게 하면서.

 

 

 지난 해 가을, 강정 거리미사 5주년이 되던 날, 그날도 인천과 강화에서 내려온 기차길 식구들과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할아버지가 감자네 식구들에게 새겨주신 저 글씨.

 

품자는 좋겠구나, 할아버지 품에 이렇게 안길 수 있어서.

 

 할아버지가 걸어오고 지켜온 평화의 길, 평화의 그 자리. 비록 먼 발치가 될지는 몰라도, 엄마아빠도 감자품자도 그 길에서 멀어지지 말자. 거기엔 돈으로도 살 수 없고, 화려한 그 무엇으로 대신 할 수 없는 행복이 있어. 내 곁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해지는, 쉽고도 단순한 행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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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냉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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