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로그 2017. 1. 26. 07:51

 

 시월 말부터 정신없기를 시작하더니, 설을 앞두고 있던 이즈음은 정말 바빴다. 이런 거구나, 직장에 다니며 일이 바쁘다는 게.

 

      소장님, 명절 전에는 돈이 나오나요?

 

 이즈음 들어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던 말. 그 말이 왜 그리도 짠하고도 슬픈지. 아마도 어렵게 입을 떼어 말하시는 걸 텐데. 언젠가 종남이 형 블로그에서, 명절을 앞두고 현장소장은 바쁘다고, 딱히 사정을 말하지 않아도 우리네 사는 형편이야 다 빤할 텐데, 현장에서 일해주신 분들, 명절 전에 공사비 나오게 하느라 기성금조서를 올리느라 여느 때 보다 몇 걸음 더 바빠지게 된다던.

 그랬다. 계약하기로야 두 공사 모두 2월 중순 준공이면 되었지만, 그동안 우리 현장들은 연말도, 연시도, 주말은커녕, 크리스마스나 새해첫날도 없이, 그대로 달리기만 했다. 게다가 소장이 챙기지 못한 부분들마저도 꼼꼼히 챙겨주면서까지. 일해주신 아저씨들께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

 

 

 그리하여 폭포의 낙석방지 공사는 60일 공기도 빠듯할 거란 걱정과 달리, 40일만에 공사를 마칠 수 있었고, 선사유적지의 움집 공사 또한 준공일보다 25일을 앞당겨 끝내. 나만 좀 더 바쁘게 뛰어다니면, 며칠 밤만 더 새우면 명절 전 공사비 수령은 될 만한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여느 소장들처럼 뚝딱 서류를 만들어낼 줄을 모른다는 거. 준공내역서 하나를 만들자 해도 엑셀에 자신이 없으니, 더딘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셀마다 수식을 확인하고, 맞춰보고, 또 맞춰보고. 밤을 새워 내역서를 만들다 새벽바람으로 현장으로 나가야 했고, 밤을 새워 공정사진첩 정리를 하다가 아침 준비를 해놓고는 그대로 현장으로 달려나가던.

 하필이면 이즈음 날씨는 왜 이리도 춥고 지랄인지. 바람 길에 직통으로 서 있는 선사유적지 현장에선 바람으로 내지르는 주먹질을 수도없이 얻어맞곤 했다.

 휴우우, 그래도 다행. 지난 월요일로 폭포 낙석방지 공사의 준공검사를 받았고, 화요일엔 선사유적지 움집 준공검사를 마쳤어. 그러고나서 명절 전 사흘. 준공금 청구까지 다 들어갔는데, 어제까지는 아직이다. 감독부서에서도 오늘까지는 보낼 수 있게 해주겠다 했으니, 하루 더 기다려보는 수밖에.

 지난 석 달 남짓, 현장 셋을 치면서 정신없던 시간들을 생각해보니, 직장생활이란 게 이런 건가 싶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말을 반납할 수밖에 없었고, 누가 그러라 하지 않아도 밤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게 내 일이다 싶을 때, 적어도 그것까지는 해내고 싶을 때. 그리고, 나는 이렇게, 더딘 걸음으로, 현장소장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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